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복언 시집 '내게 거는 주술'의 시(3)

김창집 2022. 10. 19. 02:00

 

 

돌탑

 

 

서로서로

가슴 기대며

손잡고 일어섰다

 

지나는 길손

소원 하나 올리더니

자라는 상생의 높이

세월을 품었다

 

침묵에 좌정하고

귀 열어 놓아

신음소리 어루만지며

천년을 머금었느니

시원의 숨결

푸르고 푸르다

 

얼룩진 마음 씻어달라고

해묵은 소원 올리려니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

 

난감하다, 어찌 하리까

 

 

 

 

미완의 꿈

 

 

유혹은 달콤하여

미끼와 바꿔버린 물고기의 생이

잠깐, 허공에서 팔딱거렸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 끝

탈주를 포기한 눈망울이

세상을 밀어내지 못했다

 

내가 하늘 천정을 박차고 싶듯

물 밖의 환한 햇살을 동경도 했겠지만

새의 날갯짓처럼 허공을 헤집고도 싶었겠지만

 

꿈은 꿈으로 빛날 때가 빛나는 것이라

제자리에서 흔들리며

독한 발자국들로 빈 잔을 채웠으리

 

간간이 비틀대는 꿈을 수장하며

절규를 불태우는 번개의 막춤을

오직 한 번 보고 싶었지만

파도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이루지 못한 꿈이었지

··

 

 

 

 

또 하루

 

 

굽은 삶 달래려

손발은 마음을 이끌며

삼백육십오일

쉼 없이 드나드네

 

미풍에도 휘둘리던

짜릿한 순간들은

강물처럼 떠나고

 

풍화를 기다리는

생의 옹이를

부둥켜안고

체온으로 덮는다

 

지워질 흔적 건너며

잠자리에 들어

하루살이를 뒤짚노라면

어느새

불면을 파고드는

곤한 잠

 

깨어 보니

새 아침

아름다운 순환이네

 

 

 

 

바람의 훈수

 

 

누가 내 시집을 읽은 후

시가 안 들었다고 평하더라

 

그대는 붕어빵에서

붕어를 본 적 있느냐고

나직이 대꾸 했지만

 

왠지, 맑은 세상에

시 쓰레기 한 움큼

내다 버린 것만 같아

머리가 새하얘졌다

 

숨 놓기 전

시 한 편 건지려

천하를 주유하듯 기웃거릴 때

 

바람이 스치며 한마디 한다

가슴 깊이 들어가

어두운 골목 끝에 매장된 원석

한 짐 짊어지고 와 보았느냐

그걸 걸러내

바람을 만들어 봐라 한다

 

나는 맥없이 주저앉았다가

번쩍 정신 들어 일어섰다

불가능에 도전할 때 뿜어나는

눈부신 광채를

간밤 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웅변

 

 

가을은

단풍잎 하나로

그것 하나로

하고픈 얘길 다하더군

 

그대 가슴도

붉어지던가

활활 타버리던가

 

 

                             * 정복언 시집 내게 거는 주술(정은출판사,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