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의 시(11)
김창집
2022. 12. 25. 00:41

♧ 소주가 한 병이면
더 바랄 게 뭐 있으랴
소주 한 병 있으면
안주가 필요하랴
깍두기로 충분하다
하루가
이렇게 꽉 차
절로 지는 놀을 보며

♧ 바람난 매화
젖 망울
커질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만
햇살에 낯붉히더니
짙은 향
울담 넘었다
‘그 매화
바람났구나’
고 시인의 짧은
평

♧ 문장부호
어린 시절
물음표
커가면서
느낌표
무겁구나 장년
쉼표
나이 들수록
말없음표
내 삶은
문장부호다
마침표
하나 남겨놓은

♧ 봄비․2
봄비
그냥 오는데
땅은
벌써 속살 젖다
시인은
겨울옷
아직 벗지 못하는데
호박씬
지구를 들고
벗은 채 일어났다

♧ 일출봉에서
바다가 취한 성산포
오늘은
내가 취하다
구름에 가린 해가
꿈틀꿈틀 해매더니
아, 이런!
내 가슴 태우고
머리 위에 떴구나
*고성기 시집 『이제 다리를 놓을 시간』 (한그루, 2022)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