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광렬 시집 ‘모래 마을에서’

김창집 2016. 3. 12. 23:29

 

 

김광렬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모래 마을에서’를 냈다.

 

작가는 이 시집이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하며

72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싣고

평론가 고명철의 해설을 덧붙였다.

 

푸른사상 시선집 62

값 8,000원. 

 

 

♧ 모래 마을에서

 

바람이 거센 날은 바람이

바닷모래를 마을로 퍼 올린다

모래는 낙엽처럼

이곳저곳을 휩쓸고 다닌다

그래서인가

그 바닷가 마을이 온통

모래에 파묻힌 것 같다

눈 속을 뚫고 걸어갈 때

눈썹에 고드름 맺히듯

집 이마에도 가지런히

모래 고드름 매달린 것 같다

모래는 콧구멍, 입 뚫고

핏줄기를 타고 구석구석

서걱서걱 휘파람 불며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다

도대체 그 모래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모래를 헤집고

모래 속으로 파고들며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

집요하게 뿌리를 내린다

   

 

♧ 찰나

 

나뭇가지에 걸린 보름달이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여

쿵, 땅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이

간신히 엉덩이를 밀어 올려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간담이 서늘했던 순간이여

 

 

♧ 씨앗

 

캄캄한 어둠 속 떨다가

툭, 툭 맨살 터트리며

불거져 나오는 것

손가락 같은 것

처음은 조그맣게

허나 이윽고 쑥쑥 자라나서

떨림이 되고

울림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

우리 집 베란다

화분에도 발돋움하는 것

욕망이 없이는

생명이 될 수 없는 것

 

 

 

♧ 시가 연꽃이다

 

진흙탕 같은 먹구름 사이로

달이 연꽃을 피워낸다

 

세상은 까만 수렁이다

 

시(詩)가 연꽃 한 송이를

쳐들고 있다

 

참, 곱다

 

 

 

♧ 풀꽃

 

집안에 칩거하여

며칠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감히,

세상을 수렁에서 건져낼

묘안은 없었다

 

밖에 나와 서성거릴 때

바위틈에 오종종 핀 풀꽃들이

보였다

 

그렇다

뜨거운 햇살,

사나운 비바람에 꺾이지 않는

저 풀꽃들이

 

이 고단한 세상을

이겨내온

검질긴 힘이다

   

 

♧ 자리젓

 

곰삭아 농염한 여인네 같은 자리젓을

따뜻한 한술 밥에 척 얹어 놓고 먹으면

비릿한 바다 냄새가 온종일 입안에서 살았다

어떤 친구는 그 냄새가 역겨워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리지만

일찍이 질박한 맛에 절여진 사람은

애인에게 안부 전화라도 하듯

먼 곳에서 그리운 소식 물어오기도 했다

 

 

 

♧ 연북정(戀北亭)에서

 

북쪽 언 하늘로

날려 보낸 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허공 그 어디쯤에서

꽁꽁

얼어붙었나 보다

 

아니면 어디 험한 곳

헛발 디뎠나 보다

 

달콤한 혀는 늘 가까이 머물고

뼈 있는 말은

멀리 유배지에서 고초를 겪는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

별로 다르지 않다

 

새를 자꾸 날려 보내는 뜻은

아직도,

심장이 붉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