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의 시조(4)
♧ 발자국의 시
지우려면 싹 지우고 그냥 돌아갈 일이지
산방산과 해안변에 발자국으로 써 놓은 시
파도와 비바람마저 씻지 못한 저 발자국들
♧ 남극노인성
우러러 우러르라 장수의 별 뜨는 마을
서울, 평양, 제주시 그 어디도 안중에 없고
서귀포 그리움의 땅 칠십리로 오시는 별
한여름 밤 지배하던 전갈자리 떠난 하늘
불배들 간절한 꿈 하늘 닿아 타오르는
호박꽃 다 졌는데도 반딧불처럼 떠도는 별
아버지 저 바다에서 무슨 꿈 그리는가
할망당에 두 손 모으듯 그 무엇을 빌고 있나
우러러 우러르시라 별의 마을 서귀포
♧ 밥 한술만 내밀어도
뫼비우스 띠처럼 온종일 눈 오는 날
점심상 받아놓고 밥 한술만 내밀어도
4․3땅 쇠테우리로 펏들펏들 떠도는 눈
♧ 슬픔으로 먹는다. 꿩
오늘은 얼마 벌었노?
이 산 저 산 곡쟁이야
상주보다 서러우냐?
돈이 적어 서러우냐?
어머니 무덤가에는
낼 돈이나 있더냐?
♧ 돌담올레 오조리
빙빙 잠자리 떼처럼 돌고 도는 돌담올레
어느새 팽나무도 이정표처럼 늙었지만
백년쯤 가면 끝나리 그 모래밭 그 이별
그냥 가지 왜 왔냔 듯 물동동 저 물새 떼
갈대숲과 일출봉을 물속에서 져 나르네
그 속에 흩어진 울음 그 울음도 지고 간다
그런 말 하지마라 “4·3은 무슨 4·3”
강씨 할망 어딜 가고 돌아앉은 빈 난간
거기에 숨비소리가 아흔을 넘고 있다
*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황금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