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조(1)
[시인의 말]
♧ 열며…
첫 시집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
둘째 시집
『가슴에 닿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
넷째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를 통해
섬을 노래했고
‘우린 모두 섬이었구나’를 알았다
고독과 단절의 섬으로
그냥 있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이제
그 섬과
이 섬을 잇는
다리를 놓을 시간이다
이 시집은 징검다리를 놓는 디딤돌에 불과하다
♧ 섬 그리기
오늘도 섬 그리기
바다부터 그립니다
분명 섬을 그렸는데
어머니 얼굴입니다
파도는 어머니 주름살
펴질 날이 없습니다
분명 바다를 그렸는데
어머니 가슴입니다
무자년 울음자국이
멍울 되어 섬입니다
섬사람
섬 그리기는
온통 퍼런색입니다
♧ 나에게 섬은
섬에서 태어났다
곁에는 파도와 바람
단절의 끝에 서면
바다는 양수였다
내 꿈이 헤엄치며 노는
유년의 놀이터였다
나를 낳고 키웠으니
섬은 어머니 탯줄
삼칠일도 지나기 전
바다로 달려간 당신
부풀어
터질 듯한 젖
울며 물린 어머닌 섬
♧ 섬사람 섬에 살아도
산을 향해 앉으면 발아래 파도소리
바다를 향해 서면 쌓이는 산새소리
섬사람
섬에 살아도
섬 하나 묻고 삽니다
삼십 년 기다리다 섬이 되어 앉은 사람
원혼굿 파도에 씻겨 동백으로 지는 갯가
섬사람
바다 한복판
등불 들고 삽니다
♧ 섬에 사는 것은
섬에 사는 것은
바다를 보는 것이다
바다를 보는 것은
외로움에 갇힌 것이다
외로움
그리움 되면
문득 섬이 되는 것이다
외롭다와 그립다를
꼭 나누고 싶다면
내가 섬인지
섬이 나인지
나누어 봐야 한다
나누지
못하는 날은
이미 하나인 것이다
♧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
1
가파도를 보러 갔다가
마라도만 보고 왔다
종로 한복판에서도
일렁이는
모슬포 바다
나 또한
작은 섬임을
나를 버려야 알았다
2
너와 마주 앉으면
맑은 눈만 보인다
돌아서
혼자 걸으면
숨소리까지 들린다
너 또한 작은 섬임을
네가 떠나야 알았다
*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 (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