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넓어 슬픔 갈 곳이 너무나 많다
호수에 비 내리며 슬픔이 갈앉는다 조용히 슬픔 받는 지구의 마음 같은 세상의 큰 슬픔으로 가는 내 작은 빗방울들
돌에 흙에 나무에 풀에 닿아 구르던 작은 눈물이 큰 눈물로 없어지며 마음의 웅덩이 속에 위안으로 돌아온다
세상 눈물 넉넉하게 한없이 받는 호수, 내 것도 여기에 와서야 끝이 나고, 물면에 파문 넓히며 멀어가는 결을 본다
마음 웅덩이에 슬픔을 두지마라 세상 웅덩이에 마음 비우라 세상은 넓어 슬픔 갈 곳이 너무나 많다
닿으며 만드는 물무늬는 먼 곳의 눈물자국 빗방울 그렇게 호면湖面에 내리고 있다 속상해 하지 말아라 가고 있는 빛이다
♧ 봄 외출
관계 속에 참여하는 봄날 바깥에는
바람이 풀 사이로 관계처럼 다닌다
자기가 자기 밥을 짓느라 봄꽃도 바쁘다
부지런한 놈 지심 메고 게으른 놈 자기 좋고
스스로의 한계를 동업중생 속으로
만나야 주고받는 참아픔이 유지하고 있다
화창해지니 미안한 것은 자식이라
몽당연필 된 줄 모르고 그리워한다
아픔도 떠나 있으니 들오라고 부른다
지치지 않을 때 서겠다며 자갈길 헤쳐 온
인연이 햇빛에 몸 섞으며 흐른다
멸하고 일나는 생각 속으로 단비 내린다
♧ 청석靑石을 캐다
산하에 칼이 깊으면 청석靑石도 문을 연다 잊혀져 돌아오는 켜켜한 청솔바람, 다져진 침묵의 결이 창공 아래 푸르다
육체가 아니고 정신이 아닌 그것이 물, 불, 태양, 흙, 바람, 어둠의 일부로서 신의 숨, 치유의 책을 서랍처럼 가졌다
불타는 푸른 시간, 변하는 문을 열라 멸망의 법을 가는 마음이라는 눈동자를, 돌아갈 길을 잃은 먼 거리 속 파장을,
인간의 기호로는 찾아오던 슬픔일까 별의 언어로는 두고 온 꿈이리라 주파수 아득한 시간을 꽃잎으로 보낸다
순결의 고요한 계절의 무변 속으로 바람이 열고 들어간 층층의 갈피에서 역逆으로 못가는 존재는 깊은 칼을 지닌다
비밀의 문이 꽃으로 피는 지구에서 원적으로 보내는 상처는 사상이 된다 생명의 자유, 사랑, 눈물, 그리움의 곁으로
♧ 꽃나무
나무의 팔이 밖의 어디론가 닿는 몸짓, 그 몸짓 부딪친 속 생겨나는 물가에는
어긋난 비극들끼리 먼 거리로 씻기네
물빛 인연 속살을 창공에 눕혔기에 꽃의 핵에서 부르는 닿으려는 그리움을
나무가 열어 건너는 그 거리는 푸르다
내려앉는 꽃잎보다 지면서 날리는 꽃잎 그렇게 가는 것과 목피 속 남은 것이
마주서 피는 하나로 자유로운 꽃나무
♧ 산벚꽃
벚나무 꺾어 넣은 무쇠솥을 끓인다 검은 색 나무에서 벚꽃색이 우러난다
접어 둔 옷감 같은 것 물들면서 펴진다
목피 속에 있었던 한 채의 집이 피네 피와 살로 돌아 와서 몸살로 풀리면서
한 세상 울음을 벗는 바람인지 길인지
횃불도 없이 가던 지난 밤 성 밖 길에 물이 든 그 자락을 만나는 위안으로
저 혼자 둘레 밝히는 새로 보는 사람아
봄비에 흠뻑 젖은 언약 밖을 피었네 이생에 저 편이 있어 오는 빛이 밝은가
삼일을 꽃비 맞고픈 안쪽 색이 밖에 있네
♧ 다시 목련 지다
그대 생각 푸르른
그 너머 흰 빛이 되는
넓은 수건으로
굵은 망각을 편다
깨끗한 가지에 밤의 등불 본 일 있느냐
소중한 사람
다시 속으로 지다
그대가 했던 용서
이제 그대가 받는 용서
한 곳을 무너지는데 여기 저기 웬 슬픔 깔리냐
침묵으로 치유되었던
하나의 사랑
잠겼던 세월 먼 그대
가지 끝 찔려
옛 울음 위안으로 와 혼자 또 묻고 있느냐
* 권도중『세상은 넓어 슬픔 갈 곳이 너무나 많다』
(현대시조 100인선 51, 고요아침,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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