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풀문학' 2022년 제17호의 시(2)

[특집 1] 나의 바다, 나의 포구
♧ 浦口 – 고성기
1
빈 배 머문 포구에는
노을 베고 누운 하루
사공이 남긴 외길
밀물이 먹어들면
개펄에
닻 부려 놓고
섬을 향해 눈 감는 배.
2
비바리 갈옷 적삼
뉘 볼라 설익은 속살
등에 밴 소금길랑
그냥 지고 가더라도
남겨둔
유자 꽃망울
밤새 살몃 피었다.
3
배 떠난 삶의 둘레
마파람만 서성이고
솔잎에 찔린 낮달
시름시름 앓던 그날도
섬 기슭
어욱밭에는
들꿩 알을 품는다.

♧ 신 원담 조약 – 김양희
썰물에도 나가라
밀물에도 나가라
폭풍의 힘을 딛고 가야 할 낯선 곳으로
돌그물
찢어도 좋다
문호를 개방한다

♧ ᄆᆞᆯ머릿개馬頭浦 - 문영인
지형이 말머리 모양이라
ᄆᆞᆯ머릿개라 하지 않았다
5소장, 6소장에서 뛰어놀며 자란
튼튼한 말을 선발하여
곱은장으로 옮겨왔다가
출륙을 앞두고
마대기 빌레에서 불안에 떨며
바람 잔 날을 기다리다가
배에 실려
육지로 나가
대륙의 전장에서 군마로 고달품을
뿌리인 초원을 그리워하며
일생을 마쳐야 했던 가지 들
ᄆᆞᆯ머릿개는
100여 년 간 말을 배에 태우던 곳
한림항의 옛 이름
마대기빌레
곱은장
육소장은
말을 낳고 키워 보냈던
제주말의 고향이었다.

♧ 여름날의 꿈 – 문태후
비양도
뒤편 바다에
붉은 노을이 뉘이면
옹포포구
끝자락엔 작은 별이 깜빡거려
잠 못 이루는
여름날 밤 창밖을
향해 주문을 외우니
저 멀리 섬에 큰 별이 뜬다
밀려오듯
다가오듯
빠져나올 수 없는
신비감에 휩싸여
소년의 꿈은
메아리가 되어 허공을 달려
끝나지 않을
잠들지 않는 희망의 빛으로
비양도 불 페촉
비양도 불 페촉

♧ 떠나는 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 이윤영
바다에도 가을이 온다
해초 더미 밀려오는
수평선 저 끝까지 마음을 뺏기고 나면
갈 곳 없는 발자국이 이끄는 대로
한적한 바닷가
하얀 등대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등대는 바다로 향하는 배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두 척의 배가 나란히 묶여
바람이 불어주는 파도에 몸을 맡겨 살짝 흔들리고
가르릉 가냘픈 엔진소리 끊었을 시간은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은 아득하다
집어등에 불을 밝히며 타올랐던 근육질의 시간
지금은 그저 망망대해 바다를 스캔했던 추억만 간직한 채
괭이갈매기 날갯짓에만 눈길을 주고
떠나는 배에게 그랬듯이
떠나는 자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등대는

♧ 금능포구에 가면 – 차영옥
이른 새벽
어둠을 뚫고 기상하는
금능포구
칠흑의 어둠 속
깊은 바다 끝에서
찬란한 빛이 솟아오르면
물찬 고기들이
숨 가쁜 행렬이 시작된다
어~영차 어~영차
만선을 노래하는
어부들의 힘찬 합창소리
몸에 가시 돋우며
울타리 안을 숨죽이며
제각각의 변신을 하고
뒤엉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수백 수천 마리의 고기들
그들 사이를 하루하루
포식자가 되어버린
새들만의 낙원
금능포구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 2022 제17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