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의 시(7)

김창집 2022. 11. 21. 00:50

 

춘설 속에서 유사遺事를 쓰다

 

 

을유년乙酉年 경칩에 큰 눈이 내렸다

 

백년을 기다린

고로쇠 가지마다 눈꽃은 피어

앉을 자리를 잃은 새들이 격론 끝에

산 너머로 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하얀 빛의 무게에 놀란 산이, 고요히

해가 떠도 입을 열지 않자

눈밭에 선혈 낭자히

약수터 겹동백만 애꿎게, 뚝뚝

제 모가지를 부러뜨렸다

 

---

*을유년 : 2005년 경칩에 300m를 넘는 100년만의 폭설이 전국과 부산, 경남지역에 내렸다.

 

 

 

하늘로 흐르는 강

 

 

보세요, 기 저

하늘로 흐르는 강을요

 

출발은 저자바닥

얽히고설킨 난장이었지만

비우고 비워 흐르다 보면

실낱처럼 가벼워진 몸

써레봉 바위도 물길을 열어

하늘에 다다르는 중봉 오솔길을요

 

 

 

천불동 가을

 

 

어머나

냇바닥에 불이 났네

옛날 누구 속앓이로 앓던 불

 

저런, 저런

산천어 놀라 허둥대고

개여울로 불 번지네

 

 

 

모닥불 지펴보면 압니다

 

 

장당골 어린 자작나무들

밤새워 흔들며 흔들리며

 

푸른 손짓으로 맞이해 품고 있던

결 고운 나이테 속의 하얀 별빛들

 

다시 가을밤의 별이 되어 날아가는

가슴에 모닥불 지펴보면 압니다.

 

은하의 저-

, 누군가의 흔들리는

손짓이 있다는 것을

 

 

 

 

갈참나무 숲이 잎을 지우는 것은 2

 

 

키 낮은 것들 위해

한여름에 그늘 만들고

한겨울엔 볕 더 들이려는,

 

비탈에 서는 법 배운 나무들의

눈물겨움

 

 

 

                        * 권경업 시집 하늘로 흐르는 강(작가마을, 200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