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이틀 동안 내려쬐더니
서둘러 목련이 피었습니다.
물론 산남 서귀포 지역은
이미 지고 있겠지만
제주시 해발 100고지 지대에도
하늬바람을 맞고 더욱 희어진
목련이 날아가듯 피었습니다.
이제 겨우내 웅크렸던
우리의 형편도
저 목련처럼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 목련 - 김은숙
하얀 눈물 망울망울
시린 떨림으로 맺혀
건너야 할 이 봄
아련한 슬픔을 보네
빛나는 눈물 송아리 흩뿌리는 순간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곁에 있을까
흔들리는 하늘은 모른 체
저 만큼 더 멀어지고
언젠가 디뎌야할 바닥의 그림자만
망연히 바라보네
♧ 木蓮이 피고 있다 - 강세화
꽃샘바람 설레에 공연히 수선스런 날
울산 남구 신정동 이휴정(二休亭) 가는 길에
한동안 잠자던 소문이 표나게 번지고 있다
수상쩍은 바람이 목련을 피우고
꿈꾸듯이 피는 꽃을 꿈엔 듯이 보고 있다
묵묵한 모양은 여전한 대로
그리움 때문에 몸 달아
눈도 안 뜨고 속살을 보이고 있다
마음에 두고 가끔씩 훔쳐보던
보송한 감촉이 숨을 몰아쉬고 있다
고요하게, 침착하게, 몽혼에서 깨나고 있다
♧ 목련, 그 흔들리는 미학 - 도혜숙
흔들리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아시나요
이른 봄, 정결한 숨결이
무수히 떨어지는 나무밑에
서 있어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 시절 목련은
순결보다 아름다운 테마였습니다.
사월의 빗방울은 꽃보다 향기롭고
몽마르뜨 언덕을 바라보듯 눈망울들은
초록불빛을 가득 머금었습니다.
어디에선가 축제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불꽃속으로 타들어갔어요
초월의 미학을 아시나요
눈은 감아도 눈물은 남아있는 그런 기억속으로
바람을 탄 기차가 지나가고
희디흰 무명핀으로 사월의 머리에 꽂혀
참을수 없는 그리움을 휘날리던 목련이
아무도 모르게 망각의 숲으로 사라져가면
뼈만 남은 나무는 외로워 푸른병정들을 키웠습니다.
용서 같은 건 위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린 순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지켜 주리라던 약속은
사월이 지도록,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흔들리는 슬픔으로 남아있습니다.
♧ 목련 - 고혜경
신(新) 새벽
소리 없는 향기
생명의 빛깔로
마른 목축이시며
의로운 마음 한 필 입으셨네
한 낮의 말아 올린
수고로움
물방울 이슬로
흠이 없게 펴시고
의로운 마음 한 필 입으셨네
세월의 문 열릴 때마다
고독에 여윈 마음
순백(純白)의 문양으로
수놓는 당신
봄빛에 촌촌히 맺힌
순결(純潔)한 사랑
고고함에
한 방울 사랑으로 피더라도
시절에 물들지 않는
의로운 마음 한 필 입으셨네
♧ 하얀 목련 - 목필균
봄바람이 불더니
봄바람이 불더니
가랑가랑 목숨을 잇던 겨울이
연둣빛 들판에 널브러져
마지막 숨을 거둔다.
그 겨울의 넋이 하얀 소복을 입고
눈부시게 피어난 목련은
비상하는 몸짓으로 서있다.
그 환한 눈부심 속에
숨겨진 내 사랑도
조금씩 조금씩 피어나더니
조금씩 조금씩 피어나더니
어느 날
상심의 슬픔을 끌어안고
처연히 지고마는 하얀 목련.
그 잎새 끝으로 봄날은 가고
아!
한바탕 꿈으로 깨어버린 내 사랑도
저 목련과 함께 길을 떠나고
나는 상한 날개를 접어
그늘 속에 숨었다.
♧ 목련나무 - 도종환
그가 나무에 기대앉아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뜰의 목련나무들이
세차게 이파리를 흔들고 있나 보다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
살면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건 사랑이었다
그를 만났을 땐 불꽃 위에서건 얼음 위에서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숯불 같은 살 위에 몸을 던지지도 못했고
시냇물이 강물을 따라가듯
함께 섞여 흘러가지도 못했다
순한 짐승처럼 어울리어 숲이 시키는 대로
벌판이 시키는 대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은 사랑이 가자는 대로 가지 못하였다
늘 고통스러운 마음뿐
어두운 하늘과 새벽 별빛 사이를 헤매는 마음뿐
고개를 들면 다시 문 앞에 와 서 있곤 했다
그가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나 보다 그래서
목련나뭇잎이 내 곁에 와 몸부림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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