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2022년 겨울호의 시(2)

김창집 2023. 1. 9. 00:44

 

꾸지뽕나무 김순남

 

 

여봐란 듯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꿀렁꿀렁 일어나

물기 없는 이파리 푸석거려가며

샛노란 그리움을 뿌리 가득 칠해야 했다

몸에 좋다 약이 된다.

너도나도 덤벼들기만 했다

하다못해 충 먹은 양 우글락 부글락

못 생긴 열매 하나까지도

남아나지를 못 하겠다

 

아서라,

선무당 사람 잡는 풍월에

귀 쫑긋 휘 동그래지는 칭원한 사람들아

내 뭔들 못 주랴

굳이면 어떻고 꾸지면 어떠냐

쿡가시낭 이름도 있으니

이 몸 아껴 무엇에 쓰리

어울렁 더울렁 같이 사는 세상

 

까짓거,

비우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넘치는 법

모진 비바람도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버거운 길 위에서 우리

뜨겁고 서러운 시절들을 위해 기도하자

네 몸의 가시가 슬픔의 강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소나무 김성주

 

 

명치, 그 작은 연못에 내리는 빗소리

꽃뱀*

꿈틀꿈틀

구불구불 연못 위를 휘저어

굵어지는 빗방울

꽃창포 봉오리가 봉인된 기억을 터뜨린다

 

유혈목이 독이 온몸으로 번지는 밤이다

 

꽃상여

눈꽃 흩뿌리는 산길을

삭풍의 울음소리가 끌고 간 벌판

관 위를 나이테 덮어 만든

움막에 들어

시집와 처음 팔다리 쭉 펴시는

할머니

 

바람코지 동산 위 소나무

, 꽃뱀은 솔 씨 하나 물고 이리 왔는지

, 태풍은 이 길로만 지나는지

우지직, 가지 부러지고

또 부러지고

하나 남은 우듬지마저 꺾일세라

쩍쩍 갈라진 손발 버둥거리며

한 송이 붉은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사시사철 부르르 푸르르

 

푸르름 위로 흔들리는 젖은 하늘

꽃뱀에게 물어뜯긴 적도 없는 것이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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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뱀

55을 넣어

버무린 진흙덩이

무엇을 물어뜯지?

밤새 앓는 소리

상사화 핀다

 

 

 

떨어져 있는 것들 김순선

 

 

나무들이 가을볕에 앉아

화장을 한다

화장이 짙어질수록

나무는

소소한 바람에도 자꾸

삐지나

 

햇볕을 가려주던 그 많던

푸른 잎 탈모증으로

하루가 다르게 가지가

휑해지던 날

 

바람 없는 안방에도

자고 나면

여기저기 안경 너머

떨어져 있는 것들

저물어가는 날의 비애 같은

쓸쓸함

돌아서면 나날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것들

 

 

 

나의 시 김원욱

 

 

  집 안에 걸린 오래된 액자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첫눈 내리던 날 가야산 자락 어느 분의 다비장, 화염 속으로 뛰어든 눈발에 갇혔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가정도 바뀌는 동안 눈 내리는 액자 속 작은 암자는 변함없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잠시 머무는 집을 나와 가만히 암자로 들어서니 잘 닦인 사리 구슬이 거친 눈발을 뚫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이때 화염에 든 내 시()가 슬금슬금 먹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시간의 행간에서 깜빡 한눈파는 사이

 

  총부리 매서운 제주 들판, 이 악물고 떠내려 온 몇 송이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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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시 첫눈의 부분.

 

 

 

새 떼 3 - 김신숙

 

 

천변 작은 장터

가시다시귀 들어서며 시작된 그 길에 도착했다

주머니는 새의 배처럼 불룩해 있었다

망월동 지나 광장을 돌아 순례를 하며

피 솟구친 흔적만 훑었다

새 부리가 심장을 콕콕 쪼았다

그래서 새의 부리만 주워 담았다

금방 가득 찼다

황금동 거리에 도착했다

아직도 불이 밝았다

주소지가 분명하지 않은 새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그 길은 붉은 등처럼 웅크린 새들을 걸어 놓았다

오래 떠 있기 위해 새들은 먼저

부리를 뗐다 새 장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새 떼가 되었다

새 떼, 지저귀지 않는 새 떼

발바닥이 없는 새들은 발톱으로 섰다

그래서 굽이 높았다 흩어진 항쟁의 힐들처럼

황금동은 여전히 빛났다

새벽이 찾아오면 깃털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소리가 없는 새들은 이상한 형체로 중얼거리다

가물거리다 일렁이다 조명처럼 툭 꺼졌다

 

갸들* 우리는 갸들의 말을 기록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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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월 당시 평범한 주부로 항쟁 마지막 날 5.18의 실상을 알리다가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당한 이영자 씨의 인터뷰 중 “31사단으로 끌려갔을 때 황금동 유흥가 아가씨들도 한 다섯 명 정도 들어왔었거든. 이름도 못 올린 황금동 갸들도 있잖아.”라고 말했다.

 

 

                    *계간 제주작가2022년 겨울호(통권 7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