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조시] 공철아 잘 가라 - 문무병

김창집 2013. 11. 17. 00:14

* 제주작가 2013년 가을호(제42호)에서

 

♧ 제주 심방 정공철, 민족 광대 정공철은

제 태어난 단옷날 죽어 ‘미여지벵뒤’로 갔네 - 문무병

 

사랑하는 아우 공철아. 이 지지리도 복 없는 놈아.

왜 살만해 지난 떠나는 거냐? 정말 너 술빚 안 물고 갈래?

오늘도 아침부터 비새[悲鳥]가 낭가지에서 칭원하게 우는구나.

우는 거 죄 될 일 아니니 막 실컷 울엉 가라.

같이 힘 겨루며 울어나보게. 내 팔자도 너처럼 기구하여,

네 술만 먹으면, 괜히 신경질 부리며,

“제주대학 국어교육과 졸업만 하면 제대로 국어선생 할 아이 막걸리로 꼬드겨 심방을 만들어버렸으니, 내 인생 책임져. ‘마벵이’(무병이) 씨-팔 형님아.”

술 마시면, 악 쓰며 반항하고 원망만하는 ‘정광질’(정공철)이를 위해,

그대 보내는 조시 한 편 쓰는 것 또한 기막힌 인연이 아니겠냐?

아, 칭원하고 답답한 놈아.

광대로 사는 게, 심방의 길을 가는 게 그렇게도 고달프더냐.

 

 

이 무정한 ‘정광질’이야. 공철아.

진짜 원망하는 게 아니란 걸 난 안다만.

너무 아프고 서러워도 마른 목은 냉 막걸리 한 사발로 헹구고,

타는 목 잔질루멍(축이며) 가라. 공철아.

너 술만 마시면 퍼붓던 원망이든 애증이든,

그게 측은한 사랑임을 알기에 더욱 아프다.

 

 

1980년, 대학 3학년이던 김수열과 함께 너를 꼬드겨

마당극을 하자고 탑동으로 제주중학교 근처 복집식당으로 다니며

제주대학 다니는 동료들을 10여 명 모아오라 해

문화운동 한다며 딴따라의 술판을 만들던

그때의 ‘마당굿쟁이 광대질’이 왜 우린 그리워질까.

애증이든 원망이든 그건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사랑이었고,

연기라면, 네 총기 넘치는 눈동자에 맺히는

눈물 한 방울의 연기 또한 명품이었으니,

오늘 내가 너 때문에 행복했던 그때를 못 잊는 걸까.

이놈아. 속을 너무 드러내지 말게.

너는 심방이니까 잘 알겠지.

넌 이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쯤에 있다는 황량한 벌판,

고사목들 중간 중간에 가시나무 있어 죽은 몸에 걸치고 있는 옷가지,

그게 뭣인가 이승에서 지고 온 슬픔이거나,

욕망의 덩어리가 아닌가. 그 모든 것, 훌훌 털고

이승의 우리들과 이별하고, 저승으로 떠나야 하겠지.

그런 이별이 운명이긴 하지만, 다시 만날 길임을 난 아네.

‘미여지벵뒤’로 가는 길이 얼마만큼 먼 길인가를.

 

 

 

내 이야기해 줄까? 나 ‘미여지벵뒤’에 갔다 왔으니.

아마 거리로 따지면 남아프리카쯤 될 거야.

내가 며칠 전에 남아프리카 남단 인도양에 있는 제주도만 한 섬,

모리셔스에 갔다 왔지.

내 생전에 그렇게 멀리 여행할 줄은 몰랐어.

그곳은 내가 경험한 현실세계의 끝이었어.

바로 현실세계가 끝나는 지점이었으니,

저승의 피안으로 가는 저승올레였을까?

그곳을 그들의 이여도, 모리셔스라 하데.

바로 이곳이 내가 꿈에 그리던 이여도로 가는 올레,

이곳이 어쩜 ‘미여지벵뒤’라 생각하게 되었어.

그곳이 나의 현실세계 여행의 끝에서 만난 이승의 끝에 있는

제주도 같지만 모든 슬픔이 다 녹아 없어져 버리고

평화로만 남은 이여도 올레, 바다 끝의 ‘미여지벵뒤’였다는 거지.

 

 

 

공철아.

네가 먼저 가서 내가 오길 기다리는 저승은 지옥이 아닐 거야.

이 세상에도 광대들이 꿈꾸는 새 세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가 잘 아는 서천꽃밭.

먼저 떠난 착한 누이들이 물을 주어 키우는

생명꽃, 번성꽃, 환생꽃 들이 만발한 서천꽃밭이 있지 않은가.

내가 이여도에 갔다 왔다면, 넌 나를 믿을까?

내가 이승의 끝 남아프리카 모리셔스에 갔던건 알지.

그런데 내가 천국 이여도에 갔다 왔다 믿는 사람은 없지.

그건 나의 꿈이었지. 꿈속에서 보았던 이승의 피안,

광대들이 꿈꾸는 좋은 세상 말일세.

 

 

천하의 광대 정공철아.

결이 고운 친구, 아름다운 우리들의 벗 공철아.

우린 갈 길이 멀다. 그러니 그 먼 길,

아름다운 광대의 길을 가기 위해 잠시 이별하는 거지.

오, 지긋지긋하게 착한 아이, 말썽꾸러기 삐돌이 정공철아.

늘 정신으로 살아 있으라. 쓸데없이 문무병을 원망 말고.

저승과 이승 길을 틀 순 없지 않은가.

이승 사람 이승의 법도에 맞게, 저승사람 저승 법에 맞춰 살게 하자.

당분간은 너와 내가 중음에서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니,

눈물도 슬픔도 사람으로 살면서 흘려야 하는 거라면,

우리 실컷 울고 가세. 술맛도 즐기며. 쩨쩨하게 놀지 말고,

내가 너를 만날 날은 오늘뿐이라니 나도 할 말이 많았네.

 

 

공철아.

하직굿하여<영게울림(영혼의 울림)>하여 울고 보내기엔

저승과 이승의 역사를 쓰기엔 너무 짧은 순간일세.

본을 풀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니,

먼 훗날 어느 새끼 광대가 나타나, 공철이형.

“어시난 생각남수다(없으니 생각나네요.).” 하면,

“어서진 단오 명절날이면, 날 호꼼은(조금은) 생각해 줘, 이?”하며,

픽 웃고 마는 그런 역사. 광대들의 역사 속에만 남아 있으라.

민족광대 정공철, 제주심방 정공철은 이제

제 태어난 단옷날 죽어 ‘미여지벵뒤’로 가는구나.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