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부터 비가 온다고 며칠 전부터
예보하더니, 비는 아니 오고 덥기만 하다.
골목이나 산에 가보면 나무들이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목말라 있다.
어서 빨리 비가 와서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으면 좋겠다.
멀구슬나무는 멀구슬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으로
잎은 깃꼴 겹잎이고 어긋나며, 5월에 자줏빛 꽃이
잎겨드랑이에 원추 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9월에 황색으로 익는다.
정원수로 심으며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우리나라, 일본,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 봄 저녁, 적송밭 언덕에 앉아 - 김경윤
-- 고정희 시인의 묘소에서
늦은 봄 다 저물 무렵
무덤가 적송밭 언덕에 앉아
외로움에 둘러싸인 무덤을 바라보다
내 안의 단단한 빗장을 풀고, 나도
외로움 하나 그 곁에 내려놓네
상처 자국마다 분홍 꽃잎을 달아주는 황혼의 따스한 손길이*
웅크린 내 등을 어루만져주네
늑골(肋骨) 사이로 뜨겁게 흘러가는 도랑물 소리
그 물소릴 다독이며 그리운 이름 하나 말없이 불러보면
어디선가 늙은 저녁바람이 어머니처럼 달려 나와
무덤 위의 푸른 잔디를 쓰다듬어주네
노을에 비낀 소나무 그림자도 느릿느릿 적송밭에서 내려와
고적한 무덤을 껴안아주네
그 풍경에라도 취한 듯
저만치 물가에 눈시울 붉히고 섰던 멀구슬나무가
하르르 보랏빛 꽃잎들을 눈물처럼 떨구네
이윽고 저 아래 둠벙에서 묵상에 잠겨 있던 해오라기 한 마리
서녘 하늘에 황금빛 여백을 걸어두고 가뭇없이 사라진
봄 저녁, 적송밭에 언덕에 앉아, 나도
내 안에 오래 묵은 울음들
초저녁 별빛으로 환하게 걸어두었네
♧ 외도리 고아원에서 - 박목월
아무도 없었다, 예배당에
다 가고
돌담 마당에
따슨 동짓달 햇빛.
오늘은 주일날
기도하며 쉬는 날,
바다 편 채마밭에
먹구슬나무 한 그루.
조용한 나무 한 그루.
여기는 제주읍에서
이십 리, 외도리(外道里)마을
엄마 아바 없는 아기들이
마루방에 오돌돌
떨며 사는 고아원.
주일날을
다소곳이 바람도 자는데
하늘에는 한두 송이
구름도 떴는데
돌자갈 골목길을 열을 지어서
아아, 저기 오는구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슬픈 새떼처럼
돌아온다.
♧ 그 동네 - 임영준
그 동네 언저리만 가면
울긋불긋 도발에 잔뜩 울렁이게 해놓고
날바람이 사정없이 주물러놓고
없는 것들은 멀찌감치 물렀거라 해놓고
선택받은 자들이 밤새 꽃불을 터트린다는데
결핍을 순순히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가련한 인생들은
음지로 불나방으로 먹잇감으로
자진해서 그 거미줄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 쉽게들 깨달아버리고 만다는데
그 동네 언저리만 가면
태어날 때부터 갑이거나 알아서 기는 을이 아니면
대충 한 바퀴 돌다 나오는 것이
신간 편한 반편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언제부턴가 회자되고 있다는데
아주 약간이라도 그 동네가
냄새만 풍기기라도 하면
안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자들이
서로 죽기 살기로 전투를 벌이게 된다는데
♧ 우리 동네 1 - 홍신선
--龍珠寺에서
그렇구나, 近畿근기의 변두리로 숨어 그렇구나, 작달막한 회양목, 300년이나 조막손이 두 손으로 치받든 無聲무성의 희부연한 空間공간, 묵은 父母恩重經부모은중경 몇 줄이 삭아서 날리고 거기 진저리치듯 살 털고 눈 몇 點점이 날아오르는구나(살 털어내는 황홀함이 背景배경으로 둘러처져 있다). 그렇구나, 초겨울 숨긴 王朝왕조의 政爭정쟁들도 비기도참도 나자빠진 담장에 깔려 숨져 있으니 시퍼렇게 얻어터진 토끼풀이 張三장삼과 李四이사로 끼리끼리 옹송그리고 있구나.
입 없는 안면으로 떠 있구나. 그렇구나, 강경과 환상, 급진과 보수, 아무 이름표도 없는 우리를 무엇이라 부를까. 깃들 자리 찾아 논바닥에 길바닥에 등 비비고 헤매가는 자국눈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자전거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찔레 덤불로 끊기고 이어져 나간 土城들이, 우리 미처 이르지 못한 나라쯤에서, 이름들에서 끝나는 것이 보이고 등 비비며 달리며 제 이름 찾는 눈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 사람 사는 동네만이 - 김영호
혼곤한 화양계곡 깊은 골
안개를 퍼 올리는 농부의 가을 얼굴
그 붉은 아침해가 땀을 쏟는다.
밤새 돌을 뒤채선 산물
소쩍새 울음으로 가라 앉고
깊이 패인 바위의 날빛 이끼로 자라나
올갱이의 허리도 자못 굵어졌다.
허기진 구름을 가득 메운 산벚꽃 향기
참나무 새순도 발갛게 물들이고
몸을 꼬는 칡넝쿨 속
꽃뱀들 숨이 가쁘다.
물고기 떼 수심좋은 구름 속 비껴 흐르고
멀리 배밭으로 가라앉은 뻐국새 울음
구름을 열어 제 메아리의 길을 틔우건만,
사람 사는 동네만이
물가에 허우적거리는 녹슨 깡통, 빈 담배갑,
신문지 조각...
그 허우적대며 일어서는 아우성,
그 옆으로 등 낮은 무덤 하나
비가 내릴 것만 걱정하고 있다.
♧ 새 동네로 따라온 달 - 이향아
오늘은
다시 이사를 한다
차일을 걷어 불을 사르고
나팔 불고 떠나가는
나그네 행진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하고
살아도 살아도 낯선 천지
가숙의 솥단지 여기다 걸고
모르던 이들 새로 만나서
약속된 해후런 듯
더운 손을 잡으리
모종해 온 들풀처럼
몸살이 날지라도
손톱 밑에 꾸려둔 눈물을 풀어
발부리 매운 먼지 가라앉히리
진월동 새 동네로
따라온 달은
웃자란 계수나무 보라 그늘을
하늘에서 가까운 뜨락에 얹고
나는 백수정 등피를 닦아
맑은 피 찍어내어 시를 썼으면
이사하는 오늘
표표한 구름 몇 장
아껴 둔 추억처럼 희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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