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오랜만에 고향을 느끼며

김창집 2018. 7. 6. 08:44


어제는 올레20코스 후반부 길

한동리에서 평대리를 거쳐

세화리 해녀박물관까지 걸었다.

 

도시 같으면 울타리를 높이 올리고

한 평 화단도 없는 집이 많은데,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열린 마당 옆으로 온갖 꽃이 피었다.

 

요즘 들판이나 오솔길을 걸으면

아직 여름 꽃이 피지 않아 석석한데

고향을 생각하는 꽃이 다 피었다.

 

참나리로부터 해바라기, 봉숭아,

백일홍, 다알리아, 능소화, 접시꽃 등등.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도 어질다는데,

순박한 사람들을 닮았다.

 

새로 크게 지어지는 집들도 있지만

소박한 슬레이트집이 그대로 남았다.

 

모처럼 고향을 느끼며

세화오일장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왔다.

 

 

 

고향집 - 심지향(상순)


고샅을 돌아가면 금방이라도

대문밖에 엄마가 나와 서서

살뜰히 손잡아 정겹게 반길 듯한

판화처럼 조용한 동네

 

무엇 하나 자랑할 것도 없고

꼬집어 흉 볼 것도 없는

거울 속 내 얼굴 같이 편안하게

아무렇지도 않던 마을

 

다정한 부모님 곁, 나고 자란 터

뼈아픈 전쟁에 아버지 잃고

따뜻하고 평화롭던 낙원에서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진 고단했던 삶

 

다 잊고 고향 없이 살자는데

언제나 깊은 가슴 한켠

푸른 멍울로 가라앉아 있는

조용하고 양지바른 작은 뜨락

 

전쟁에 등 떠밀려 떠나온 곳

강산이 변하는 격변의 세월 지나

양철지붕 탯자리 나무대문 간 곳 없이

거기 아픔이 고인 자리

 

도심 속 빌딩의 현란한 네온 불빛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된 타인의 거리에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앙금으로

무겁게 갈앉은 낯선 그리움

   

 

 

봄날, 고향집에 들렸지요 - 김귀녀

 

고향집에 들렸지요

어머니도 오라버니도 없는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는

바닷가 이층집

 

떼어버린 문짝들

산더미처럼 쌓여 있네요

뼈대만 남았네요

 

파도소리 숨 들이 쉬고 내 쉬고

입 벌린 이층집

별들이 모여 살던

알싸한 어머니 향기 맡을 수 없네요

 

묵묵히 바라보니

갓길 끝에 물이 오른

느티나무 통곡을 하네요

 

능소화 마른가지 목마르다하고

그 바람에 가슴 앓네요

이 밤 내내

허공을 다 던져도

그 아픔 사라지지 않네요

 

 

 

고향집 - 姜大實

 

굴뚝새 포로롱 달아나는

어스레한 헛청에

거미줄 어지럽다

 

등태 흘린 빈 지개

주인을 기다리고

 

날근날근한 덕석

외로 누워 잠이 깊다

 

속 탄 괭이며 쇠스랑

절단난 삽

수선스레 뒹구는데

 

능청스런 호미

응석 부리며

발목을 잡는다.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 김경윤

 

어머니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다녀와야 한다고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아이들과 꽃씨를 심었다

살가운 햇살은 아이들의 볼에 보송보송 땀방울로 맺히고

철없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호 하하 꽃이 피었다

마당귀 멍석만한 텃밭 모롱이 어머니의 꽃밭에서

마른 풀 걷어내고 녹슨 호미로 묵은 땅을 파며

봉숭화 채송화 나팔꽃 해바라기 꽃씨를 심는 동안

나는 자식을 꽃씨처럼 키워온 어머니의 세월을 생각했다

좁쌀만한 이 씨앗들이 어서 자라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날이 오면

어머니의 뜰에도 향기 가득한 봄날이 올까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새우잠을 잔

그날 밤, 창 밖의 별빛은 당산나무 가지마다 총총하고

십리 밖 파도소리도 밤새 쟁쟁하였다

 

 

 

그리운 나라 - 김희숙

    -고향집

 

거미가 바람 집을 짓고

앙상한 뼈 가지로 남아

가슴 쿡쿡 찌르고 있었다

 

컹컹 짖어대며

골목길 누비고 노닐던

삽사리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삽삽한 바람만 적막을 가르고

한 치의 막힘도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공터가 되어버린 곳에

노을빛마저 스러져가고

칠 흙 같은 어둠 내려앉고 있었다

 

마음의 안식

추락하고 있었다

   

 

 

잊어버린 고향집 우편번호 - 오정방


언제였던지 까마득하구나

하얀 편지지를 펴놓고 펜을 잡아

친척들의 궁금한 안부를 묻고

또 내 살아가는 소식을 담아

배달료로 우표를 침으로 붙여

고향집에 소박한 편지를 띄운 것이

 

생각나면 전자우편을 보내고

필요하면 전화 다이얼을 돌리고

무척 편리한 세상이긴 하지만

정서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한없이 메말라 가고 있었구나

이젠 잊어버린 고향집 우편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