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탑
서로서로
가슴 기대며
손잡고 일어섰다
지나는 길손
소원 하나 올리더니
자라는 상생의 높이
세월을 품었다
침묵에 좌정하고
귀 열어 놓아
신음소리 어루만지며
천년을 머금었느니
시원의 숨결
푸르고 푸르다
얼룩진 마음 씻어달라고
해묵은 소원 올리려니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
난감하다, 어찌 하리까
♧ 미완의 꿈
유혹은 달콤하여
미끼와 바꿔버린 물고기의 생이
잠깐, 허공에서 팔딱거렸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 끝
탈주를 포기한 눈망울이
세상을 밀어내지 못했다
내가 하늘 천정을 박차고 싶듯
물 밖의 환한 햇살을 동경도 했겠지만
새의 날갯짓처럼 허공을 헤집고도 싶었겠지만
꿈은 꿈으로 빛날 때가 빛나는 것이라
제자리에서 흔들리며
독한 발자국들로 빈 잔을 채웠으리
간간이 비틀대는 꿈을 수장하며
절규를 불태우는 번개의 막춤을
오직 한 번 보고 싶었지만
파도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이루지 못한 꿈이었지
꿈·꿈·꿈
♧ 또 하루
굽은 삶 달래려
손발은 마음을 이끌며
삼백육십오일
쉼 없이 드나드네
미풍에도 휘둘리던
짜릿한 순간들은
강물처럼 떠나고
풍화를 기다리는
생의 옹이를
부둥켜안고
체온으로 덮는다
지워질 흔적 건너며
잠자리에 들어
하루살이를 뒤짚노라면
어느새
불면을 파고드는
곤한 잠
깨어 보니
새 아침
아름다운 순환이네
♧ 바람의 훈수
누가 내 시집을 읽은 후
시가 안 들었다고 평하더라
그대는 붕어빵에서
붕어를 본 적 있느냐고
나직이 대꾸 했지만
왠지, 맑은 세상에
시 쓰레기 한 움큼
내다 버린 것만 같아
머리가 새하얘졌다
숨 놓기 전
시 한 편 건지려
천하를 주유하듯 기웃거릴 때
바람이 스치며 한마디 한다
가슴 깊이 들어가
어두운 골목 끝에 매장된 원석
한 짐 짊어지고 와 보았느냐
그걸 걸러내
바람을 만들어 봐라 한다
나는 맥없이 주저앉았다가
번쩍 정신 들어 일어섰다
불가능에 도전할 때 뿜어나는
눈부신 광채를
간밤 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 웅변
가을은
단풍잎 하나로
그것 하나로
하고픈 얘길 다하더군
그대 가슴도
붉어지던가
활활 타버리던가
* 정복언 시집 『내게 거는 주술』 (정은출판사,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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