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한라생태숲 숫ᄆᆞ르숲길(3)

김창집 2020. 10. 31. 09:32

*사람주나무 단풍

제일 먼저 물드는 사람주나무 단풍

 

  벌써 10월 말. 숲속 나뭇잎에서도 갑자기 변화의 바람을 느낀다. 여기서 제일 먼저 붉은 빛을 발하는 것은 사람주나무와 담쟁이덩굴이다. 낮에는 괜찮지만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꽤 내려가서인지 붉은 빛이 여기저기 감돈다.

  대극과의 사람주나무는 그리 흔치는 않지만 중산간 이상의 오름에서 자주 보인다. 단풍 든 모습이 사람의 홍조 띤 모습과 같다고 해서, 가운데 붉을 주()’자를 넣어서 이름을 붙였다는데, 단풍이 들어야만 눈에 잘 띈다. 나무에 오른 담쟁이덩굴은 아무래도 연하고, 뿌리에서 올라가는 수분이 부족해지는지 먼저 붉어졌다가 말라 떨어진다.

  단풍이 물드는 시기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제주 단풍의 질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리 시원한 편은 아니다. 그 이유는 바람이 많기 때문이다.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나 높은 가지의 잎사귀들은 벌써 상하거나 떨어져버렸다. 상처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약간의 추위에도 말라 떨어지기 일쑤고, 그 때문에 온전히 물들지 못한다. 다만 숲속 바람 의지의 단풍은 늦게 물드나, 그런대로 볼 만한 편이다.

 

*팥배나무(위)와 아그배나무(아래) 열매

팥배나무와 아그배나무

 

  걷다보니, 벌써 팥배나무에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아그배나무는 몇 개 보이는데, 나무가 커서인지 열매는 잘 안 보인다. 진입로 쪽에는 익은 배와 같은 색의 작은 열매가 꽤 달렸었는데. 제주 지역 산간에서 자주 보이는 아그배나무는 그 이름과 달리 장미과 사과나무속이다.

  아그배나무는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 황해도 이남에 분포하는 낙엽 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10m까지 자란다. 전라도 방언으로 아기아그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아기처럼 작은 배라는 뜻으로 그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5월에 연한 붉은색 또는 흰색 꽃이 짧은 가지 끝에 피는데, 작지만 모여 핀 꽃이 아름다워 사랑을 받는다. 열매는 10월에 익으며, 더러는 정원수로 재배하고 가구재로도 쓴다. 제주에는 중산간 이상의 오름이나 벌판에 많이 자생하는데, 특히 제주의 산이나 벌판에서 자라는 것을 제주아그배라고 한다.

  팥배나무는 극동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15m까지 자란다. 잎은 타원상 달걀꼴로 잎맥이 뚜렷하고 겹톱니가 있다. 이건 장미과로 이름엔 가 들어가지만 마가목속이다. 열매가 팥을 닮았고, 꽃은 배꽃처럼 희어서 이름을 팥배나무라고 했다.

 

*서서히 잡목림으로 변해가는 숲길 주변과 억새

천이과정 전시림

 

  한라생태숲은 구역을 정하여 같은 계열의 나무로 숲을 조성했다. 구상나무 숲을 비롯하여 벚나무 숲, 참꽃나무 숲, 단풍나무 숲, 산열매나무 숲, 야생난원 등이다. 그 중에서 숫ᄆᆞ르숲길의 마지막 부분 0.4km는 천이과정 전시림을 거치도록 구성되었다.

  숲의 천이(遷移)’는 숲의 변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로 허허벌판이나 불타버린 숲이 천천히 다시 숲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르며,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림인 것이다. 특히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처음엔 아무런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화산이 터지면서 화산쇄설물이 쌓이고 화산재가 날려 대지를 이루었다.

  그 대지에 바람이 불어 먼지도 쌓이고 비바람으로 지형이 변하면서 지의류와 이끼류들이 붙어살게 되고, 그곳에 풀씨가 날아와 터를 잡으면서 초원이 이루어진다. 제주에서는 햇볕에 강한 벼과 식물들, 그 중에 뿌리가 강한 띠와 억새가 초원을 장악하고, 소나무와 같은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들의 씨앗이 날아와 둥지를 틀면서 숲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다음에는 주로 새들에 의해 씨앗이 전파되어 다양한 나무들이 섞여 자라면서 안정된 숲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숲이 무성하다 보면 그늘이 생겨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참나무 종류가 자라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을 보인다. 목장이었던 이 숲에는 아직도 풀밭 일부가 남아 있고, 더러는 벌써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했다. 양하나 억새 무리가 남아 있는 곳도 있다.

 

* 한라돌쩌귀

제주 특산 한라돌쩌귀

 

  숲길이 끝나는 마지막 문턱과 같은 바위 옆에 한라돌쩌귀 대여섯 개체가 있어, 마침 꽃이 피어 청자색 빛깔을 드러내며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미나리아재비과 투구꽃속의 이 식물은 이름에 드러나듯이 제주특산식물이다. 하지만 섬투구꽃이라 하여 우리나라 완도와 중국 등지에 거의 같은 종이 자란다고 한다.

  꽃이 투구와 같은 속()인 투구꽃 계통은 우리나라에만도 수십 종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투구꽃이라는 대표적인 종 말고도 백부자라고 하는 노랑색 꽃이 피는 노랑돌쩌귀를 비롯하여 가는잎돌쩌귀, 세잎돌쩌귀, 그늘돌쩌귀 등이 있으며, 이름이 돌쩌귀라 붙은 것은 그 뿌리가 문에 다는 돌쩌귀 모양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이런 투구꽃들은 꽃이 고와서 화단에 심기도 하며, 덩이뿌리는 한약재로 널리 쓰인다.

 

*한라구절초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

 

  숲길이 끝나는 지점은 암석원과 꽃나무숲이 마주보는 꽃의 광장 삼거리. 이곳에서 숲길이 시작되는 안내소까지는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4500m 남짓한 거리다. 시간과 체력이 남는다면 어느 숲 한두 곳을 들러 가도 좋을 것이다.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꽃나무 숲이나 구상나무 숲, 벚나무 숲 쪽을 거쳐 가도 되고, 암석원을 따라 제주 특산식물들을 돌아보아도 좋다. 또 야생난원에서 제주특유의 새우란을 감상하거나, 이어지는 수생식물원을 들러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혼효림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바로 나오다 보면, 길옆에 심은 눈향나무나 영실 같은 한라산 높은 지대에 자라는 한라구절초를 만날 수도 있다.               <>

 

*화살나무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