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개량 철쭉 고운 자태

김창집 2012. 4. 2. 00:33

 

4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니

앉아 있는 자리가

영 봄 같지가 않다.

 

낮에는 묘제에 참여했는데

햇볕이 내려쬐어

그리 추운 것 같지 않더니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 춥다.

 

묘제에 다녀오는 길에

한라수목원에 들러서

이 꽃과 마주했다.

철쭉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종자를 개량해

만들어낸 꽃이라 개량 철쭉이라 하나보다.

       

 

♧ 4월에 피는 그리움 - (宵火)고은영

 

아무리 사월이 잔인하다 하여도

미친 듯 걸어온 세월에

이 계절의 의미는 사랑이라 칭하리

푸른 물오르는 나무 잎새 사이로 바람은 미소 짓고

아무리 사는 게 고달파도 연녹색의 향연 속에

지금도 나는 당신의 순결한 신부가 되고 싶어라

 

땡볕 같은 인생이 슬픈 염불로 나부끼다가

계절의 노래만큼 꽃등에 타는 그리움

목마른 그대 앞에서 미세한 숨결로

수줍은 나의 영혼을 열고

시든 꽃일 수밖에 없는

첫 것의 아름다운 처녀를 회복하고

자박자벅 싱그러운 이름의 초록으로

떨리는 가슴을 피워

그대의 모든 사랑을 훔치고 싶어라

 

 

♧ 4월의 향기 - 임영준

 

허술한 곳을 콕 짚어

노랑으로 보라로 잘도 찾아들어

 

시샘을 떨치고

꿈꾸듯 뽀얗게 곁을 차고앉아

 

군데군데 멍든 산하와

그 수많은 함성을 감싸고 있는데

 

흐드러진 삶들은 이맘때만 되면

어찌 제 활개만 펼치려 하는가

 

몽롱하게 향기에 취해

옛일 따윈 다 새파랗게 잊어버리고

 

  

 

♧ 4월의 거리에 서면 - 노태웅

 

 

벗이여

체념의 행렬 깨우던 이 거리에

4월이 오거든

 

마음에서 멀어진 그날의 함성

우리 모두의 바램 다시 한번 기억해다오

 

창밖 향나무

당신을 위해

몸을 태워 향기 날릴 때

항거했던 아픈 가슴

영원한 울림 그날을 기억해다오

 

벗이여

웃음으로 가득한 이 거리

다시 4월이 오거든

그때 많은 꿈 묻어둔 거리를 거닐며

어제의 함성에 귀 기울여다오

4월의 거리에 서면.

     

 

♧ 4월에 - 박현자

 

바람이 들었다

움 속에 갇힌 무속처럼 그렇게

숭숭한 심장에 못 박히던 겨울

침잠한 터널을 빠져나와

너의 영토에

뿌리 내리는 회오리더니

황사기둥이 되어

푸른 속내를 들추고 있다

사람의 집 구석구석

시간의 잔재들을 불러

녹쓴 창틀을 닦고 있다

오래도록 침묵하던

또 다른 벽이 되어

찬란한 내일을

기다림으로 풀고 있다

빙벽이 되어 조금씩

햇살을 받고 있다.   

 

♧ 4월의 빈집 - 이향아

내 걸친 옷이 오늘은 더 남루하다

겨울 늪을 행군하던 금욕의 장화를 벗어

진흙을 턴다

곤핍한 등짐을 부리듯

울적한 추억을 물리듯

 

인동의 긴 묵념을 날던 새떼 돌아와

참을 수 없는 내 은둔을

기웃거리는 4월

아리한 해면의 하늘이여,

 

바람은 고기압

시샘도 눕히고

간지럼 타는 살구나무 긴 도랑을 굽이쳐

보랏빛 아편 향기를 피워낸다

 

꽃이 못된 것들은 죄다 눈을 감아라

귓속말로 번져나는 신명,

질탕한 뒷소문,

봄,

4월,

빈집을 지킨다      

 

 

♧ 4월이 오면 - 강영일

4월이 오면

심장(心臟) 멎은 나비 한 마리

고생대의 화석(化石)처럼

표정(表情)없는 얼굴로

세월(歲月)의 계단(階段)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서글픈 옛 추억 몸빛으로 수를 놓고

십자가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당신은

이유 없이 사라져간 한 마리 희생양이었다.

 

서글픈 과거살랑 고드름 여는 처마 끝에

풍경(風磬)으로 달아 놓고.

 

산오리나무 이슬 단장하는 산사(山寺)의 아침

외로운 처마 끝 물고기 밤새 자맥질하면

 

동지 긴 밤 울어 지친 전설(傳說)의 새

밤새 핏빛 울음을 토하네.   

 

 

♧ 4월 - 반기룡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 나와

미각 돋우라 추파 던지고

 

둑방길에는 밥알 같은

조팝나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3 제64주년을 맞아  (0) 2012.04.04
튤립 꽃 만발한 공원  (0) 2012.04.03
완두콩 하얀 꽃잎에  (0) 2012.04.01
명자나무꽃 핀지 오래  (0) 2012.03.31
개나리도 저렇게 웃는데  (0) 201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