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광대나물의 봄맞이

김창집 2013. 2. 22. 10:52

 

 

세상살이가 쭉 고른 것이 아니듯이

봄이 오는 것도 장소마다 다르다.

하늬바람이 씽씽 부는

넓은 밭 고량에는

이제야 조금씩 눈을 틔웠지만

담벼락 남쪽 고운 햇살이 내리는 곳엔

이처럼 광대나물이 고깔을 뽑아 올렸다.

아하 고것 참.  

 

 

♧ 광대나물 - 김승기

 

오늘 이 꽃이 피면

내일은 저 꽃 지겠지

 

외줄 타는 일생

언제 떨어질까

조마조마 조바심 일다가도

 

구경꾼 모여들면

하늘로 치솟을 때마다 피어나는 신바람

붉디붉게 맺히는 꽃송이

걸팡진 놀음판이었지

 

꿈으로 남은 건가

멀어진 아득한 세월

이젠 누가 나물이라고 먹어주겠는가

 

한바탕 신명나게 놀았으면

새로 피는 꽃을 위해

서 있던 자리 물려주어야겠지

 

명예로울 것도 없지만

서러울 것도 없지

 

목숨으로 사는 생명이여

어느 것 하나 모두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지휘하는 그분의

각본에 따라 울고 웃는

광대놀음판의 연극배우인 것을

  

 

♧ 길 - 허형만

 

참으로 오랜만에

꽃상여 따라가는 길

울어울어 눈알이 벌건

광대나물도 뒤따르는 길

상두꾼보다 먼저

뽀르르 내달리던 바람

무릎이 시린지

꽃상여에 얹혀가는 길

참으로 오랫만에

내 집터도 둘러보러가는 길   

 

 

♧ 첫 봄나물 - 고재종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피운 냉이와

다닥다닥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기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볕을 끌어모은다

저렇듯 제일 먼저 봄처녀 설레게 한다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 크기 워낙 작지만

세상의 하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

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

이 땅의 첫봄을 가져오는 위대함의 뿌리들.

    

 

♧ 춤추는 광대 - 공석진

 

광대야

얼광대야

춤 한번 추어보자

 

주어진대로

시키는대로

휘청휘청 등신 몸짓

 

탈에 끈매인

네 운명이

갸륵하다

 

징 울려

사랑 애씌우면

춤사위가 어여쁠까

 

심장깊은 진자리

상흔 흐드러진

어름새를 얼러주면

 

얼씨구 얼쑤

걸판지게

추임새를 넣어주마   

 

 

♧ 말하는 광대(廣大) - 황동규

 

말하는 광대가 밤새 말을 씹었다

말들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눈 몇 송이

바람에 뜨고

 

수레가 지날 때마다

길들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밤새 수레가 지나가고

수레가 갈 때마다

가슴이 패었다

가슴과 가슴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가슴의 흙이 짓이겨졌다

 

눈 몇 송이

바람에 뜨고.   

 

 

♧ 광대 이야기 - 김순진

 

전깃줄 위 구르는 달을 꾸지람하며

정작 저는 고무줄놀이를 한다.

그렇게도 어긋장 난 삶을

꿰어 맞추는 퍼즐게임

그리도 까불대던

어느 광대의 겨울 문틈엔

별 하나 둘 뜨고

구경꾼 모두 집으로 간다.

세월이란 비수를 들이대며

세월의 강도가 자백한다.

“난 그저 웃기려 했다.”

아무런 저항없이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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