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병심 시집 ‘몬스터 싸롱’

김창집 2016. 3. 4. 09:06

 

 

병심이 ‘몬스터 싸롱’을 냈다.

물론 진짜 싸롱이 아니고, 시집 이름이다.

밤일 지극정성인 여자 아이 쑥쑥 빼내듯

잘도 뽑아낸다.

 

작가 이름 밑으로 늘어놓은 시집 이름들.

「더 이상 처녀는 없다」

「울내에게」

「바람곶, 고향」

「신 탐라순력도」

「근친주의, 나비학파」

「울기 좋은 방」

조금 있으면, 시집 이름만으로도 시가 될 듯하다.

 

만나면

‘오름 이야기’에 한 번 안 올렸다고 시위할까봐

얼른 시 몇 편 올려놓아야 하겠다.

 

들꽃 이름 찾으려 했는데

맨 외래어 제목뿐이다.

 

 

♧ 우렁각시

 

  새가 지저귀면 당신이 온 거죠. 쳐진 커튼 밖에서 날아온 당신이 알람처럼 있죠. 당신은 아직 새벽 5시네요. 한 시간을 먼저 날아와 밥을 짓는 손 두드림으로 나를 깨우네요. 나는 기지개를 켜는 귀만으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죠. 잠의 무게를 덜어내는 코 속으로 당신이 번져가요. 쌀알이 뜸 들여지는 동안 탁탁탁 계란 치는 소리가 꿈을 말끔히 털어내죠. 당신은 다시 커튼 밖으로 떠날 테지만 가스에 올려진 냄비에선 보글보글 찌개와 계란찜이 당신인 듯 내게 맑음의 하루를 선물하지요. 당신은 다시 당신 속으로 빠져들고, 당신의 나는 새가 되어 온종일 지저귈 차례에요. 새가 비타민처럼 지저귀는 아침이에요. 당신은 내 감각의 스위치를 상큼으로 맞춰놓죠. 오늘도 밥 먹고 힘 내요.

   

 

♧ 손각시

 

그녀는 낙엽이 구르는 벤치에도 있고

비 오는 날 막걸리 집에도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일까 씁쓸한 생각 속에 나타나

눈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깨가 무거운 중년이 지나가도

왼쪽 가슴의 통증으로 살아나기도 합니다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그녀의 나이쯤에서 웃습니다

스카프와 판탈롱이 다시 유행하고

땡땡이 무늬 블라우스가 살랑거립니다

머리에 새치가 늘어가는데

그녀는 아직 스물 셋,

이별 이후부터 나이를 먹지 않는 당신

가슴우리에 묻혔어도 찬란히 아린 바로, 첫사랑

   

 

♧ 사쿠라 여인숙 - 김병심

 

입안에서 커지고 단단해지는 맛

젤리 같거나 날개를 가지기 전의 흰자 같은 맛

분홍의 감칠맛 쪽으로

혓바늘이 돋는다

 

예민한 입술과 입술의 대화

애무만으로 나누는 솔직한 대담

젖물이 목을 타고 내려오면, 눈물

겨워 독립인간이 될 수 있으니까

 

사막이거나 얼음이었거나 내가 핀다

고목 곁에서도

가로등 그늘에서

차 안에서

화장실에서

겨를 없이 꽃으로 터진다

 

내가 꽃이라서

꽃이 되는 입술로 대화를 하고 있는 순간이란

말랑말랑한 당신이 보채는 밤,

단단해진 밀어로 치고받는 깊은 맛에 닿으면

식물이었던 당신이 비로소 퇴화된 홀씨 하나로 남아

내 자궁 속의 수컷이라는 날개

 

첫사랑인 양 이미 쓰러져버린 칼잡이거나

꽃을 위해 할복을 기다리는 눈먼 사무라이여

 

참지 못한 수컷의 발열이 분홍을 밀어내면

구멍마다 소문이 피어난다

봄날의 입맛이 다시 돌아왔으니 내가 핀다

내 자궁을 엿본 자의 목을 벨 시간이다

 

*꽃이름 : 백작약, 찔레꽃,  백목련, 꽃양귀비,  벚꽃.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해리 시인의 애란시愛蘭詩  (0) 2016.03.07
꽃귀띔의 꽃시편  (0) 2016.03.07
김순선의 봄꽃시편  (0) 2016.03.03
한희정의 봄꽃시편  (0) 2016.03.01
남대희 시인의 봄꽃시  (0) 201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