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한수풀문학' 2022년 제17호의 시(2)

김창집 2022. 12. 29. 00:44

 

[특집 1] 나의 바다, 나의 포구

 

 

浦口 고성기

 

1

빈 배 머문 포구에는

노을 베고 누운 하루

 

사공이 남긴 외길

밀물이 먹어들면

 

개펄에

닻 부려 놓고

섬을 향해 눈 감는 배.

 

 

2

비바리 갈옷 적삼

뉘 볼라 설익은 속살

 

등에 밴 소금길랑

그냥 지고 가더라도

 

남겨둔

유자 꽃망울

밤새 살몃 피었다.

 

 

3

배 떠난 삶의 둘레

마파람만 서성이고

 

솔잎에 찔린 낮달

시름시름 앓던 그날도

 

섬 기슭

어욱밭에는

들꿩 알을 품는다.

 

 

 

신 원담 조약 김양희

 

 

썰물에도 나가라

밀물에도 나가라

 

폭풍의 힘을 딛고 가야 할 낯선 곳으로

 

돌그물

찢어도 좋다

문호를 개방한다

 

 

 

ᄆᆞᆯ머릿개馬頭浦 - 문영인

 

 

지형이 말머리 모양이라

ᄆᆞᆯ머릿개라 하지 않았다

5소장, 6소장에서 뛰어놀며 자란

튼튼한 말을 선발하여

곱은장으로 옮겨왔다가

출륙을 앞두고

마대기 빌레에서 불안에 떨며

바람 잔 날을 기다리다가

배에 실려

육지로 나가

대륙의 전장에서 군마로 고달품을

뿌리인 초원을 그리워하며

일생을 마쳐야 했던 가지 들

ᄆᆞᆯ머릿개는

100여 년 간 말을 배에 태우던 곳

한림항의 옛 이름

마대기빌레

곱은장

육소장은

말을 낳고 키워 보냈던

제주말의 고향이었다.

 

 

 

여름날의 꿈 문태후

 

 

비양도

뒤편 바다에

붉은 노을이 뉘이면

옹포포구

끝자락엔 작은 별이 깜빡거려

 

잠 못 이루는

여름날 밤 창밖을

향해 주문을 외우니

저 멀리 섬에 큰 별이 뜬다

 

밀려오듯

다가오듯

 

빠져나올 수 없는

신비감에 휩싸여

 

소년의 꿈은

메아리가 되어 허공을 달려

끝나지 않을

잠들지 않는 희망의 빛으로

 

비양도 불 페촉

비양도 불 페촉

 

 

 

떠나는 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이윤영

 

 

바다에도 가을이 온다

해초 더미 밀려오는

수평선 저 끝까지 마음을 뺏기고 나면

갈 곳 없는 발자국이 이끄는 대로

한적한 바닷가

하얀 등대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등대는 바다로 향하는 배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두 척의 배가 나란히 묶여

바람이 불어주는 파도에 몸을 맡겨 살짝 흔들리고

가르릉 가냘픈 엔진소리 끊었을 시간은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은 아득하다

집어등에 불을 밝히며 타올랐던 근육질의 시간

지금은 그저 망망대해 바다를 스캔했던 추억만 간직한 채

괭이갈매기 날갯짓에만 눈길을 주고

떠나는 배에게 그랬듯이

떠나는 자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등대는

 

 

 

금능포구에 가면 차영옥

 

 

이른 새벽

어둠을 뚫고 기상하는

금능포구

 

칠흑의 어둠 속

깊은 바다 끝에서

찬란한 빛이 솟아오르면

물찬 고기들이

숨 가쁜 행렬이 시작된다

 

영차 어영차

만선을 노래하는

어부들의 힘찬 합창소리

 

몸에 가시 돋우며

울타리 안을 숨죽이며

제각각의 변신을 하고

뒤엉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수백 수천 마리의 고기들

 

그들 사이를 하루하루

포식자가 되어버린

새들만의 낙원

금능포구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2022 1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