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와 매화(梅花)
구억리 검은굴에서 걸어 나오면 중산간서로(1136번)와 만나는데, 그 옆이 바로 ‘노리매공원’ 입구이자 주차장이다. ‘노리매’는 우리말 ‘놀이’와 ‘매화 梅’의 합성어로 ‘매화가 있는 도시형 공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매화가 피기엔 이른 시기여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조선시대 시인묵객 치고 사군자(四君子) 좋아하지 않았을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당시 제주에서는 매화를 많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벚나무처럼 자생하지 않을 뿐더러 그걸 육지에서 들여다 심을 만큼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근래엔 감귤 대체 작물이랍시고 매실(梅實)을 얻기 위해 심기도 하지만, 필자가 자랄 때만 해도 주변에서 매화를 보기 힘들었다.
그로 미루어 추사에게 매화는 두어 점의 글이나 인장(印章)에서는 볼 수 있지만, 제주에서의 인연은 없는 듯하다. 추사가 1851년 66세 때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 가게 되는데, 그때 만난 제자 심희순에게 써준 ‘명월매화’라는 대련(對聯, 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대구)과 유배에서 풀려 잠시 과천에 기거할 때 쓴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이 눈에 띈다.
‘봄 수양 가을 갈대,/ 사인(詞人)이 강호를 잠시 떠나네./ 훗날 돌아오면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뤄,/ 손수 십만 그루 매화를 심으리라.// 나 또한 벽사호에 살며,/ 세 칸 수각에서 명주를 완상했네./ 문득 시구 탓에 고향이 생각나,/ 가을 물결 오리 뒤쫓는 그림을 그려보네.’
☐ 곶자왈 농로길
노리매 울타리 옆으로 난 길을 걸어 동북쪽 농로로 들어섰다. 곶자왈 지대였지만 대부분 농지로 개간하여 감귤을 심었다. 새로운 집들도 띄엄띄엄 보인다. 새해가 들었어도 아직 따지 않은 감귤이 많은데다, 관리를 하지 않아 가시덤불에 덮인 과수원도 있다. 가끔씩 보이는 자투리땅엔 곶자왈 형태가 조금 남았고, 더러는 후박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종가시나무 같은 상록활엽수도 들어섰다. 개간하며 여러 갈래로 길을 내어서, 길을 찾는데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돌아와 갈래길에서 조그만 표지판을 찾아내, 그 곳에 쓰인 사연을 읽어보니,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내용들이다. ‘…머나먼 변방에 귀양살이를 하게 되어 모진 고생과 상심 속에 구사일생으로 지냈다.’, ‘밤마다 외로운 마음 향 사르고 앉아 흐느껴 울 적마다 흰 머리털 느네.’ 등등.
추사가 대정으로 올 때는 지금의 평화로 옛길로, 돌아갈 때는 일주도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제주목에서 대정으로 가는 길은 원(院)이 있었던 지금의 ‘잃어버린 마을 원동’을 거쳐, 원물오름 앞을 지났을 것이다. 그 때가 음력 9월말이어서 ‘…밀림의 그늘 속으로 가게 되어 하늘빛이 겨우 실낱만큼이나 통하였는데, 모두가 아름다운 수목들로 겨울에도 파랗게 시들지 않는 것들이고, 간혹 모란꽃처럼 빨간 단풍 숲도 있다….’라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 전해진다. 곶자왈을 스치는 좁은 길 같은 데서 처음 본 상록활엽수와 그에 섞인 단풍이 퍽 신기했을 것이다.
□ 추사와 말[馬]
곶자왈 길을 걸어 나와 마주치는 큰길은 ‘녹차분재로(1121번)’다. 오른쪽으로 서광서리 라모인 빌리지 건물들이 보이고, 왼쪽엔 영농조합법인 서광목장이다. 목장에 가두어 둔 말들을 찍으러 가까이 다가서는데, 주인이 먹을 것을 주러 온 줄 알고 반기지만, 흔히 보던 제주마들이 아니어서 낯설게 느껴진다. 그건 요즘 말고기집이 많아진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추사가 9년 동안 제주 유배생활을 하면서 말을 타고 다녔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가는 일이고, 이곳 목장을 지나는 길에 ‘당시의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긴 추사적거지에 제주 말방아 돌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시까지 곁들인 걸 보면 개연성은 충분하다.
‘열 사람이 할 것을 말 하나로 돌리니/ 대정고을에 이런 신기한 게 있구나./ 하늘의 돌아감도 역시 이런 이치이니/ 선종이 공연히 애쓰는 게 우습기만 하구나’.
얼마 안 가 왼쪽에 승마장이 있었는데, 겨울이어서 그런지 사람과 말들이 안 보인다.
□ 추사와 차(茶)
목장을 지나고 나니 멀리 녹차밭이 보인다. 이번에 눈이 제법 와서 차나무 위에 더러 남아 있다. 짙은 초록의 차밭 너머로 눈이 쌓인 한라산이 멋있겠다 싶었지만 구름 때문에 언감생심이고, 가까이 있는 오름들에 눈길이 머문다. 사진을 찍고 걷다 보니 벌써 종착점 ‘오설록 차 박물관’이다.
추사와 차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은 수 없는 한 분은 오늘날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다. 유배기간 동안 다섯 차례나 대정을 방문했을 정도로 교분이 두터웠던 그는 정성껏 마련한 차를 자주 보내 외로운 친구를 위로했다. 그래서 추사는 ‘一爐香室(일로향실)’이라는 편액과 ‘茗禪(명선)’이란 글을 보내기도 했다. ‘茗禪(명선)’은 ‘차를 마시며 참선에 든다’는 뜻이라는데, 옆에 덧붙인 글에서 둘 사이의 우의(友誼)를 엿볼 수 있다.
'초의가 스스로 덖은 차를 보내왔는데, (중국의 유명한 차) 몽정이나 로아보다 덜하지 않다. 이 글을 써서 보답하는 바, (한나라 때 비석인) 백석신군비의 필의로 쓴다. 병거사의 예’.
이 글 말고도 얼마 전 ‘혜향’ 문집에서 우연히 본, 사회복지법인 춘강 ‘어울림터’ 원장 조인석 선생이 가지고 있다는 목판 ‘茶半香初(다반향초)’에서도 추사가 얼마나 차를 좋아했는지 잘 드러난다.
‘靜坐處茶半香初(고요한 곳에 앉아서 차를 반이나 마셨는데도 향은 그대로고)/ 妙用時水流花開(오묘하게 움직일 땐 흐르는 물처럼 꽃이 벙그네)’. 끝. *다음은 추사 유배길 3코스 ‘사색의 길’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필자가 2021년 1월12일자 뉴제주일보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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