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꿈 하나 띄어놓고 - 양해선 시집

김창집 2008. 6. 1. 00:24

 

♣ 2008년 5월 31일 토요일 맑음


양해선 시인께서 처녀시집 ‘꿈 하나 띄워놓고’를 보내 왔다.

전북 군산 출신의 시인은 ‘시인촌’ 시창작 교실을 수료하고

2003년 ‘동방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제4회 한국농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KT 경기남부NSC OMC팀에 근무 중이다.


유창섭 시인은 해설에서 ‘시인은 자유를 꿈꾼다. 삶이라는 미명하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영혼으로부터의 자유…

그러한 자유에의 갈망이 은밀하게 드러난다. 그리움이 있는가 하면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고, 아무도 알 수 없는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마음을 그는 담담하게 담아낸다. 이것이 그의 시를 아름답게 읽게 하는 힘이 아닐까?

은근하고도 깊으면서, 그 마음 들킬세라. 조용히 덮어두고 현실과의

괴리를 메워나가는 힘, 그의 시엔 그러한 신뢰가 묻어난다.'


같이 싣는 '꽃이 병을 닦는 솔과 같은 모습의 꽃나무'는 그 이름도 병솔나무다.

원래의 이름도 같은 뜻인 Callistemon, bottle brush tree라고 한다. 

꽃이 지고 나서 콩알 크기의 정도의 열매가 달린다.

병솔꽃과 함께 시집에서 4편을 골라 실어놓았다. 건필을 빈다.

 

 

♧ 바닷가에서


세상에서 등 떠밀려 왔는데

하늘은 바다에 잠기고

바다는 하늘에 떠있는 듯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수평선 너머 깊이 잠든 분노

가슴에 품고 몰려와

저 만치서 벌떡 일어서는 바다

일제히 소리 지르며 덤벼들더군


끝없이 밀쳐내며 거부하는

파도들의 거센 항거

모래밭은 발목 붙잡는데

또 어디로 떠나란 말인가


낮에도 끄지 못하는 등댓불 아래

오갈 데 없는 마음 묻어 두고

떠난 갈매기 돌아와

둥지 틀고 깃들 날 꿈꾸는

돌섬이 되고 있었어

 

 

♧ 어머니는 아신다


석 달 만에 외가 식구들을 다시 만났다

다섯 살 때까지 나를 키우다시피 했다는

막내 이모는

얼굴도 훤해지고 몸도 좋아졌단다

한술 더 떠서 외삼촌은

볼 때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단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자꾸만 쓰다듬으며

다 속여도 이 에미는 못 속인다며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며

깊이 젖은 눈으로 묻고 또 물으셨다

이 달 말에는 마라톤까지 참가할 거라며

힘차게 뛰는 흉내를 내보여도

여느 때와는 달리 꼭 쥔 내 손을

좀처럼 놓지 않으셨다


돌아오는 밤길,

차창에 어리는 어머니 얼굴

다 알고 있다며

어서 바른대로 말하라며

끝내는 달리는 차 앞을 막아선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씀 드리고 말았다


어머니,

이번 주 금요일에 수술 받아요


 

♧ 할아버지의 땅


 어릴 적, 내 땅은 그만 두고라도 마음 편히 부쳐 먹을 땅 한 조각 얻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아버지는 농수로 가장자리를 이십 리도 넘게 일구고 남들이 모내기를 끝내고 난 뒤 여기저기에서 남은 모를 주어다가 억척같이 천직을 이어 갔다. 한 해는 단속에 걸려 모조리 뒤엎어지기도 했고, 그 이듬해는 한물져서 휩쓸려 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문 옆에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먹장구름을 흙탕물 위에 온종일 쏟아놓곤 했다.


 요즈음 콩밭 두둑 사이에 이십 년째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콩 대신 잔디를 심어 사방이 훤히 내다보이던 날부터,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새털구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묵히는 논밭이 늘어가고 있는 고래실 쪽만 바라보며 이건 아니라고 연이어 손사래를 치고 있다.


 

♧ 나의 시상(詩想)


번뜩이는 찰나

어둠을 가르고 하늘을 뒤흔드는

천둥번개도 있던데,

먼 바다 깊은 곳

작은 흔들림도 밀려와서

불을 뿜는 산이 되고

땅이 쩍쩍 갈라지던데,

한바탕 퍼붓는 소나기

화사한 무지개로 피어오르고

잔잔한 강물로 흐르다가

굽이쳐 떨어지는 우렁찬 폭포수

바윗돌도 부서지던데,


나에게는,

아무리 쥐어짜도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바짝 마른 걸레

한 조각

 

 

♬ 영원한 내 사랑 - Aaron Nevi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