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제주시조' 2022 제31호의 시조(2)

김창집 2022. 12. 4. 00:09

 

수평선

 

 

호박 같은

둥근 세상

 

갑을甲乙 인생

모질거니

 

수심 깊은 저 먼 바다

하늘가에 맞닿았으니

 

눈높이

넘보지 마라

하늘

밑줄

 

 

 

달아나고 싶었네 김미영

 

 

귤 익는 소리가 하락하락 들려온다

이문은 고사하고 처리만도 다행이라고

황금색 그 하나 믿고 달려온 해거름녘

 

귤 농사 글 농사 사람 농사 사랑 농사

건져 볼 거 하나 없는 또 한 해가 저물어

힘 빼고 기다려보자 농사는 배신을 안 한다며

 

 

 

시를 빚는 반딧불이 김영기

 

 

빛이 없으매 몸으로 빛을 내

입이 없으매 빛으로 말을 해

한마디 신호면 된다

반짝반짝! “사랑해!”

 

생략하고 절제하는 폐기한 수사학에

황홀히 다가오는 와이모토 반디 별빛

동굴 속 묽리을 따라

한 줄 시를 남긴다

 

 

 

뜨거운 씽어즈* - 김영란

 

 

  내게도 쓸쓸하던 그 골목이 있었을까

 

  허기처럼 따라온 시간을 붙잡으면 비릿한 그리움 하나 혼자 울고 있겠지 기어이 떠나간 사랑 새도록 비는 오고 오늘 밤도 내일 밤도 그 다음 밤도 기다리겠다는** 팔순의 뜨거운 독백 끊일 듯이 이어져 시처럼 연기처럼 슬픔의 근성들이 하나둘 내 가슴에 시린 뼈를 묻을 때

 

  슬퍼요, 클릭 대신에 안아주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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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비 프로 제목

** 노래 나의 옛날이야기가사 일부.

 

 

 

당신의 밤은 아침보다 환하다 - 김연미

 

 

등 뒤에서 바라보면 대책 없이 눈물이 났지

그 눈물 온기만으로 한 땀 한 땀 이어진 숨

아늑한 그림자 뒤에서 잠이 들곤 했었지

 

인연과 인연 사이 낡은 옷감 덧대며

어머니 바느질 소리 어린 꿈을 수놓고

감치고 누벼가면서 나를 기워내셨지

 

방 안 가득 일렁이던 고단한 시간의 끝

동녘 창 해 뜨는 쪽에다 나를 걸어 놓으시고

밤 지샌 등잔불 끄고 바다 건너가신 이

 

설문대 치마폭 같은 일출봉 산허리에

등경돌로 만나는 그리움의 저 깊이

오래된 들국 하나가 무릎 꿇고 있었다

 

 

                                 *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시조2022 3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