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3)

♧ 때죽나무 꽃 2 – 나기철
초여름
제주 산간에는
하늘의 별이
다 사라졌다
모두
땅으로
이사를 간다

♧ 파(波) - 서안나
그리울 테면 그리워보아라
뱀을 죽이면 비가 온다
누군가 나에게
현무와 주작을 아느냐고 물었다
물 수자를 쓰면
해변이 부서진다
저녁의 해변은 남은 사람의 것
나는 물결에 잡힌 사람
아버지 49재 날
나는 손가락을 베었다
붉은 별이 몇 개 떴다
아버지가 핏방울처럼 번진다
몸에 별을 가두고
입술을 꼭 다물고 느리게 빛났다
아버지는 어디쯤에서 뒤돌아보실까
우리는 정녕 아름다웠던가
물에 발을 담그면
운명이란 바다를 다 가졌다는 것이다
더 춥고 싶었다
그리움은 물결치는 것이므로

♧ 바둑 5. 귀살이 – 양동림
살아도 산 게 아니다
겨우 콧구멍 두 개 열어
숨을 쉬는 대가로 놈은
사방의 땅을 다 받아갔다.

♧ 거대한 할망 – 오광석
긴 치마자루에 흙 담아가네
바다 어디 즈음 섬을 만들어 앉을까
치마자루에 흙 담아가네
찢어진 치마구멍 사이로 흙 떨어지네
떨어지는 오름 모양 무더기
흙 쌓아올려 산을 만드네
깔고 앉은 무게에 산이 짓눌려
엉덩이 모양의 구덩이 파이네
흙투성이 치마를 끌고 길을 걷네
섬을 만드느라 기력이 쇠하여
구부정하게 느릿느릿 걷네
멀리 남해 바다 보이는 능선 위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찬란하게 변한 섬의 도시를 내려다보네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산을 타고 오르는 건물들을 바라보네
지는 석양을 바라보다
점점이 켜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다
도로를 건너면 그 위에 흙 떨어지네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거칠게 피해가네
섬을 만든 할망에게
걸죽한 욕 한 사발 대접하네

♧ 나도풍란 – 조직형
조난당한 너는
위태로운 바위에 뿌리 얹어
간신히 발붙이고
목숨 한 칸 버틴다
몸보다 긴 꽃대로
노를 저으면서
생계를 떠메는 무게를 받쳐 든다
제 발소리를 듣고 혼자 크는
아기 발바닥만한 잎,
시린 발목으로 허공을 향해 걷는다
공중에 걸린 뿌리 흔들지 않으려고
낮은 몸으로
발자국 무늬를 그린다
어느 바람타고 흘러왔는지
두려움을 떨치고 가야 하는 길
꽃대에 돛을 올리고
먼 바다로 힘껏 한 번 헤쳐가 봤으면
바위에 발가락 길게
닻처럼 드리우고
해안선을 따라
끝없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계간 『제주작가』 2022년 가을호(통권 78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