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서귀포시 '하영올레' 2코스(2)

김창집 2022. 9. 3. 07:03

 

다시 돌아보는 정방폭포

 

  하영올레 안내지도를 보면 정방폭포는 나타나 있지 않고, 정모시 쉼터에서 서복 불로초 공원과 서복 전시관을 거쳐 그냥 소남머리로 이어져 있다. 생각해 보니 서너 해 전에 다녀간 뒤 지금까지 그 시원한 폭포를 못 본 터여서 들를까 말까 하는데, 길 구석에 서 있는 오래된 표석이 원망하듯 눈에 들어온다. 표석엔 한자로 瀛洲十景(영주십경)一景(일경) 名勝地(명승지)’라 쓰고 瀑高(폭고) 二八米(이팔미), 瀑幅(폭폭) 二三米(이삼미), 水深(수심) 十七米(십칠미), 面積(면적) 五一平方米(오일공평방미)’라 새겼다.

 

  폭포 앞은 금요일인데도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인증 샷을 찍느라 야단들이다. 물빛은 변치 않았는데 겨울철이라 아무래도 수량이 적어 보인다. 200888일에 명승 제43호로 지정된 정방폭포는 안내판에 폭포수가 수직 절벽에서 곧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폭포라 소개되고 있다.

 

 

 

폭포를 지키는 할머니들

 

  겨울 날씨답지 않게 맑고 포근해서 해녀 한 분이 물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반짝이는 물결 속에 그림처럼 어울린다. 오랜만에 해녀 할머니들을 만나러 해산물 파는 곳으로 가본다. 손님은 없고 할머니 두 분이 장사채비를 하고 있다가 반가이 맞는다. 대야에 담아놓은 해산물을 보니 멍게, 해삼, 작은 전복, 소라가 전부다. 겨울철이어서 여기서 나는 건 소라 한 가지뿐이다.

 

  할머니가 권하는 대로 모둠 한 접시를 주문했는데, 무슨 일인지 술은 판매하지 않고 있다. 폭포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잠시 주춤거리다 그냥 지나친다. 그러던 중 한 젊은 부부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자녀 둘을 데리고 와서 가격을 물어보고는 비싸다며 돌아서길래, ‘정방폭포 바다에서 해녀 할머니가 직접 잡아온 것을 파는 것이어서 가격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거라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고 슬쩍 말을 건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잡고 회 한 접시를 시킨다.

 

  요즘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자기 고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알리느라 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둘레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곳을 갈 때면 주민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이곳 해녀 할머니들은 정방폭포의 풍경이 된지 오래다.

 

 

 

서복 전시관

 

  잘 알다시피 서복(徐福 = 徐巿)은 중국 진시황 대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 불로초를 구하려 동남동녀 500을 거느리고 왔다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를 새기고 돌아갔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서복전시관은 이런 설화를 기초로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1999227일 문화관광부 전국 7대 문화권 개발사업으로 지정되어 2003926일에 개관되었다.

 

  전시관에는 서복상을 비롯 진시황릉의 청동마차와 병마용갱(兵馬俑坑)의 복제품 병마용등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서복공원휘호다. 2007410일 중국 국무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한중 수교 15주년 중 교류의 해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였다가 한중친선협회 회장으로부터 휘호를 부탁받고, 귀국해 그해 622일 중국 산둥성 정부에서 휘호를 돌에 새겨 제주특별자치도에 기증한 것이다.

 

 

 

소남머리와 소암 선생

 

소남머리는 조그만 동산으로 소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이다. 진입로에 ○○주민자치회와 마을주민회에서 내건 ‘43 위령비 설치 결사반대라고 쓴 붉은 글씨의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제주43때 전분공장과 단추공장 등에 수용되었던 일부 수감자들이 이곳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끌려와 256명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일이 있다. 요즘 43피해가족들의 오랜 숙원이던 문제들도 하나둘 풀려가고 있는데, 그 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그게 죽기를 각오하고 반대할 일이던가.

 

  정상부에는 소암 현중화 선생의 글씨 和風晴天(화풍청천)’과 사진, 그리고 약력과 함께 이곳 소남머리는 소암 선생이 예술적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자주 찾던 곳이라는 내용을 적은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바다와 섬, 절벽으로 이어지는 주위 풍경은 안온하면서도 변화무쌍하다. 또한 아래로 내려가면 자구리 담수욕장이 나타나고, 맑은 물이 철철 넘쳐난다.

 

 

 

자구리 해안

 

  소남머리와 이어지는 공간은 자구리 해안으로 시비(詩碑)를 비롯한 여러 가지 조형물로 장식해 놓았다. 그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중섭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그림판 모습이다. 이중섭 화백은 섶섬과 문섬이 보이는 이곳 자구리 해안에서 부인과 5, 3살짜리 두 아이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아름다운 가족의 사랑이 담겨 있는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라 소개되었다.

 

   이외에 150분 서예작가들의 작품을 현무암 판석에 새겨 놓은 맨발로 걷는 문화마당으로부터 고정순의 작가의 아트파고라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이곳 서귀포 출신 한기팔 시인의 서귀포에 와서는이란 시비가 분위기를 잡는다.

 

  ‘서귀포에 와서는/ 누구나 한 번은 울어버린다/ 푸른 바다가 서러워서 울고/ 하늘이 푸르러서 울어버린다// 촉새야 촉새야/ 소남머리 거벵이 바위틈에 앉아 우는/ 외짝눈이 촉새야/ 바람이 불면 어찌하리요/ 노을이 지면 어찌하리요// 물결은 달려오다 무너지며/ 섬 하나를 밀어올린다/ 하얀 근심이 이는/ 날 저문 바다// 먼 파도 바라보며 울고/ 사랑이 그리움만큼/ 수평선(水平線) 바라보며/ 울어버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