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안덕면 감산리 촬영차 다녀왔다.
안덕계곡도 그대로고 감귤도 잘 익고 있었다.
마침 추석절을 갓 지날 무렵이어서 노인회에서는
해마다 마을 공동묘지에 있는 무연분묘에
벌초를 하고 나서 식사를 한다고 했다.
비록 돼지고기와 잡채, 술 정도 차렸지만
장수마을답게 건강한 노인들이 회관 가득 모여
온종일 노래가 그치질 않았다.
요순시대 함포고복하던 태평성대를
바로 이 마을에서 보았다.
촬영 말미에 대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어
기정 바다에 가서 낚시하는 신이 있었는데,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를 배경으로
바다는 이렇게 가을을 부르고 있었다.
♧ 가을의 바다 - 김용락
중년의 사내가
마음속 깊은 상처하나를 안고서
백사장에 앉아 가을의 바다를 본다
바다는 지난 여름의
격렬한 감정이나
불면과 고통으로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 않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혹은 세월처럼
혁명도 이데올로기도
저만치 멀어져버린 것 같은
오늘의 견딜수 없는 이 쓸쓸함
그러나 그 속에서 패배를 배우고 인생의 겸허를 느
껴보자
나도 이제는
가을의 바다를 깨달을 수 있는 나이
물러날 때의 쓰린 비애를 제대로 배워보자
♧ 가을바다 - 오경옥
멀고 먼
그리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가슴도 하늘 닮은 파란빛이 되는 걸까
불러보고 싶은 것들 오래 되뇌이면
가슴에서도 저토록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을까
가끔은 부표처럼
존재의 의미를 물어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만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나의 기쁨
나의 외로움
나의 슬픔
내 아픔이었던 그 무엇
오래도록 가슴에 고여서
아쉽고 그리운 것들을 노래하게 하는
슬픈 계절의 詩여!
♧ 가을바다와 굴절 - 정윤목
하루마다
어둠이 빛을, 빛이 어둠을 부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빛도 빛을 부르며 어둠도 어둠을 불러
넘실넘실 넘나드는 구름따라 순간마다 엄숙하여라
♧ 가을 바다에서 - 최홍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맞닿는 정동진에
노을이 지면은
기차는 산모퉁이 돌아 나오고
기적은 아득히 머언 기억을 더듬어 간다.
저녁 노을에 타는 가슴
그리운 사람 그리워만 말고
정동진 노을에 퍼지는 들국화 향기처럼
쪽빛에 시린 눈을 꼬옥 감고
너와 나의 입술을 포개 보자.
바닷가 벤치에는
가슴에 사무친 사랑이
갈 바람에 지는 낙엽처럼 뒹굴고
노을진 산그늘에
그립고 아쉬움의 향연이 그윽할 즈음에
기차에서 내린
단풍보다 고운 연인들,
한 패는 바다로 가고, 또 한 패는
가을 산자락에 불꽃처럼 튀는데,
뉘라서 이 가을 바다에 無心하리!
♧ 여름바다에서 가을을 본다 - 김귀녀
피서객들이 술렁이던 여름
먼 바다 수평선에 떠있는 가을을 본다
가을은, 남실남실 물결 따라 온다
검푸른 파도를 타고 하얗게 밀려온다
모래밭에 심겨진 발자국들을 지워내며
지나간 날의 맑은 추억들이 수초를 타고온다
40년 전, 손등을 두들기며 모래성 쌓아올리던 푸른 기억
하얀 파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면
어쩔 줄 몰라 두 손 두 발로
동동거리던 어린 소녀가
지금은 중년이 되어
아침 이슬 그리운
가을로 간다.
♧ 바다도 가을처럼 흔들리는 것이 되어 - 李旻影(이민영)
바닷가에 이르면 포용이 버티고 있다
인자한 어머니를 닮아 가는 너른 품 속, 정情속에서
길고 긴 날 말없는 침묵으로 다가선 그대 울음이
파도소리로 정갈되어 안겨올 때는 내 아버지 같은 어진 성정을,
世上事라 진로塵勞의 티끌이거니 어진 것들을 모아 사랑함으로 바다는
스스로 행복해진다
그러나 바다는 외롭다고 한다, 가을에는
싸아, 처얼썩
결 하나가 부딛치며 멀어져 간다
스스로 자신들을 때리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헤어지는 아픔을 되뇌이자는 것이 아니다
바다가 이른 새벽부터 새벽을 맞이하면서도
다시 밤을 부르고 돌아 올 아침을 부르는 노래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부서짐의 노래가 아니다
쓸슬한 것들은 이미 같이 묻고
안고 갈 수 있는 것들은 안고가는 쉬임없는 자기 고행같은
자신의 울음을 토하는 것이고
자신의 인내를 쓰디 쓴 화음으로 울어내는
악기가 된 그대의 명鳴이며
이미 이치理致를 알고 다가가는 진리
숙명을 순응으로 안아들이는 것이다, 비로소 세월이다 하는 것도 길을 나서서
끝에 이르른 것에도 바다에 이르는 것이니
천성의 성품에서 나오는 生의 외혼畏琿이니
뱃길도 안고
포구앞 횟집에서 들려오는
동란 때 피난 내려온 어머니 구수한 망향가도 묻고
멀어져가는 오징어배 통통소리에 잠긴 아버지 넋도 묻어서 가는 것은
찾아올
세월이라는 덧에 걸린 시간들이라는 것처럼,
나이를 들어 짝짓기라는 것으로 울을 만드는 것처럼
바다는 그렇게 모든 것을 안아가지만
때로는
혼자 허허로울 수밖에 없어서 우는 것이다
서로를 부딛치는 소리로 울고
님들과는 낮게 엷게 추스리는 자세로도 울고
울고 나서는 안겨 잠잘 수 있는 그리움을 그리워하면서
쉬지 아니한 파도음으로,
마치 바다도 가을처럼 흔들리는 것이 되어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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