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렬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모래 마을에서’를 냈다.
작가는 이 시집이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하며
72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싣고
평론가 고명철의 해설을 덧붙였다.
푸른사상 시선집 62
값 8,000원.
♧ 모래 마을에서
바람이 거센 날은 바람이
바닷모래를 마을로 퍼 올린다
모래는 낙엽처럼
이곳저곳을 휩쓸고 다닌다
그래서인가
그 바닷가 마을이 온통
모래에 파묻힌 것 같다
눈 속을 뚫고 걸어갈 때
눈썹에 고드름 맺히듯
집 이마에도 가지런히
모래 고드름 매달린 것 같다
모래는 콧구멍, 입 뚫고
핏줄기를 타고 구석구석
서걱서걱 휘파람 불며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다
도대체 그 모래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모래를 헤집고
모래 속으로 파고들며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
집요하게 뿌리를 내린다
♧ 찰나
나뭇가지에 걸린 보름달이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여
쿵, 땅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이
간신히 엉덩이를 밀어 올려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간담이 서늘했던 순간이여
♧ 씨앗
캄캄한 어둠 속 떨다가
툭, 툭 맨살 터트리며
불거져 나오는 것
손가락 같은 것
처음은 조그맣게
허나 이윽고 쑥쑥 자라나서
떨림이 되고
울림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
우리 집 베란다
화분에도 발돋움하는 것
욕망이 없이는
생명이 될 수 없는 것
♧ 시가 연꽃이다
진흙탕 같은 먹구름 사이로
달이 연꽃을 피워낸다
세상은 까만 수렁이다
시(詩)가 연꽃 한 송이를
쳐들고 있다
참, 곱다
♧ 풀꽃
집안에 칩거하여
며칠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감히,
세상을 수렁에서 건져낼
묘안은 없었다
밖에 나와 서성거릴 때
바위틈에 오종종 핀 풀꽃들이
보였다
그렇다
뜨거운 햇살,
사나운 비바람에 꺾이지 않는
저 풀꽃들이
이 고단한 세상을
이겨내온
검질긴 힘이다
♧ 자리젓
곰삭아 농염한 여인네 같은 자리젓을
따뜻한 한술 밥에 척 얹어 놓고 먹으면
비릿한 바다 냄새가 온종일 입안에서 살았다
어떤 친구는 그 냄새가 역겨워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리지만
일찍이 질박한 맛에 절여진 사람은
애인에게 안부 전화라도 하듯
먼 곳에서 그리운 소식 물어오기도 했다
♧ 연북정(戀北亭)에서
북쪽 언 하늘로
날려 보낸 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허공 그 어디쯤에서
꽁꽁
얼어붙었나 보다
아니면 어디 험한 곳
헛발 디뎠나 보다
달콤한 혀는 늘 가까이 머물고
뼈 있는 말은
멀리 유배지에서 고초를 겪는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
별로 다르지 않다
새를 자꾸 날려 보내는 뜻은
아직도,
심장이 붉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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