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탱자는 익어가는데

김창집 2009. 10. 18. 00:11

 

 

 

늦가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늦게 단풍을 볼 수 있는 시오름에

올해는 좀 일찍 갔다. 아직 단풍은 전혀 물들 생각을 않는데

정상에서 사람주나무, 팥배나무, 담쟁이, 산딸나무 등이 변화한

모습을 지켜 보면서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하고 돌아왔다.


오후 4시에는 놀이패 한라산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고 초청

해와 제주시 오라3동 속칭 중댕이굴으로 갔다. 신제주로 가는 농협

하나로 마트 아래쪽인데 마을에서 창고로 쓰던 것을 임대, 마루를

깔고 조금 손을 봐서 연습실과 준비실로 꾸민 것이다. 오랜만에

풍물패 신나락의 공연과 마당굿 전상놀이 공연을 보고 왔다.


탱자나무는 운향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3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세 쪽 겹잎인데 작은 잎에 톱니가 있다.  5월에

흰 꽃이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피고 열매는 공 모

양의 장과(漿果)로 가을에 노랗게 익는다. 열매는 약용하고 울타

리용으로 재배한다. 금요일 과수원 울타리에서 찍은 것이다.



 

♧ 탱자나무 생울타리 지날 때 - 복효근


탱자나무 생울타리 그것은

아주 안 보여주지는 않고

다 보여주지도 않아서

그 가시나 낮달 같은 얼굴이 보일락 말락

탱자 잎사귀들이 그렇게 원망스럽던 것을

세수 소리보다 작게는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차박차박 물 붓는 소리

초승달이었던가 잠깐씩 구름을 벗어난 사이

푸르스름하게 비쳐오던 것은

막 맺혀드는 탱자 알이었을까

막 부풀어오는 젖가슴이었을까

겨울은 차박차박 물 붓는 소리도 없이

탱자울 가지에 분분한 새소리뿐

나이만 먹고 밤은 길었다

 

 

기다림이 찌그러든 탱자 알 같은 봄날

접어 날린 쪽지편지가

탱자 가시 사이에 찢어져서

낱낱이 찢어져서 하얗게 탱자꽃이 피고

나만 보면 앵돌아진 탱자꽃 아프게 피고

탱자나무 생울타리,

그것은 아주 안 보여주지도 않고

다 보여주지도 않아서

아직도 뉘 집 생울타리가를 지나면

그 뒤에 숨어 뒷물하는 그 가시나가

하냥 그립다 


 

♧ 탱자 - 나희덕

 

한아름 따온 탱자는 가을과 함께 썩어간다

과즙이 향유가 된는 건

놀라움이 식지 않았을 때의 일

물에서 건져온 조약돌의 빛이 식어가듯

탱자는 시들기 시작하고

탱자를 담고 있던, 아니 숨기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는 하루하루 부풀어 오르고 있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오면서 나는

썩어갈 슬픔 하나를 데리고 왔는지 모른다

며칠 전부터 비닐봉지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 속에 누가 갇혀 있는가

검은 살을 찢고 나오려는 푸른 가시들

제 가시에 찔려 눈이 먼 탱자꽃

탱자꽃 핀다 탱자꽃 핀다 썩어 문드러진 탱자 속에서



 

♧ 탱자나무 - 김영준


가을 하늘 멍멍히 쳐다보며 어느

낯익은 얼굴 생각하다

탱자나무 흰 꽃잎 뚜욱 뚝 떨어진 줄 몰랐다

탱자나무 엄청난 가시 속에

어느 새

푸른 열매 들앉아 상처로 익어가는 줄

상처 새새마다

그리운 물길 배어드는 줄 몰랐다


오늘, 저 하늘

푸른 독으로 가득하다



 

♧ 탱자나무 울타리 - 이향아

    

찾아오지 말 것을

오더라도 이 골목은 지나갈 것을

탱자나무 울타리도 몰라보게 늙었다

그날, 탱자 몇 섬 이삿짐에 싣고서

표표한 바람에 감겨 떠나온 후로

닻을 내린 모래밭 포구마다

추억의 향내

덜어주며 살았다


새댁시절 어리던 내가 툇마루에 서면

낮게 깔린 하늘 숨죽인 바다

출렁이는 날 태워 청산에도 가고

휘파람 가슴 찡한 눈물도 흔했었다

고추잠자리 휘어드는 늦여름 저녁이면

이 골목은 취기로 터질 것만 같았다



 

♧ 탱자나무 울타리에 찾아온 그리움 - 산월 최길준


가시나무 울타리에

노란 탱자가 달려있다

미 새만 들락거리는 자유

아픈 사랑이 상처에 줄로 꿰매져

고통 속에 신열을 앓는다 


달아나던 바람이

유년의 옷을 벗고 벌거숭이 되어

과수원 탱자나무에 걸렸다

부끄럽지 않게

가을은 저만치서 예쁜 옷을 갈아입는다


 

하얗게만 피던 탱자꽃

가시 속에 감춰진 사랑

저리도 곱게 열매로 맺었다

산등성 노을이 저 색이었을까

한가위 보름달보다 더 아름다워라


탱자나무 숲에

찾아온 그리움

아픔 속에 잉태하는 사랑

살점이 가시에 찔려 선홍빛으로 물들어가도

그 사랑 속에 영원히 잠들고 싶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루는 알알이 빛나는데  (0) 2009.10.21
가파도 갯쑥부쟁이  (0) 2009.10.19
꽃향유 피어나는 길섶  (0) 2009.10.16
섬잔대 초롱초롱 빛나  (0) 2009.10.15
여뀌, 낯을 붉히다  (0) 200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