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낸시빌레를 찾아서
북촌포구에서 그 옛날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을 ‘도아치물’을 살펴본다. 돌을 깎아 예쁘게 둘러놓았는데, 제주마을 용천수 대부분이 그렇듯 ‘물 긷는 곳’과 ‘채소 씻는 곳’, ‘빨래하는 곳’의 구분을 해 놓았다. 양쪽으로 물팡을 길게 만들어 놓은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것 같다.
포구를 지나 골목길로 접어든다. 한꺼번에 300여명이 희생되었기에 그 이후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밤이 되면, 이 골목에도 제사를 치르느라 향냄새가 진동했을 터. 끊어질 듯 숨어 우는 울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멀리 떠있는 다려도와 환해장성을 번갈아 바라보며 일주도로로 나와 동복리와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교차로에 세운 ‘낸시빌레’ 안내판이 보인다.
‘낸시빌레’는 1948년 12월 16일 북촌마을 청년 24명이 당시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 군인들에게 학살당한 곳이다. 12월 들면서 ‘무장대에 협조 여부와 관계없이 군부대에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피신해 있거나 민보단에서 협력하던 청년들이 대대본부로 갔는데, 5월 10일 총선에 불참했던 이유로 이곳에 모아놓고 총살시켰다. ‘낸시’는 ‘냉이’를 뜻하는 지역어로 지금 ‘낸시빌레’에는 호텔이 들어서 있어 교차로에다 안내판을 세운 것이다. 길 건너 조금 서쪽에 ‘북촌소공원’이 있던데, 그곳에 위령비를 세우면 어떨까.
□ 꿩동산의 비밀
낸시빌레에서 서쪽을 향해 걷는다. 여섯 번째로 거쳐야 하는 4․3 역사의 현장인 꿩동산으로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꿩동산공원은 낸시빌레로 가기 전에 이미 거친 상태다. 우리가 ‘동산’이라고 하면 지형상 높은 곳을 말하는데, 여기 도로를 넓히면서 남쪽 소나무가 빽빽했던 동산은 거의 길에 들어가 버려서, 북쪽에다 조그맣게 터를 마련하여 자연석을 세우고 ‘꿩동산공원’이라 새겼다.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1949년 2월 4일 99식 소총을 반납하러 제주읍으로 가던 2연대 병력이 이곳을 지날 때, 무장대가 꿩동산에 숨었다가 그들을 덮쳐 소총 150정을 탈취했다.’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2연대 병사 15명과 경찰 1명이 사살 당했다. 황요범 선생의 저서 ‘애기무덤’에는 당시 희생당한 군인들을 위령하는 비석이 이곳 꿩동산에 세워졌다가 1990년대 초 일주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조천읍 충혼묘지로 옮겼다고 한다.
□ 집자리 유적인 고두기 엉덕
일주동로로 진행되던 4․3길은 남쪽으로 난 북촌14길로 방향을 바꾼다. 왼쪽에 새로 조성된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섰고,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원 마을 주택가가 이어진다. 거기서 얼마 안 가 ‘고두기 엉덕’이라는 커다랗고 빨간 화살표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제주도 기념물 제42호 북촌리 바위그늘 집자리다.
이곳은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동굴지형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형태의 집자리 유적이다. 1973년에 발견된 후 1986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4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맨 바닥층은 신석기 후기의 이중구연토기, 점렬문토기 등의 토기류와 석기, 골각기 등이 출토되었고, 동굴 안쪽에서는 동물 뼈, 패류, 불에 탄 산초 열매 등과 같은 자연유물도 다량 확인되었다. 그 위층에는 청동기, 탐라시대 유물들이 지층이 쌓인 순서대로 확인되어 이곳이 오랫동안 주거지로 이용되었음을 말해준다.
□ 포제단도 둘러보고
고두기 엉덕에서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북촌12길과 만나는 조그만 오거리를 만난다. 그곳에 포제단 입구 표지석과 표지판이 크게 세워져 있어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안내판에 의하면 북촌리의 포제(酺祭)는 오래전부터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지내온 마을제인데, 4․3으로 2년간 중단되었다가 부활시켜 해마다 봉행하고 있다.
들어가다 오른쪽에 현대식 기와집으로 제관숙소까지 마련했고, 거기서 안으로 들어간 곳에 널찍한 장소를 마련해 울타리를 두르고 제단을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위아래 번듯하게 지어 놓았다. ‘제단 개수기’를 보면, ‘북촌리에서는 예로부터 조상의 음덕을 기려 설을 지낸 뒤, 초정(丁)일이나 해(亥)일을 택해 마을수호신에 대한 고사를 지내어 왔는데, 시설이 노화되어 2008년 행정당국의 도움으로 개수했다고 새겼다.
□ 안타까움의 마당궤
앞선 북촌포구 사건, 즉 1948년 6월 16일에 바람을 피해 포구에 입항한 경찰 2명이 희생된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서는 군경이 들어와 범인을 수색하느라 아수라장이 되었고, 특히 젊은이들을 의심하여 잡아갔기 때문에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요범 선생의 저서 ‘애기무덤’을 보면, 그 때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토벌대의 수색이 강화된 6월 22일에 이곳 마당궤에 숨어있던 마을청년 9명이 발각되어 제주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이 일반 가정집 뒷마당의 궤는 그리 깊지도 넓지도 않아 급할 때 임시로 피신할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다. 연행된 9명의 청년들은 육지 형무소로 보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아직도 행방불명으로 남아있다.
이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돌아오지 못하는가? 이 사건은 72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사안의 하나로 생각할수록 가슴 먹먹한 일이다. ‘사월이 길은 낸다’는 김진숙 시인의 시처럼 조용히 기다리면 해결될까?
‘주인 잃은 신발들이 낙엽 따라 흩어지고/ 뒷마당 동백나무가 힘없이 잘려나갔던/ 사월이 붕대를 풀고 성큼성큼 오십니다./ 먼 길 오시는 밤에 꽃등 하나 켜두렵니다/ 수선스럽지 않도록 마음 한 자락 비워두고/ 지상이 부시지 않게 소리 없이 켜두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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