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방림원에서
분명 누린내풀인데 색이 희고 옅은 꽃을 보아
혹 다른 것인 줄 알고 찾아보았으나 아는 분이
없고, 꽃은 너무 고와 묵히기도 그렇고,
‘아무려면 어쩌랴. 이름 없는 들꽃도 있는데.’
하고 올려본다.
김삼환 시인은 1958년 강진에서 출생하여
1992년 ‘한국시조’ 시인상
1994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2005년 ‘한국시조’ 작품상 수상
시집 ‘적막을 줍는 새’(1996, 토방)
‘풍경인의 무늬 여행’(1997, 둥지)
‘비등점’(2004, 고요아침)
‘뿌리는 아직도 흙에 닿지 못하여’(2005, 리토피아)
누린내풀은 마편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m 정도이고
고약한 냄새가 나며 온몸에 짧은 털이 있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달걀 모양이다. 7~8월에 붉고 푸르스름한 꽃이 잎겨
드랑이에서 원추(圓錐) 꽃차례로 피고 전체를 약으로 쓴다.
산이나 들에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또 다른 눈(目)
산정에 오르면서 비로소 열리는 눈
직광으로 세워지는 햇살의 골조를 피해
관목 숲 습기에 젖은 생각 하나 꺼낸다
누가 눈을 감아야 또 다를 눈 뜨인다면
해지는 들녘으로 숨어드는 바람처럼
내 몸을 가볍게 하여 들풀 위에 눕히리라
부지런한 봄 나무에 상처 다시 아물고
눈 감았던 어둔 구석 동면에서 깨어나면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미소 짓는 물무늬
♧ 해서(楷書)
하늘로 올라간 건 모두가 아름답다
지상에는 껍데기만 바람 앞에 몸을 숨긴
절규가 눈뜨고 묻힌 곳
김 오르듯 뜨는 영혼.
비밀이 드러날 때마다 물결은 출렁이고
소용돌이 한 가운데 휘돌다 나와보면
사관(史官)이 해서로 적는
그날 문득 만난다.
♧ 연어
이제 조금 생기 도는 세상의 한 귀퉁이
물살 잔잔 왕피천에 연어 떼는 돌아오고
한 세대 뛰어 넘는 꿈 속에 충혈되는 실핏줄.
입덧처럼 맞이하는 이 족속의 산란기여
때가 되면 찾아오는 누대의 벅찬 반복
드넓은 대양의 삶도 그만 내려 놓는다.
온몸으로 부딪친 길 물비늘을 반짝이며
햇살 풀어 남긴 흔적 다시 찾는 혈육의 끈
섭리의 더듬이 세워 그 아픈 기슭을 오른다.
거칠게 안겨 오는 당신의 삽화 위에
터져 찢긴 가슴으로 먼 미래의 하늘을 보면
이 물길 끝나는 곳쯤에 버려도 좋을 육신.
당신의 生 가고 나면 그 빛 또한 새로 앉혀
비탈길 외진 능선 묻힌 혼도 일으켜서
더불어 넘나들거라 동해 푸른 자유의 길.
♧ 상사화(相思花)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참말로
거짓말처럼
내 마음 가지에 묶어 바람에게 전하려다
참말로 거짓말처럼 꽃이 지고 말았네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참말로
거짓말처럼
내 마음 뗏목에 묶어 그대에게 띄우려다
참말로 거짓말처럼 알몸으로 돌아섰네
참말처럼
참말처럼
거짓말로
참말처럼
내 그림자 그대에게 반쯤만 기울어져
허기진 마음 가리려 등만 보고 돌아서네
♧ 버려진 구두
고개를 넘는 사람의
무거운 등짐 같은,
흐린 날의 그림자를
몸에 안고 홀로 있는,
처연히 버려진 구두에
쌓여가는 흰 먼지는
내 발등의 고해苦海가
욱신욱신 스며들어
표표漂漂히 흘러가는
이 지상의 빈자리를
흐릿한 정물화 한 점
변칙으로 놓여있는
♧ 따라비오름에서 물매화의 신음소리 엿듣다
흉내낼 수 없는 품새
눈이 깊은 여인이여
흔들리는 억새들을 다숩게 끌어안고
첫차로 떠난 사람을
생각느냐 바람이여
하늘로 닿은 고요
가냘픈 선을 흐르는
키 작고 허리 가는 그 여인의 등 뒤에서
한 번쯤 벗어 보리니
내 의식의 가면이여
손 없는 날을 골라
그 여인을 안고 싶다
내 주위를 경계하는 안개 바람 울을 치고
물매화 가는 신음을
엿듣고야 말았느니
♧ 막다른 골목에서
아무래도 어금니를
너무 몰아
세웠다
약해진 뿌리 붙잡고
앙다물며
버티다가
희미한
그대 뒷모습
구름 뒤의 낙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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