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3)

김창집 2022. 11. 11. 00:43

 

때죽나무 꽃 2 나기철

 

 

초여름

제주 산간에는

하늘의 별이

다 사라졌다

 

모두

땅으로

이사를 간다

 

 

 

 

() - 서안나

 

 

그리울 테면 그리워보아라

뱀을 죽이면 비가 온다

 

누군가 나에게

현무와 주작을 아느냐고 물었다

물 수자를 쓰면

해변이 부서진다

 

저녁의 해변은 남은 사람의 것

나는 물결에 잡힌 사람

 

아버지 49재 날

나는 손가락을 베었다

붉은 별이 몇 개 떴다

 

아버지가 핏방울처럼 번진다

몸에 별을 가두고

입술을 꼭 다물고 느리게 빛났다

아버지는 어디쯤에서 뒤돌아보실까

 

우리는 정녕 아름다웠던가

물에 발을 담그면

운명이란 바다를 다 가졌다는 것이다

더 춥고 싶었다

그리움은 물결치는 것이므로

 

 

 

 

바둑 5. 귀살이 양동림

 

 

살아도 산 게 아니다

겨우 콧구멍 두 개 열어

숨을 쉬는 대가로 놈은

사방의 땅을 다 받아갔다.

 

 

 

 

거대한 할망 오광석

 

 

긴 치마자루에 흙 담아가네

바다 어디 즈음 섬을 만들어 앉을까

치마자루에 흙 담아가네

찢어진 치마구멍 사이로 흙 떨어지네

떨어지는 오름 모양 무더기

흙 쌓아올려 산을 만드네

깔고 앉은 무게에 산이 짓눌려

엉덩이 모양의 구덩이 파이네

흙투성이 치마를 끌고 길을 걷네

섬을 만드느라 기력이 쇠하여

구부정하게 느릿느릿 걷네

멀리 남해 바다 보이는 능선 위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찬란하게 변한 섬의 도시를 내려다보네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산을 타고 오르는 건물들을 바라보네

지는 석양을 바라보다

점점이 켜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다

도로를 건너면 그 위에 흙 떨어지네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거칠게 피해가네

섬을 만든 할망에게

걸죽한 욕 한 사발 대접하네

 

 

 

 

나도풍란 조직형

 

 

조난당한 너는

위태로운 바위에 뿌리 얹어

간신히 발붙이고

목숨 한 칸 버틴다

 

몸보다 긴 꽃대로

노를 저으면서

생계를 떠메는 무게를 받쳐 든다

 

제 발소리를 듣고 혼자 크는

아기 발바닥만한 잎,

시린 발목으로 허공을 향해 걷는다

공중에 걸린 뿌리 흔들지 않으려고

낮은 몸으로

발자국 무늬를 그린다

 

어느 바람타고 흘러왔는지

두려움을 떨치고 가야 하는 길

꽃대에 돛을 올리고

먼 바다로 힘껏 한 번 헤쳐가 봤으면

 

바위에 발가락 길게

닻처럼 드리우고

해안선을 따라

끝없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계간 제주작가2022년 가을호(통권 7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