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제주시조' 2022 제31호의 시조(5)

김창집 2022. 12. 18. 01:13

 

감나무 문혜영

 

 

전깃줄에 앉았네

제 아이 잃더니

둥지 잃고 허둥대던

누이 닮은 그 바람

둥지에 감하나 품고

누이처럼 앉았더라

 

귓전을 울리는

모자란 년 뺨 한 대

열매 하나 들지 않던

세 살 먹은 감나무에

잎사귀 뒤 숨었더라

감 하나 품은 내 누이가

 

 

 

모과나무 송두영

 

 

평생을 정원 속에 눈길 끌던 나무가

어느 날 힘없이 푸른 잎 내려놓아

힘들게 시들다 마른

가지 끝 그 꿈들

 

해마다 붉은 꽃

껍질 벗던 그 봄을

죽으면 잊힐까 내던진 독백이

욕심을 갓 넘긴 이 길

장맛비에 젖는다

 

 

 

배롱나무꽃 사설 양상보

 

 

  아홉 살 새 색시가 시집가던 바로 그날 열세 살 새 신랑이 말에서 떨어져서

  아, 이런 운명이라니 생과부가 되었는데요,

 

  남편 따라 죽자 하던 그 마음을 내려놓고 묘소를 지키며 산 한 평생 효부의 길 신평리 열녀오씨지문’* 또 한 세상 여는데요,

 

  가슴속 멍울 같은 오름과 오름 사이 돌처럼 살았기에 돌을 깎아 세운 집에

  여든 해, 배롱나무꽃 이어 달려 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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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울돌목 오영호

 

 

바다가 우는 소리에

 

충무공 넋이 번쩍

 

소용돌이치지 않은 삶이 있기나 하냐고

 

솟구쳐 행방을 찾듯

 

멈칫하는 케이블카

 

 

 

가을은 이경숙

 

 

긴 여름 뙤약볕을 온전히 받아내는 거

설익은 초록 사랑을 빨갛게 익히는 거

거미줄 고추잠자리처럼 몸무게를 줄이는 거

 

나란히 벌레에 먹혀 맛있는 요리되는 거

서로의 옥수수 알을 겨울 되어 봐주는 거

비교는 하지 않으며 작은 일도 반기는 거

 

 

              *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2 3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