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4)

김창집 2022. 11. 18. 01:19

*작살나무

 

 

가을 비빔밥 황현중

 

 

황금빛 들판 푸짐한 양푼에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아침이슬 몇 방울

 

너는 기다려야 해

고추장 같은

노을이 올 때까지는

 

 

*굴거리나무

 

구두 한 켤레의 시 - 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쑬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인동덩굴

 

구두 - 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 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천남성

 

부두어시장 - 권순자

 

 

부두어시장에서 고래고기 살점을 고른다

거대한 물살 헤쳐 온 고래 한 마리,

덫에 걸려 누워 있고

지느러미는 늘어져

밀물 같은 발길들에 어지럽게 짓밟히고 있다

 

그르렁대던 숨결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비린내 나는 좌판 위에

살점을 염탐질하는 겁 없는 파리 떼들도 붕붕거린다

 

잡혀서야 돌아온 땅,

저만치서 혼자 철썩대다가

소용돌이치며 멀어지는 젖어미, 바다의 절규

 

살을 갈라 대던 거친 인부의 손길이

식욕부터 일으키는 살점을 한 점 베어 삼킨다

 

태양이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는 한 낮

불쑥 내 몸 겨드랑이에서도 짠 내가 진동을 하지만

사막처럼 황량한 나도 도시 한복판으로 숨어들어,

축축한 소리로 가슴뼈를 긁어대는

파도의 숨소리를 잊어갈 것이다

뒤척이는 파도의 조갈 난 검은 눈동자를 지울 것이다

 

 

*누리장나무

 

인삼人蔘 - 민문자

 

 

수삼水蔘 한 상자 선물 받았네

딸 같은 젊은 아낙

귀한 먹거리를 보면

제 어미에게나 보낼 것이지

과연 이 귀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두근대는 가슴에게 자문하게 하네

 

열이 있을 때는 인삼을 삼가랬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자가격리 중이라

우선은 선물을 냉장고에 보관 중

회복기까지 상하지 않기를 기도하네

누구보다도 바쁜 그녀 마음 씀씀이에

더욱 겸손한 봉사를 해야지 결심하네

 

 

                            *월간 우리202211월호(통권 제413)에서

                                                    *사진 : 결실의 계절

 

 

*분단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