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범부채는 승리를 싣고

김창집 2012. 8. 5. 07:59

 

사실 스포츠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 해도

정신을 흩뜨리는 더위 때문에

자연히 TV에 눈이 가는 나날이다.

 

그래도 빅게임인 축구를 안 볼 수 없어

3시에 잠이 깨어 중계를 보는데,

우리 선수들이 주눅도 들지 않고 예상외로 잘 뛰어주었고

편파 판정의 느낌이 드는데도 의연히 대처해

결국 승리로 이끈 선수들이 믿음직스럽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감동을 받은 아침이다.

 

범부채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각처의 들과 산에 자생한다.

뿌리줄기가 발달하고, 잎은 어긋나는데

칼 모양의 잎이 두 줄로 늘어서며,

밑동은 줄기를 감싼다.

6~8월에 황적색 바탕에 검은 자주색

반점이 많은 꽃이 피고, 9~10월에 타원형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으면서 껍질이 벗겨지고

검은색의 둥근 씨앗이 밖으로 드러난다.

한방에서 ‘사간(射干)’이라 하여 뿌리줄기를 약재로 쓴다.

 

 

♧ 범부채 - 김승기

 

겨우 이슬로 꽃을 피우는

그 얇고 가는 부챗살로

어찌 시원하게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

 

혼자서만 아프게 아프게 팔 휘저으면

세상이 너무 달아올라

한여름 뙤약볕

뜨거워진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바람 부를 수 있겠느냐

 

개발과 오염으로 파헤쳐지고 죽어가는

모든 곳이 쓰레기장

부패와 비리와 폭력과 무질서

마약과 범죄와 도박과 음란으로 얼룩진

열기 가득한 도가니 속

썩어나는 것뿐인 세상을

한 번에 날릴 수 있는 바람

보고 싶구나

 

더는 앉아서 못 보겠구나

네게로 가서

부채질에 힘을 더하면

선풍기로도 에어컨으로도 안 되는

달구어진 땅 식혀 줄

한 점 자연의 바람 일지 않겠느냐

 

범부채로 일으키는 작은 몸짓이어도

북극의 바람 불러올 수 있지 않겠느냐   

 

 

♧ 너의 자유는 부채처럼 내 옆구리에서 - 허순위

 

그것은 집, 밥, 옷처럼

눈물과 sex처럼

네가 내 가슴에 넣어준 큰

나뭇잎사귀처럼

절대희망처럼

꽃처럼

한숨처럼

불타는 나의 옆구리에서

활짝 펼쳐진

성 금요일 저녁으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나는 망명길처럼   

 

 

♧ 마음속의 부채 하나 - 권태원

 

 

차디찬 샘물을 길어 오고

청솔 솔가지들을 주워다가

 

아무도 없는 심산유곡의 선방에서

차 한 잔을 달여 마신다

 

솔바람 차 향기

문지방 대발에 잠시 걸어 두고

 

스님들의 휴식처인 지대방에서

금강경 화엄경도 잠시 벗어 던지고

 

파란 하늘 호수 아래에서 낮잠에 빠진다

해는 서산 너머 이미 다 져 버렸는데

 

바람 소리 계곡 물소리만

이따금 소쩍새 울음처럼 들려오네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어 온

마음속의 부채 하나   

 

 

♧ 어머님의 부채바람 - 박태강

 

한여름 무더운 밤

마당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본다

 

수많은 별들이 수놓고 반짝이며

모두 자기를 뽐내며 멋을 부린다

 

별똥별은 밝은 선을 그으며

쉴 새 없이 하늘 끝으로 흘러 가

 

내 별은 어디 있을까

상상하며 생각 많던 시절

 

 

모기불로 연기를 피워도

쉴 새 없이 공격하는 모기 떼

 

어머님은 계속 부채질을 하신다

그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고 좋았는지

 

내가 잠들 때까지

계속 하신다

 

선풍기 바람

에어컨 바람이

어째 그 바람보다 나으리오

 

지금도 부채바람 생각하면

두 눈에 이슬이 맺힌다  

 

 

♧ 남원부채 - 김종천

 

쇠전머리 아래 후미진 곳

날 밝으면 논밭에 매여 살아도

밤마다 겨울마다 모여 모여서

창호지 부채 만드는 조선 사람들.

 

양반님들 점잔빼며 흔들어 대고

한량님들 나들잇길 함께 하는 건

아예

원한 적이 없었네

논배미 밭둔덕에서

잠시잠깐 땀방울이나 털어내고

모깃불에 끄떡 않는 극성스런 모기나

힘차게 쫓아내는

우리네 서민들 바람 만들기

묵묵히 대대로 이어왔네

 

 

에어컨 선풍기 신명난 세상

참 할 일 없어도

시대의 뒷전 쫓는 걸음걸이로

심심찮게 바빠 보는 부챗일이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련만

이제는 하얀 마음 많이 바랬네

 

부채야 부채야 조선부채야

값싸고 못 생긴 조선부채야

조선팔도 활개 치며 바람 날렸지

볼품없어 힘차게 쏟아지던 조선바람

옛 시절 시원함을 맛볼 길 없구나.   

 

 

♧ 부채 - 공석진

 

눈이 부셔

숨 막히게 그리운 날

내게 바람을 피워다오

 

앞가슴 발그레 열어헤쳐

엉덩춤 살랑살랑 흔들어

남정네를 유혹해 보렴

몸 뜨거운 열정은

네게 주는 무한애정이다

 

흐린 날

가을바람 불어오는 길목에

냉정한 비가 쏟아져

아쉬움이 사라진대도

변함없이 사랑하리니

 

여인이여

내게 애향 간절한

정욕 바람을 피워다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추에 보내는 푸른 단풍  (0) 2012.08.07
하늘을 수놓은 구름  (0) 2012.08.06
산비장이와 호랑나비  (0) 2012.08.04
고은영의 8월 시편과 두루미천남성  (0) 2012.08.02
참깨꽃으로 맞는 8월  (0) 201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