문학의 향기

홍성운 시집 '숨은 꽃을 찾아서'의 시조(2)

김창집 2022. 10. 17. 08:56

 

바람까마귀

 

 

제주의 한겨울은 온통 바람이다

돌이나 나무나 마른 풀숲 잡새들이나

한사코 바람을 타며

목소리를 높이느니

 

한 때의 까마귀는 바람 일면 신들리지 수장을 초점 짚어 타원을 그리면서 팽팽한 구심력으로 세상을 휘돌았으니

 

이제

색깔 선명한

순백의 겨울이다

짐짓 목청 낮춰 자꾸만 은신하는

그들은

바람까마귀

이 땅의 정치까마귀

 

 

 

겨울 이장(移葬)

 

 

새벽 3시 선소리가 진눈깨비 흩뜨린다

놋잔 같은 그믐달에 익숙한 산역(山役)

미명의 낮은 하늘을 바라보게 하느니,

살아서는 제대로 한 평 가질 수 없어

산비탈 멍에질도 묵묵히 일구시던

내 윗대 희디흰 뼈가 난기류에 젖고 있다

무슨 여한 있으시어 이 세상에 다시 오나

산 자들의 욕심 하나 서너 평의 봉분 하나

막소주 후래삼배로 하관(下棺)의 달의 지네

 

 

 

동면을 깨고 싶다, 바람아

 

 

제주의 토막대는 소리를 물고 있어 혈을 풀어주고 마디를 뚫어준다. 동박새 울음만 같은 음계 밖 피리소리

 

연신 늦가뭄에 빈혈 도진 이 섬은

응급 수혈로 수맥마다 관이 박혀

토박이 바람들 모여

겨울을 성토하는

 

이따금 터진 하늘로 새떼가 비상한다

이쯤이면 쇠똥에도 터를 잡은 산냉이꽃

앞질러 갓길 너머로

봄빛을 나르고 있다

 

아득하다 퍽퍽 불을 토하던 화산도여

혼절한 목련들 남쪽 가지가 따스하다

동면도 오늘 같으면

깨고 싶다, 바람아

 

 

 

겨울나무

 

 

해거름 참새 몇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다

 

제 딴엔 생목(生木)을 흔든다 요설이지만

 

고얀 놈,

 

물똥 척 갈겨도

 

나무는 동면중이시다

 

 

 

환해장성

 

 

허물어지는 만큼 시간은 매듭을 땋았다 제주 현무암 그 숭숭한 구멍으론 바람도 검색을 마쳐야 섬을 오르느니

 

생트집에 이골난 요즘의 독도처럼 대물린 경계에도 불안한 섬사람들, 무비자 밀물이 차면 둥둥 뜨는 먼 수평선

 

삼별초 고혼 달래듯

저녁노을 재우고 있다

 

 

 

                             *홍성운 시집 숨은 꽃을 찾아서(푸른숲, 199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