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소상호 시집 ‘쟈스민과 보름달’

김창집 2014. 11. 22. 22:09

 

후목 소상호 시인의 시집

‘쟈스민과 보름달’이 나왔다.

 

소상호 시인은

월간 ‘문학세계’ 시 부문으로 등단하여

여러 가지 문학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는

‘초록빛 바람꽃’

‘달빛에 오르다’

‘파랑 물고기’

‘꽃들의 기억’을 냈고

수필집으로

‘산에 스치는 바람’을 상재했다.

 

오늘 산행길에서 만난 청미래덩굴 열매와 함께

시를 몇 편 골라 싣는다.

   

 

♧ 부활

 

따뜻하고 두터운 마음

어느 날 손을 잡아준 그 파랑새

손 성깔이 너무나 기특하다

한번은 전철 문까지 마중한 그의 가르침이

이 시대 젊음의 뜻이 아닌 것 같아

두고두고 며칠 동안 뽀오얀 가슴에 얹고 살아야 했다

버버리 향 같은 내음의 순정이 퍼진다

그 향이 오랫동안 삶의 기름이 되어

불꽃의 부활을 일깨워 준다

餘音여음이 너무나 곱다

사무실에서 쓰는 컴퓨터 오디오 냉장고 세탁기 은수저

소리가 더욱 마음을 다듬어 준다

   

 

♧ 청솔모 길

 

군더더기를 버리고

해 맑은 잎처럼 청솔모가 경주를 하는 낙엽 길을 걷는다

청설모는 길 위 누워 있는

나뭇잎의 귀를 노랗게 물들어

가위로 세모를 서툴게 잘라 놓는다

돌도 버리고 시멘트 포대의 미래도

덮어버린 청설모의 작품으로

덮어버릴 수 없어

트림을 하고 쉼을 크게 쉬면

건강을 가져오는 약의 품격이 높아진다

그리고 길은 생기를 준다

그 길은 너도 좋고

다리를 쉬는 길로 도우며 간다.

 

 

♧ 무엇을 할까

 

노오란 풀잎으로 가을 잎을 만든다.

잎사귀 변하는 소리에 잠이 깨고

기차를 타고

여려 날 동안 여행을 하고 싶어진다.

추억을 담아두자

저 아래 드문드문 이웃한 전봇대를 보며

화분 이파리에 먼지를 물수건으로 닦으면서

저녘새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그 새는 그림을 그릴까.

눈물을 닦고 있지는 않을지 염려 아닌 희망을 가지고

큰 길을 걷고 있는 날개를 생각한다.

   

 

♧ 비 바람

 

바람은 비를 기다린다

오직 비만이 자신을 대신하여

달려드는 논쟁의 상대이기에

그러나 너무나 힘든 비는 대화를 포기하고

장마로 홍수로 온 세상을 휘저으며 바람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러다 보면 가을이 오고 수확을 하는 날이 다가온다

바람은 그냥 간다

산도 넘고 강과 바다를 자나 간다

가다가 쉬면 자신이 죽으니

끊임없이 간다

서서히 가다 빨리 가다 눈바람을 이르키다 울면서 간다

그러다 보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지게 하다

잎을 피워 다시 숲과 들에 옷을 입힌다

그 옷으로 뜨거운 날을 보내고

웃음을 준다

   

 

♧ 어느 자화상

 

용의 꼬리처럼 움직이는 지하철

그 안에 마주하여 짧은 여행을 한다

앞에 다소곶이 앉아 머리를 올린 여인

고즈넉한 자태로 책을 읽으며 속눈썹 날을 세우고 있다

슬픈 날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여인

여인의 그 모습이 내 가슴에 닿아

하늘이 보이고 땅을 보고

자신을 읽게 한다.

여인의 가슴은 어데에 걸려있고

생각은 어느 곳에 머무는지 물어보지 못한 채

훨훨 날개를 달아

밖으로 밖으로 날려 보내고 싶은

묻지 못한 말을

유월 하늘에 애원 해본다

   

 

♧ 흔적

 

구름이 머물다 간 곳은 젖어 있다

그러나 새들이 노래하던 곳은 흔적이 없다

어렵고 고달픈 것은 흔적을 남기지만

즐거운 것은 마냥,

그냥 흘러만 가는 것인지

   

 

♧ 서재

 

어느새 살며시 내리는 눈과 함께

눈꼬리 내린 사진들이 아픔을 뒤척이며

오랜 침묵속의 삭여진 언어를 가진 책들

사이에 시간의 거리를 매달아 준다

손끝에 책장이 넘겨지면

그 속의 아픔이 그리움으로 뒤엉켜

계속 내려진 연속된 혼란이 숨 멎을 듯

거침없이 뻗어진 그 자리에 책장들

튀어난 역사의 뒤태 속에

오히려 꾸부러진 삶의 과녁이 눈과 마주칠 때

헌 책 속에 눈 감고 있다가 슬며시 나와

파란 하늘을 날고 싶어 우는

비둘기처럼 날아오르는

허전한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