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1)

김창집 2022. 12. 7. 02:20

 

들리나요 - 여국현

 

 

밤하늘을 오르는 달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

구름 뒤에서 숨바꼭질하며 재잘대는 별들의 소리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며 소곤대는 바람 소리

가을 나무 머뭇거리며 하나둘 옷 벗는 소리

두물머리 두 강물 수줍은 듯 몸 섞는 소리

깊고 짙은 어둠이 소리 없이 웅얼거리는 자장가 소리

잠든 새들이 꿈속에서 제 짝을 찾아 부르는 노랫소리

천변 갈대들 바람에 온몸 맡기고 춤추며 내는 휘파람 소리

먼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들이 서로를 인도하는 울음소리

어둠과 달과 구름과 별빛에 깃든 영혼들의 낮은 한숨소리

 

들리나요

 

곤히 잠든 그대 꿈속으로 걸어가는

내 영혼의 발자국 소리

 

 

 

야식 김동호

 

 

먹는 즐거움은 크다

야를 빌미로 야식의 재미

줄이면 안 된다

그 소리에 끌려

밤새 먹거리 골목 곳곳을

누빈 때가 있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야식이

지금은 가장 재미없는

야식이 되고 있다

 

요즘의 야식 메뉴:

진통제 소염제 수면제

-우울제

 

 

 

푸르른 날에는 - 정순영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 날아갈 듯

푸르른 날에는

 

해파랑 하늘을 한 움큼 따서

영혼을 흠뻑 적시고

 

내 안에서부터 해맑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

사랑하라 사랑하라

 

이름도 목숨도 다 내어 주어라

 

사랑으로 내 안에 하늘이슬이 고이는

푸르른 날에는

 

 

 

남천 이인평

 

 

남천은 잎이 붉기도 하지

코로나 확진자가 십칠만 명이 넘었어도

베란다의 남천은 창밖 겨울을 보며

햇살의 양감에 속살까지 붉지

 

바라보는 내 마음도 붉어져서

이내 봄이 오면

저리 뜨거운 사랑을 안고

새 힘에 안기고 싶어라

 

코로나도 겨울도 꼬리를 감추는

작은 꿈 하나 풀어 두고

아지랑이처럼 고즈넉이 설레는

파릇파릇 새순 같은 은총 속에서

기쁨을 풀고 싶어라

 

 

 

겨울 그리고 방 - 성숙옥

 

 

겨울이 된바람 소리로 다가오면

낡은 외투 같은 시간으로 들어간다

어둠의 봉우리를 넘다 그만 갈까 망설인 날들이다

햇빛을 묶어 놓지 못한 바닥은

가끔 연탄보일러까지 붉은 기운을 놓곤 해

북쪽의 한기가 밀린 고지서 같이 들어오곤 했다

내려오는 위풍의 밀도를 담요로 희석하며

삼십 촉 전등과 넘던 글자의 고개

벽에 그려지는 벽을 아랫목의 온기에 펼치며

고드름처럼 가느다란 뼈들을 골랐다

어떤 날엔 두부 장수 종소리가 새벽 문풍지를 흔들 때까지 잠을 쫓던 방

가슴에 사그라지는 불씨를 후후 불며

더 빠른 지름길이 있는지 새로 돋을 꽃을 그리며 영혼을 불어넣던 방

긴 겨울을 푸른 불꽃에 올리며

노을은 다시 새벽이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 월간 우리202212월호(통권41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