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계사년에 맞는 첫 토요일
오름해설사 강좌를 받은 여섯 기의 수료생들이
연합 시산제를 가졌다.
소한이어서 쌀쌀한 날씨였지만
비가 오지 않고 겨울 날씨로는 좋아서
모두들 싱글벙글이다.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탈 만큼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처음으로 올랐던 높은오름에서
4기 주관으로 시산제를 가졌다.
생각해보면 어느덧 6년이 지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고 길동무가 되어
인연을 맺는데 기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너무 흐뭇하고 보람이 있다.
오름을 해설한다기보다
오름을 알고, 아끼고, 가꾸는 사람이 되어
제주의 보물인 오름을 지켜나가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길 기대해본다.
♧ 소한에게 - 권오범
생일 하루만으로는 체면 안 서는 듯
안날 뒷날
한 사날 씩 싸잡아
여봐란듯이 오들거리도록 치루는 허례허식
까닭 없거들랑 봄 처녀 징검돌 건너듯
사부랑삽작 건너뛰지
핑계마저 꾸어왔는지
기어이 힘 빼 문 소갈머리
이름값 하려니
어쩔 수 없다 치자
허나 서슬 퍼런 그대 입김으로 인해
주눅 들어버린 세상은 어쩌란 말이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그대 고집 영 못마땅하니
어지간하면 하루빨리 성깔 접을 수는 없겠는가
스트레스 참다 참다
혈전증 도져 실신해버린 수도라도 살리게
♧ 소한 - 김경윤
들기러기 찬 하늘로 날아오른다
청보리 밭에선 아이들이 가오리연을 날리고 있다
저 건너 들녘에는 쥐불을 놓았는지
불꽃이 구렁이 혀처럼 논둑길 휘잡아 간다
꿩덫을 놓고 온다는 친구를 만나
안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당숙모의 부고가 왔다
먼 산봉우리에 어제 내린 눈빛이 희고
발길은 마을 쪽을 향해 바쁘다
♧ 소한(小寒) 아침 - 권경업
--치밭목에서
어이 추워 어이 추워
등 시려 잠이 깬다
마당귀 길을 튼 민씨
버너 위 설설 끓는 찻물 누굴 기다리나
할머니 옛 이야기 같은 함박눈
밤새 한 뼘이나 소록대어
중봉비알 어디 쯤
우지끈 설해목(雪害木) 넘어지는 소리
이태 지나 소식 없는 얼굴, 못다한 사랑 이별들
동살 잡히는 창에 허연 성에꽃으로 피고
♧ 소한(小寒)일기 - 김지헌
어느 집 문간에 걸려 있는
복조리가 정답다.
불현 듯 찾아든 골목
보일 듯 말듯 따라오는 따스한 눈빛들
빛바랜 고향의 모습은 다정하고 서글프다.
쇠락하는 종가집 이끼 낀 기왓장처럼
발길 닿는 골목길마다
호롱불 앞 세우고 길을 밝혀 주고 있다.
낮은 처마 끝에 매달려
제 몸을 사르는 고드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내 생명의
고동소리로 흐른다.
♧ 소한(小寒)을 생각한다 - 이수영
작은 고추가 맵다는…
생각나니?
살얼음의 무늬가 잘 잡혀야
얼어붙는 강
가장자리로부터 서서히 피돌기를 끊고
중심은 맨 나중에 꽁꽁 마무리한다
열은 열끼리 뭉치는 법… 너 아니?
극한이어도 어느 틈바귀에선
슬며시 얼음땅 들추고 일어서는
생명의 부드러움
기실 얼음장도 뜯어보면
열의 집합체인 것을
바람의 그 잔혹한
입소문에
훌훌 물의 옷을 벗어던지는
이 겨울
이 대책 없는 여자를…
알기나 해?
♧ 소한 - 허형만
―아버님 가시는 날
무슨 놈의
눈도 눈도 미쳤는갑다
무슨 놈의
바람도 바람도 환장했는갑다
차도 멕히고
사람도 멕히고
그래도 저승길이사
눈도 바람도 없는갑다.
문 열어라
산 설고 물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님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끼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꼬박 뜬 눈으로 날을 샌 후
문 열어라
아버님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 문 다시 닫혀졌는지
어젯밤에도
문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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