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나순옥의 시와 콩짜개덩굴

김창집 2011. 9. 11. 01:26

 

콩짜개덩굴은 많은 사람들이 콩짜개난과

구별을 못하여 난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콩짜개난은 노란 꽃을 피우는

난과 식물로 비자림 같은 독특한 환경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이다. 하지만 콩짜개 덩굴은

제주섬 어디서나 나무 그늘의 습한 곳

바위나 나무 등걸을 기며 자라는 이 식물은

흙이 아닌 딱딱한 물체에 발을 붙이고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고결한 선비의 정신을

가졌다고나 할까? 오늘 안개낀 산행에서

만난 이 콩짜개덩굴이 나순옥 시인의 시조와

어울릴 것 같아 같이 배열해 본다.

 

나순옥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

1993년 12월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 장원

1994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5년 새시대 시조 좋은 작품상 수상

2009년 시조시학상 본상 수상

충북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진천지부장

오늘의 시조학회, 역류동인

대한기독문인협회 회원

작품집 ‘바람의 지문’(2001. 시와 비평)

‘석비에도 검버섯이’

3인 연시조집 ‘차마, 그 붉은 입술로도’ 외

 

콩짜개덩굴은 고란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뿌리줄기는 실 모양으로 길게 퍼지며, 잎은 성기게 나고

홀씨주머니무리가 달리는 홀씨잎과 달리지 않는 타원형의

영양엽이 있다. 산지(山地)의 나무줄기나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남부, 일본,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 못 2

--이혼녀

 

혹독하게 내려치는

망치의 그 매질도

탄력 있게 받아내며

당당히 박혔었지

벽면을 쩡쩡 울리며

자리 잡고 으시댔지

 

걸 것

못 걸 것

모두 걸어 힘들었고

게다가 무심한 벽은

더 힘들게 만들었어

나날이 야위어 가며

탈출을 꿈구었지

 

자리 옮김 다지면서

벽에서 뽑혔을 때

반쯤은 휘어지고

벽면도 뚫어졌어

한자리 박힌 그대로

그냥

살걸 그랬어

 

   

 

♧ 石碑(석비)에도 검버섯이

 

윤기 자르르 흐르던 피부

비바람에 거칠거칠

 

또렷했던 글자들도

치매인 듯 흐릿흐릿

 

石碑도

세월이 아파

검버섯이 피었다

 

  

 

♧ 낙엽 한 잎

 

정갈히 마음 비우고

부름을 기다린다

 

미련 담긴 그대 육신

무겁게 벗어나는 날

 

편안히

피안으로 모실

나룻배로 떠있다

 

  

 

♧ 과녁

 

자,

쏠 테면 쏘아 봐라

온 몸을 내어 주마

 

내 심장 깊숙한 곳에

네 원한의 살을 꽂아라

 

안 된다!

빗나가서는

다른 생명 다친다

 

  

 

♧ 소나기

 

위급한 상황이다

파발마가 달려온다

 

말발굽에 땅이 패이고

뿔뿔이 몸을 숨긴다

 

어쩔까

작은 달팽이

더듬이마저 부러졌네

 

  

 

♧ 바다, 해오름

 

그 누구의 손이었을까

수평선 샅 힘껏 벌려

햇덩이 건져 올렸다

숨이, 딱!

멈출 듯한 그때

갈매기

재빠른 가위질

탯줄

댕강

잘랐다

 

온밤 내내 진통으로

벼랑 쥐어뜯던 바다

핏물 흥건히 번진

앞자락 풀어헤쳤고

촛국도

밀쳐버린 채

곤한 잠에 빠졌다

 

  

 

♧ 번개

 

전생에 못 다한 정

찾고 싶은 열망이

 

무의식 속에도 타오르다

서로를 알아본 순간

 

천지를

단칼에 가를 듯

부딪히는 저 눈빛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호의 시와 절굿대  (0) 2011.09.16
박현덕의 시와 무릇 꽃  (0) 2011.09.15
김수엽의 시와 독일잔대  (0) 2011.09.10
김삼환의 시와 누린내풀  (0) 2011.09.09
제주한란과 ‘우리詩’ 9월호  (0) 2011.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