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신승행 시집 ‘억새에 이는 바람 소리’

김창집 2008. 5. 11. 20:39

 

오랜만에 만난 선배 선생님에게서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제주산업정보대학 교수로 계시다 정년퇴임한 구산 신승행 선생님은

시조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다.

시조와 평론 부분에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해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그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아이리스 자포니카 꽃과 같이 내보낸다.


♧ 시인의 말


소리(聲) +혼(魂) + 시적 공간

이렇게 소리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런 대로 십 수 년이 된 세월이라 여겨 보자.

고독과 인고의 세월을 노래한 첫 시집

‘섬바다 숨비소리’가 그것이고,

가난과 가냘픔의 세월을 노래한 두 번째 시집

‘문풍지’가 또한 그러한 것이고,

척박한 이 섬을 누가 노래할 것인가?

‘억새에 이는 바람소리’가 또한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무형

의 생명이면서 존재의 미학인 것이다. 아니면 바람의

아픔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이러한 서정은 바로 소리

라는 상징적 공간만을 통해서 그 오묘한 시적 공간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서정시의 속성이다.

이제 노을이 지고 있다.

너무나 짧다.

아름답지만 아쉬움이 너무 큰 것이다.


2008년 무자년 아침에

구산 신승행

 

 

♧ 이 봄날에


필시

세월 같다는 것쯤은

몸 가누면 알겠지만


잔설 계곡은

우 우 우 소리치며 나를 부른다


어차피 고개를 넘는다

넘고 있다네. 저 고개를…

 

 

♧ 봄비


신비하게도

영영 풀리지 않는 이 오묘한 신비는 오직

신비일 뿐


당신은 

이슬로 다가와

숨골을 여는 아침순례자


바늘 촉보다도 가늘고 반짝이는 미소들은

또 하나의 거룩한 체온을 만들면서


하면서 

새롭다 하며

천년 꿈을 심는다.

 

 

♧ 휘파람새


옷고름을 풀고 앉아

이내 봄을 맞아든다.


산정에는 여지없이 잔설이 남아 있어 계곡을 붙잡는

아픔이 있는데, 그것은 봄의 전사로 햇살을 가르면서

후유증을 달래고 섬 동백으로 피어난 섬 처녀의 싱그

러운 살결을 자극한다. 낮은 음계로 휘파람을 불면서

옛 얘기를 읽어낸다.


소리는 

산자락 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캔다.

 

 

♧ 허(虛)


흙 반죽

    …산다는 것은

토분 하나

    …이루는 것은


있다가 

변하다가

그래서 간 데 없어 사라져버리는, 또 알 수 없는 그것은

격랑에

걸음 걷다가

그렇게

손을 놓고 마는 것.

 

 

♬ 명상음악 - 벗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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