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제주작가 가을호가 나왔다.
이번호의 특집은 50호 기념으로 ‘제주작가를 말하다’
열한 분 작가의 시와 여덟 분 작가의 시조를 실었다.
‘공감과 연대’는 페루의 세사르 바예호의 시를
그리고 이석범이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그밖에 동화 두 편, 시나리오, 육성기록, 제주어 산문, 평론
그리고 장영주가 평론 연재를 시작했으며
끝에 총목차를 곁들였다.
차례로 시 8편을 뽑아
참회나무 열매 사진과 같이 올린다.
참회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한 낙엽 활엽 관목으로
잎은 달걀꼴로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어긋난다.
5월에 자줏빛 또는 흰색 꽃이 취산 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10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줄기로는 장기짝을 만들고
껍질은 새끼의 대용으로 쓰거나 짚신을 삼는다.
우리나라, 중국 북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동행 - 김수열
-김경훈
한 사람이
온몸으로 강정을 걷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은
울울해서 고요한 사려니숲길을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이
샛별오름에서 도새기수육에 막걸리를 먹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은
심한 배앓이로 미지근한 보리차에 흰죽을 뜨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해군기지결사반대’ 깃발을 든 사진을 보내 왔을 때
또 한 사람은
그 사람과 함께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했다.
♧ 안부 - 김광렬
물상들이 흐릿한 정물로 선 저녁
창문들이 멍한 눈을 뜨고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뭇잎들 흔들고 가는 바람 없다
아무 생각 없는 시선으로
흐릿한 세상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라고
바람은 좀처럼 창문들을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
그 속에 서서
어둠은 고뇌하지 않는 밤을 끌어당기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꿈을 여읜 일상들이
무표정하게 어둠에 잠겨가고 있다
모두들 평안한가?
♧ 강정 모내기 - 김경훈
해군, 너희들은 죽음을 먹고 살지만
그래서 전쟁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우기지만
그러나 웃기지 마라
유사 이래 전쟁이 우리에게
밥을 먹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밥은, 그 생명의 밥은
그 모든 전쟁의 쇳덩이를 갈아엎어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평등의 가지가 자라고
정의의 열매가 맺어
저녁노을 속 밥 짓는 연기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할 때
한 끼 넉넉한 상생의 식사가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여기 생명평화의 강정마을에
평화의 모를 심으며
잠수함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군함을 녹여 탈곡기를 만들어
우리, 그 거대한 공동체의 쌀
밥의 평화를 만들고 있다
생명 나눔의 평화를 만들고 있다.
♧ 문밖을 나서면 여행이 시작된다 - 김석교
문지방 밟지 마라
오던 복 돌아간다
현관턱 밟지 마라
가던 죽음 돌아온다
문지방이 발을 걸고
현관턱이 목을 채는
문 밖을 나서면
여행이 시작된다
♧ 바이칼 1 - 이종형
푸른 호수 위 초승달
몽골리안 무당 등 뒤, 붉은 노을
가만히 눈을 감고
평화니 사랑이니 화해니 이런 거창한 것 말고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아주 개인적인
오랫동안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그런 소원 하나쯤 빌어도 좋을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
나머지는
다 헤아려 알아들을 것 같은
♧ 계절의 기척들 1 - 김상신
입추와 말복 사이
얇은 놋쟁반 위로
청동빛 하늘이 부푼다
벚꽃 같은 별들 다투어 쏟아진다
이른 새벽 쟁반 한 끝이 기어이 기우는가 싶더니
들썩!
견디던 무게를 놓치고
하늘 한 귀퉁이가 튀어올랐다 내려앉는다
서슬에 별똥별 한 바가지
누군가의 꿈밭으로 떨어지고……
♧ 독도 - 김문택
가난했던 어미 탓에
바다 한 가운데 홀로 남겨져
비바람 눈보라와 태산 같은 파도에 시달리며
산전수전 다 겪다가 앙상히 뼈만 남았지만
바다 속 깊은 곳으로 이어진 탯줄로
어미의 빨간 피가 흘러 어미 얼굴 닮은 독도다
고아처럼 살아온 것이
어미는 더 속이 타고 가슴이 메어지는데
뱃놈들은 제자식이라 한다
밤낮없이 틈만 있으면
도둑놈 심보 내 보이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 오늘을 그대라 하겠네 - 김영미
창가를 지나는 모든 것들을
오늘은 다 그대라 부르겠다
시간이 기움에 따라
벽 쪽으로 기대가는 햇살의 그림자를
저녁이 옴에 따라
가슴 가까이로 젖어드는 소쩍새 소리를
어둠이란 이름으로 물들어가는 붉은 하늘을
아무도 몰래 내뱉는 뜨거운 숨처럼
잔잔히 퍼져가는 저녁의 무늬들을
오늘은 다 그대라 하겠다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詩’ 12월호와 백량금 (0) | 2015.12.04 |
---|---|
‘산림문학’의 시와 화살나무 (0) | 2015.11.14 |
‘우리詩’ 11월호의 시와 물매화 (0) | 2015.11.10 |
‘우리詩’11월호의 시 (0) | 2015.11.01 |
소상호 시집‘늦가을의 소묘’ (0) | 201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