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바다엔 봄의 여신이

김창집 2012. 2. 22. 09:42

 

 

지난 토요일(18일).

승용차는 체인을 안치면 번영로로 못 간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가 부대악과 부소악에서 휘날리는 눈밭을 걸었고,

일요일에는 답사 가느라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넘어가서

효돈 쇠소깍이랑 남원 예촌망 바닷가로 가보았더니,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오는 곳답게

그런 와중에도 봄의 여신이 은물결을 타고 노닐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는(20일) 낮에 한림공원으로 가다가

협재 바다가 너무 환한 것을 보고

얼른 차를 세워

봄이 완연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비양도를 향해 두어 컷 날려보았다.

 

 

♧ 봄바다 파도처럼 흐느낄 수 있음 - 이향아

 

아침 찻잔에는

사슴의 눈빛 같은 고요가 뜨고

보도에 지는 잎은 느린 박자의 음악

한 생애의 아름다운 축제로 내린다

잡화점 넓은 창유리에 거울 앞인 듯 다가서면

낯선 내 모습이 수면처럼 흔들리는구나

 

다 흔들린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옛날 배운 노래를 조그맣게 흥얼거리면서

여름내 길어진 머리칼 쓸어넘기면

나는 이제야 돌아오는 사람인가

가슴 밑엔 지워지지 않는 후회도 있다

나의 피는 여전히 선홍의 꽃빛깔

산천을 유람하듯 순행하고 있는지

나의 별은 저 하늘에 호젓하게 떠 있는지

나는 지금 옥돌처럼 그윽하여서

천년도 하루같이 바라볼 수 있는지

내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해지는 생각

그러나 나는 아직 꿈을 꿀 수 있음

벼랑에서 부를 이름도 있고

봄바다 파도처럼 흐느낄 수 있음

그리워라 오래된 깃발 하나 들고

오늘 부는 바람 속을 나부끼면서 간다

 

 

♧ 봄맞이 - 오보영

 

한 움큼만

 

털어버리자

 

한 꺼풀만

 

벗어버리자

 

한 발짝만

 

물러나 서자

 

 

♧ 우수(雨水) - 박종영

 

잿빛 구름이 눈물의 배를 띄운다.

 

호젓한 산비탈

아득한 고향 하늘,

그토록 융숭한 말씀 들고

오리나무 숲으로 찾아간 촉촉한 바람이

들썩거리는 새움을 간질인다

 

사랑의 신호인가?

긴 겨울을 이기고 돌아와

빛바랜 풍경을 주어 모으며

눅눅한 마음자리 씻기는 빗소리

 

푸석한 마음에

한줄기 강물로 기지개 켜는

오늘은 맑디맑은 우수(雨水)절기,

그대의 우수(憂愁)가 사라지는 날로 기쁨이네.

 

 

♧ 봄바다에서 - 김설하

 

은빛 햇살 쏟아지는 바닷가

비단 천 펼쳐 놓고 마름질하는 동안

바위섬에 붙들려 발이 묶인 따개비

실오라기 하나라도 건지고 싶어

파도를 잡았다가 놓치고 또 붙잡아 가슴을 깁고요

배회하는 것들 모두 파도 위에 앉아 나비춤을 춥니다

 

사방은 바다

슬며시 몸 틀어 물 비늘 일으키는 봄바람에

코끝 스치는 풋풋한 갯내음

언제까지나 이렇게 붙들려 출렁이고 싶고요

긴 여운을 남기고 떠가는 고깃배에 희망을 싣고

푸른 웃음 쏟아져 넘실대니

어느새 내 속에도 섬 하나 들어앉습니다

 

 

♧ 봄바다 - 나태주

 

모락모락 입덧이 났나베.

별로 이쁘진 않았어도

내게는 참 이쁘기만 했던 그녀가

감쪽같이 딴 사내에게 시집 가

기맥힌 솜씨로 첫애기를 배어,

보름달만해진 배를 쓸어안고

입덧이 났나베.

잡초 같은 식욕에 군침이 돌아

돌아앉아 자꾸만 신 것이 먹고 싶나베.

 

 

깊이 모를 어둠에서 등돌려 돌아오는

빛살을 바라보다가

희디흰 비다의 속살에 눈이 멀어서

그만 눈이 멀어서

자꾸만 헛던지는 헛낚시에

헛걸려 나오는 헛구역질, 헛구역질아.

 

첫애기를 밴 내 그녀가

항缸만해진 아랫배를 쓸어안고

맨살이 드러난 부끄럼도 잊은 채

어지럼병이 났나베.

착하디착한 황소눈에

번지르르 눈물만 갓돌아서

울컥울컥 드디어 신 것이 먹고 싶나베,

후살이 간 내 그녀가.

 

 

♧ 봄바다를 지나다 - 도혜숙

 

바다는 거대한 물고기

은빛비늘을 수없이 번득이며 퍼덕이는

바다의 비늘이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면

영전으로 구부러진 저 바다 길은

수천 살은 먹어보였다

 

절반쯤 머리 깎인 산의 아랫도리를 차지한 채

켠켠히 다른 빛깔로 삶을 내비치는 바다

바지선은 천천히 해저의 모래를 캐내는 것으로

한낮을 소일하고 있었다

 

 

바다가 들어찬 찻집 유리창가

장미 두송이는

투명유리병에 갇힌 바다에 뿌리를 내려

그 수액을 힘껏 빨고 있는데

바람에 흐르듯

바다는 이따금씩 춤을 추며

사월을 풀어헤친 그 눈동자속으로

한낮에도 안개가 머물 수 있다는 걸

단호히 보여주었다

 

낙타등처럼 굽은 산

지도처럼 구부러진 해변을 따라

물새는 끼륵끼륵 바이올린 소리를 흉내내고

흔들릴대로 흔들어진 바람개비는

이미 버려진 풍경인데

 

봄햇살속

끊임없이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차올라오는

바다, 그 눈빛을 싣고

정지된 시간을 빠져나가는 자동차안에서

나는 오.래.전. 허.물.어.진 사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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