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숲’, ‘생명의 숲’이란 명제를 내걸고, 2009년 9월 15일 제주시 5.16도로 2596(용강동) 소재 194ha의 부지에 개원한 한라생태숲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도민들은 물론 전국으로 널리 알려져 탐방객들에게 교육장이자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 숫ᄆᆞ르숲길은 생태숲 주위를 도는 코스인데, 안내소를 출발하여 꽃나무 숲까지 4.2km에 이르며, 중간지점에서 절물자연휴양림 사이 숫ᄆᆞ르편백숲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숫ᄆᆞ르’는 옛 지명으로 ‘숯+마루’의 제주어식 표기인데 ‘숯을 구웠던 등성이’란 뜻이다. 이제 숯을 구웠던 가마 같은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명에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숯을 많이 사용하던 당시에는 많이 드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 사랑의 나무, 연리목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약 240m 지점, 탐방로에서 숲길로 들어가는 길목에 연리목이 자리해 있다. 연리목(連理木)은 ‘나무가 서로 가까이 자라면서 성장한 줄기가 맞닿아 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줄기가 아닌 가지가 서로 통하면 ‘연리지(連理枝)’라 한다. 이는 나무가 10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탄생한다고 하며, 호사가들에 의해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어 ‘사랑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전국 곳곳의 숲에서는 이러한 나무를 찾아내어 기념물처럼 관심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생의 숲길’에도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나무나 같은 과의 수종에서 한 몸이 된 것은 있어도, 성질이 다른 나무끼리 한 몸이 되는 수는 없다. 이곳에 있는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와 때죽나무과의 때죽나무가 한 살처럼 보이는 것은 서로 밀착해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웃과 정을 깊이 나누며 살다보면 남 보기에 한 가족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 위기의 제주 소나무
탐방로에서 숲길로 들어서는데, 길에 줄을 쳐놓고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를 자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양해를 얻고 지나가며 사진을 찍고 보니, 수령 100년은 훨씬 넘어 보인다. 이곳은 제법 고지대여서 해변에 자리한 오름보다는 비교적 재선충 피해가 적어, 아직도 베어버린 그루터기는 많지 않고, 곳곳에서 건장한 소나무들이 확인된다.
침엽수는 여름이 짧은 곳이나 한랭하고 고도가 높은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수종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지금 지구온난화로 인해 피해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를 테면 심한 기후변화로 수많은 생물이 멸종되고 번성하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이 소나무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하는 방제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 숲에서 만난 사람들
지난 일요일에 왔을 때에는 10명 안팎의 소모임이나 단체가 많더니, 오늘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나이가 조금 든 부부이거나 연인 또는 자매나 친구로 보인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도 제법 관찰된다. 이곳 한라생태숲은 5.16도로변에 면해있고 입구에 바로 정류장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기 용이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운동이나 산책을 위해 자주 찾는다. 운동량을 늘리려면 장생의 숲길과 연계해 얼마든지 조정할 수도 있다. 운동을 하는 분들은 무엇에 쫓기듯 빨리 걸으며, 사색을 하거나 꽃과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 중에는 혼자인 경우도 더러 보인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건강 걷기가 활성화 되어 있어 앞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 제주 사람과 양하
이제 9월도 중순, 음력은 8월 초가 가까워져 바야흐로 벌초 철이다.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양애깐’이다. 생강과에 속하는 양하(蘘荷)의 꽃봉오리인데, 옛날에는 주로 제사 때 나물로 무쳐먹었고, 요즘에는 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한다. 양하가 이곳 숲길에도 번지기 시작했는데, 길이 끝나는 곳에는 양하밭처럼 마구 번진 곳도 보인다.
양하는 주로 제주를 비롯한 남해안 지역에 나며, 뿌리가 깊게 박히지 않아 겨울에 얼기 때문에 추운 지역에서는 살 수 없다. 과거 제주에서는 초가집 지실물(낙숫물)이 떨어지는 곳에 이 양하를 심어서 집으로 물이 스미는 것을 막았다. 잎사귀에서 더러 걸러지기도 하지만 생강처럼 얽힌 뿌리가 방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 있어서 봄 새순이 솟아날 적에는 꺾어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채소로 먹기도 하고 가을 꽃봉오리가 솟아날 때 따먹는데, 독특한 향취가 있어 좋아하는 어른은 무척 즐기나 적응 안 되는 아이들은 싫어했다. 그리고 잎을 따서 시루구멍을 막기도 하고, 비닐봉지나 제대로 된 반찬통이 없던 시절, 밭에 가면서 된장이나 자리젓 같은 반찬을 덮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그러나 요즘은 산야에 너무 번져 생태교란식물로 지목되고 있다.
□ 숲길에 핀 방울꽃과 물봉선
이번 숲길을 걸으며 유독 눈에 띄는 들꽃은 방울꽃과 물봉선이다. 쥐꼬리망초과에 속하는 방울꽃은 주로 제주에 분포하는데, 육지부에 나는 하얀 은방울꽃과는 전혀 다른 종이다. 높이 30〜60cm 정도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스피커 모양이고, 8〜9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며, 꽃말은 ‘만족’이다.
물봉선은 봉선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우리나라 전역에 두루 분포한다. 꽃은 방울꽃과 같은 시기에 피며 붉은빛이 도는 자줏빛이다. 높이 60cm까지 자라며 습한 곳을 좋아해서 물봉선이란 이름이 붙었다. 꽃 모양은 고깔처럼 생겼고, 끝을 말아 올린다. 본토에서는 노랑물봉선, 미색물봉선, 가야물봉선(흑자색), 흰물봉선이 분포하는데, 꽃말은 ‘날 건드리지 마세요.’다. (계속)
[사진 설명] 위로부터 1. 생태숲 안내도 2. 생태숲 연리목 3. 재선충으로 베어버린 소나무 4. 나무 사이로 난 숲길 5. 양하 꽃과 줄기 6. 방울꽃 7. 물봉선
* 이 글은 '뉴제주일보' 2020년 9월15일(화) 자에 실었던 필자의 글입니다. 격주로 연재되는데, 이어지는 글은 9월 29일(화)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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