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6)

김창집 2022. 11. 30. 02:11

 

얼굴

 

 

예수님께

손 모음은

용서의 인간 고뇌를

부처님께

합장함은

그 미소 닮고 싶어

내 손자

작은 바위 얼굴

종일 보면 맑아질까

 

 

 

 

 

아픔 딛고 활짝 핀

바라봄은 채우는 것

 

지는 꽃

아쉬움은

깨끗이 나를 비움

 

이 가을

욕심 내려놓을

자리 하나 없구나

 

 

 

오월 앞에 서면

 

 

반짝이는 감잎처럼

새로울 것도 없고

유자꽃

그 깊이로

노래도 부르지 못한

올해도

오월 앞에 서면

시인인 게 부끄럽다

 

짝 찾는 뻐꾸기처럼

간절함도 모자라고

마실수록 넉넉한

훈훈한 바람 앞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쓴 시 부끄럽다

 

그래도 가슴은 뛴다

참다 터진 작약처럼

때죽나무 꽃 진 자리

향기 아직 남아 있다

서툰 게

외려 울림이듯

범종 같은 시 쓰고 싶다

 

 

 

꽃차와 설렁탕

 

 

감꽃

지는 날 국화차를 마신다.

지난가을 짙은 사연 뜨겁게 우려내면

보랏빛

향기를 담은

시린 삶이 녹아 있다

 

내 영혼 푹 고으면

어떤 맛 우러날까

짙을까

어떤 향일까

누구나 국물은 있지

잘 익은

깍두기 같은

시어詩語 하나 씹고 싶다

 

 

 

꽃은

 

 

담장 곁에 접시꽃

그 아래 핀 맨드라미

엎드린 채송화

그래도

활짝 웃는다

꽃 옆에

꽃이 있어야

눈길 닿는 꽃밭이지

 

용문사 은행나무

아무리 화려해도

속리산 정이품송 가슴 펴 푸르러도

혼자선

숲이 안 되지

보호수로

남을 뿐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