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애월문학' 2022년 제13호의 시(1)

김창집 2022. 12. 10. 00:52

 

겸손 강선종

 

 

애꾸눈의 세상에선

한 쪽 눈 감고 사세요

두 눈 가졌다고 으스대면

병신 취급당합니다.

 

조금 안다고

거들먹거리지 말고

이게 아니다 싶어도

바꾸려 하지 말아요

 

웃자란 가지는 목이 메이고

높은 곳에 앉은 새는

사냥꾼의 표적이 됩니다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겸손한 자세로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여 사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크리스마스 - 김동인

 

 

하늘이 땅이 된 날

흰 눈은 세상을 흰 도화지로

새로 그려 보라고

다시 그려 보라고

고요하게 외친다.

마굿간에 자리 잡고

이곳에서 새로 시작하잔다.

 

 

 

산방산 김영숙

 

 

우람한 산이

바람을 막는다

 

치마 속,

바람도 자는 88일만에

노오란 유채꽃이 비명을 지른다

 

젖은 비에

갓 태어난 봄의 씨

 

 

 

종이책 김옥순

 

 

종이책은

차거운 마음을 녹여 아랫목처럼

편안함을 선사하는 카페이며

골목길 모퉁이에 따스함을 품은

낡은 의자입니다

 

인생말년

함께 가는 멋진 친구이자

말동무입니다

 

 

 

나무의 일생 강연익

 

 

추운 겨울 지나고 입춘을 맞아

푸른 잎이 돋아나면 산새들이 찾아와

즐거운 노래로 숲속의 긴 침묵을 깨운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듯이

땅속에 박혀 있는 뿌리가 물과 힘을 받아

든든하게 땅 속 깊이서 견디어 왔다

 

나무의 몸통으로 세월을 알 수 있겠지만

흔들리며 살아온 영혼의 고통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의 일생을 얘기할 수 있을까?

 

어쩌다 강풍이 몰아칠 올 때에는

가지에 생명의 순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견뎌내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 애월문학2022년 통권 제1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