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소한에 열린 시산제

김창집 2013. 1. 6. 00:06

 

2013년 계사년에 맞는 첫 토요일

오름해설사 강좌를 받은 여섯 기의 수료생들이

연합 시산제를 가졌다.

소한이어서 쌀쌀한 날씨였지만

비가 오지 않고 겨울 날씨로는 좋아서

모두들 싱글벙글이다.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탈 만큼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처음으로 올랐던 높은오름에서

4기 주관으로 시산제를 가졌다.

 

생각해보면 어느덧 6년이 지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고 길동무가 되어

인연을 맺는데 기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너무 흐뭇하고 보람이 있다.

 

오름을 해설한다기보다

오름을 알고, 아끼고, 가꾸는 사람이 되어

제주의 보물인 오름을 지켜나가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길 기대해본다.  

 

 

♧ 소한에게 - 권오범

 

생일 하루만으로는 체면 안 서는 듯

안날 뒷날

한 사날 씩 싸잡아

여봐란듯이 오들거리도록 치루는 허례허식

 

까닭 없거들랑 봄 처녀 징검돌 건너듯

사부랑삽작 건너뛰지

핑계마저 꾸어왔는지

기어이 힘 빼 문 소갈머리   

 

 

이름값 하려니

어쩔 수 없다 치자

허나 서슬 퍼런 그대 입김으로 인해

주눅 들어버린 세상은 어쩌란 말이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그대 고집 영 못마땅하니

어지간하면 하루빨리 성깔 접을 수는 없겠는가

스트레스 참다 참다

혈전증 도져 실신해버린 수도라도 살리게   

 

 

♧ 소한 - 김경윤

 

들기러기 찬 하늘로 날아오른다

청보리 밭에선 아이들이 가오리연을 날리고 있다

저 건너 들녘에는 쥐불을 놓았는지

불꽃이 구렁이 혀처럼 논둑길 휘잡아 간다

 

꿩덫을 놓고 온다는 친구를 만나

안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당숙모의 부고가 왔다

 

먼 산봉우리에 어제 내린 눈빛이 희고

발길은 마을 쪽을 향해 바쁘다   

 

 

♧ 소한(小寒) 아침 - 권경업

   --치밭목에서

어이 추워 어이 추워

등 시려 잠이 깬다

 

마당귀 길을 튼 민씨

버너 위 설설 끓는 찻물 누굴 기다리나

 

할머니 옛 이야기 같은 함박눈

밤새 한 뼘이나 소록대어

중봉비알 어디 쯤

우지끈 설해목(雪害木) 넘어지는 소리

 

이태 지나 소식 없는 얼굴, 못다한 사랑 이별들

동살 잡히는 창에 허연 성에꽃으로 피고

      

 

♧ 소한(小寒)일기 - 김지헌

어느 집 문간에 걸려 있는

복조리가 정답다.

 

불현 듯 찾아든 골목

보일 듯 말듯 따라오는 따스한 눈빛들

빛바랜 고향의 모습은 다정하고 서글프다.

쇠락하는 종가집 이끼 낀 기왓장처럼

 

발길 닿는 골목길마다

호롱불 앞 세우고 길을 밝혀 주고 있다.

 

낮은 처마 끝에 매달려

제 몸을 사르는 고드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내 생명의

고동소리로 흐른다.

 

 

♧ 소한(小寒)을 생각한다 - 이수영

 

작은 고추가 맵다는…

생각나니?

살얼음의 무늬가 잘 잡혀야

얼어붙는 강

가장자리로부터 서서히 피돌기를 끊고

중심은 맨 나중에 꽁꽁 마무리한다

 

열은 열끼리 뭉치는 법… 너 아니?

극한이어도 어느 틈바귀에선

슬며시 얼음땅 들추고 일어서는

생명의 부드러움

기실 얼음장도 뜯어보면

열의 집합체인 것을

 

바람의 그 잔혹한

입소문에

훌훌 물의 옷을 벗어던지는

이 겨울

이 대책 없는 여자를…

알기나 해?

    

 

♧ 소한 - 허형만

    ―아버님 가시는 날

 

무슨 놈의

눈도 눈도 미쳤는갑다

 

무슨 놈의

바람도 바람도 환장했는갑다

 

차도 멕히고

사람도 멕히고

 

그래도 저승길이사

눈도 바람도 없는갑다.

 

문 열어라

 

산 설고 물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님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끼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꼬박 뜬 눈으로 날을 샌 후

 

문 열어라

 

아버님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 문 다시 닫혀졌는지

어젯밤에도

 

문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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