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선배 선생님에게서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제주산업정보대학 교수로 계시다 정년퇴임한 구산 신승행 선생님은
시조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다.
시조와 평론 부분에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해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그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아이리스 자포니카 꽃과 같이 내보낸다.
♧ 시인의 말
소리(聲) +혼(魂) + 시적 공간
이렇게 소리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런 대로 십 수 년이 된 세월이라 여겨 보자.
고독과 인고의 세월을 노래한 첫 시집
‘섬바다 숨비소리’가 그것이고,
가난과 가냘픔의 세월을 노래한 두 번째 시집
‘문풍지’가 또한 그러한 것이고,
척박한 이 섬을 누가 노래할 것인가?
‘억새에 이는 바람소리’가 또한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형
의 생명이면서 존재의 미학인 것이다. 아니면 바람의
아픔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이러한 서정은 바로 소리
라는 상징적 공간만을 통해서 그 오묘한 시적 공간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서정시의 속성이다.
이제 노을이 지고 있다.
너무나 짧다.
아름답지만 아쉬움이 너무 큰 것이다.
2008년 무자년 아침에
구산 신승행
♧ 이 봄날에
필시
세월 같다는 것쯤은
몸 가누면 알겠지만
잔설 계곡은
우 우 우 소리치며 나를 부른다
어차피 고개를 넘는다
넘고 있다네. 저 고개를…
♧ 봄비
신비하게도
영영 풀리지 않는 이 오묘한 신비는 오직
신비일 뿐
당신은
이슬로 다가와
숨골을 여는 아침순례자
바늘 촉보다도 가늘고 반짝이는 미소들은
또 하나의 거룩한 체온을 만들면서
하면서
새롭다 하며
천년 꿈을 심는다.
♧ 휘파람새
옷고름을 풀고 앉아
이내 봄을 맞아든다.
산정에는 여지없이 잔설이 남아 있어 계곡을 붙잡는
아픔이 있는데, 그것은 봄의 전사로 햇살을 가르면서
후유증을 달래고 섬 동백으로 피어난 섬 처녀의 싱그
러운 살결을 자극한다. 낮은 음계로 휘파람을 불면서
옛 얘기를 읽어낸다.
소리는
산자락 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캔다.
♧ 허(虛)
흙 반죽
…산다는 것은
토분 하나
…이루는 것은
있다가
변하다가
그래서 간 데 없어 사라져버리는, 또 알 수 없는 그것은
격랑에
걸음 걷다가
그렇게
손을 놓고 마는 것.
♬ 명상음악 - 벗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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