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계간 '산림문학' 2022년 겨울호의 시(1)

김창집 2022. 12. 24. 00:12

 

 

*산림문학이 만난 문인 - 박용구

 

 

복수초

 

 

한 달이나 늦게 핀

마당의 복수초

큰 대접을 받지 못한다

 

중요한 건 타이밍

 

끓을 때 끓고

익을 때 이어야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듯이

꽃피는 것이 너무 늦어도

대접 받지 못하는 것은

꽃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늦게 핀 노란 복수초

안쓰럽기 한량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나무로

 

 

나무가 좋아 모였습니다

숲이 좋아 산으로 왔습니다

작은 씨앗 싹이 터

비를 맞고 바람에 씻기며

십년을 자라더니

앙팡지게 예쁜, 보기 좋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십년이 지나 되돌아보니 우리도

산속에 나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아는 물푸레나무가 되고, 명이는 오리나무

영이는 소나무가 되었고, 철이는 잣나무가 되었습니다

숙이는 대팻집나무, 연이는 신갈나무

귀련은 수양버드나무가 되었고, 정이는 현사시나무가 되었습니다

식이는 느티나무가 되고 희아는 회화나무가 되었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들도 모두 나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나무로

봄이 되면 연초록 옷을 입고 환희를 노래하고

오월 훈풍 불어오면 기쁨의 춤을 춥니다

칠팔월 무더위 녹음으로 덮어주고

서리 내린 시월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고

흰 눈 오는 계절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나목이 되어

무던히 살아온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보곤 합니다

 

나무라서 행복합니다

어렵고 귀찮고 괴로운 세상사 모두 다 잊고

풋풋한 향기 나는 숲속에서

손을 잡고 따스한 사랑 이야기 나누며

생기를 찾아가니

저절로 행복합니다

 

지난 십년 잘 보냈고

앞으로도

딱 그만큼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나무들은 속삭입니다

 

 

 

차를 배우며

 

 

차를 배우는 것은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싹이 터서 차나무 자라 삼사 년 지나면

이슬을 털어가며 찻잎을 따고

수분을 말려 솥에 덖어 유념을 하고 또 해서

다시 말리면 녹차가 된다

 

입춘이 지나 88일이 지나면

곡식을 심는 절기 곡우가 온다

곡우 이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가

귀한 우전차다

 

차나무를 기르는 일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기르는 정성이 따른다

잡초도 없애주고 유기질 비료도 주고

가지를 잘라주어 새싹이 많이 돋아 오르도록 관리를 해야

향기 좋은 차 잎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의 기쁨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고

이별의 쓰라림도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이

차도 기르고 만들어 마셔보아야만

그 참맛을 가늠할 수 있다

 

차 맛을 알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시간에

 

 

매년 그렇듯이 크리스마스 케롤이 울려 퍼질 때

쨍하고 얼어붙은 회색빛 하늘에서

하얀 눈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막연한 설레임에

먼 젊은 날 같은 숨결이 가슴을 메운다

 

그렇지!

올해 우린

동구 앞 당산목처럼

신의 축복을 받았다

 

찬란한 금빛 새해 앞에

아름다운 꿈을 향해

또 다시 굳건히 서 본다

 

끝없는 감사

더없는 기쁨

한없는 찬양과 함께

저 심연의 바다와 같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환희

 

그래, 다시 오는 새해가

고맙고 고맙다

   

 

                  * 계간 산림 문학2022년 겨울호(통권 4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