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6)
김창집
2022. 11. 30. 02:11
♧ 얼굴
예수님께
손 모음은
용서의 인간 고뇌를
부처님께
합장함은
그 미소 닮고 싶어
내 손자
작은 바위 얼굴
종일 보면 맑아질까
♧ 꽃
아픔 딛고 활짝 핀
꽃
바라봄은 채우는 것
지는 꽃
아쉬움은
깨끗이 나를 비움
이 가을
욕심 내려놓을
자리 하나 없구나
♧ 오월 앞에 서면
반짝이는 감잎처럼
새로울 것도 없고
유자꽃
그 깊이로
노래도 부르지 못한
올해도
오월 앞에 서면
시인인 게 부끄럽다
짝 찾는 뻐꾸기처럼
간절함도 모자라고
마실수록 넉넉한
훈훈한 바람 앞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쓴 시 부끄럽다
그래도 가슴은 뛴다
참다 터진 작약처럼
때죽나무 꽃 진 자리
향기 아직 남아 있다
서툰 게
외려 울림이듯
범종 같은 시 쓰고 싶다
♧ 꽃차와 설렁탕
감꽃
뚝
뚝
지는 날 국화차를 마신다.
지난가을 짙은 사연 뜨겁게 우려내면
보랏빛
향기를 담은
시린 삶이 녹아 있다
내 영혼 푹 고으면
어떤 맛 우러날까
짙을까
어떤 향일까
누구나 국물은 있지
잘 익은
깍두기 같은
시어詩語 하나 씹고 싶다
♧ 꽃은
담장 곁에 접시꽃
그 아래 핀 맨드라미
엎드린 채송화
그래도
활짝 웃는다
꽃 옆에
꽃이 있어야
눈길 닿는 꽃밭이지
용문사 은행나무
아무리 화려해도
속리산 정이품송 가슴 펴 푸르러도
혼자선
숲이 안 되지
보호수로
남을 뿐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