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정 유형문화재 27호인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을 기념하기 위한
장한철 표해록 기념비 제막 및 기증식에 다녀왔다. 어제(10.25) 오전 11시
애월읍애월리 한담공원에서 행해진 이 행사는 장한철 후손들이 사업비를 대고,
표해록 상징조형물 건립추진위원회에서 건립하여, 애월읍이 기증받아 관리한다.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은 1770년대 이곳 출신인 필자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뱃길에 올랐다가 풍랑을 만나 류쿠제도(오키나와)에 표착하여 귀향하기
까지의 표류기를 산문체로 저술한 서책이다. 당시의 해류와 계절풍,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 등이 풍부하게 나와 있어, 해양지리와 설화집으로 가치가 높다.
호박은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로 덩굴은 단면이 오각형이며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자란다. 암수한그루로 6월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종 모양의
노란 꽃이 피고 열매는 장과로 크고 둥글며 연한 노란색이다. 잎과 순,
열매는 식용하는데,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로 세계 각지에 분포한다.
♧ 늙은 호박 - 이진규
사람이 떠난
텅 빈집 지붕 위에
달 하나 얹혀 있네
홀 지낸 늙은 할미 떠올리며
일찌감치 낮의 해를 밀어내고
하늘 무게에 푹푹 내려앉는 묵은 지붕 위에서
푸른 달이 차오를수록 부풀어 오르는 호박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며
팽팽히 당겨 채우던 할미 한숨소리가
지 속에서 새까맣게 타드는 줄도 모르고
할미랑 보내던 시간이 그리워
이 밤에도 달빛 아래 앉아
손 끝 마디마디 말아 쥔 할미 애타던 이야기들
지붕 위에 풀어놓으면
아직도 어디선가 톡하고 생생한 새론 기억들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을 이어붙여 굳이 꽃으로 피우기에는
무서리가 내리는 갈 날엔 더더우기 슬픈 기억들만 떠오르더라
돌아서던 할미 등뒤로 희뜩희뜩 걸어서 가던 아들내외
北邙북망에 들菊국 향이 번져들 때까지는 걸음도 하지 안았었지
할미 얼굴에 드리운 슬픔 속에 늘 살던 할배의 근심이
그때부터 검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심히 바람이 잦던 날에는 해소기침 들썩이는 바람에
지붕 위에서 달을 보던 나는 다시는 달을 볼 수 없을 일이 생길 뻔했지
텅 빈집 지붕 위에
남모르게 옛 주인 그리워 부풀어 오른 호박
그리움에 지쳐 늙어 가는 갈 날밤
문딩이 같은 서울 어느 골목을 파고 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아들내외는
전원주택으로 꾸밀 무수히 많은 별 같은 생각의 꼬리만 물고
잠 못 이루고 있는데
늙은 호박은 아직도 달만 바라만 보고
♧ 호박죽 - 반기룡
누이처럼 펑퍼짐한
엉덩이 자랑하며
똬리 틀고 있는 호박 한덩이
진한 여름 초록빛 인연 끊고
시나브로 노란물감으로 단장했네
첫 서리 내리면
속살을 더욱 옹골차게 다지고 다져
겨울밤 사랑방 손님, 따스이 영접하여
호박 범벅 한 그릇 정을 나누는
우리 누이처럼 넉넉한 인심 덩어리
임신중독에도 왔다요,
붓기에도 따봉인 너그러운 그 것
올 겨울에는 호박죽이나 실컷 먹어야겠네
♧ 늙은 호박 - 김지헌
늙은 호박을 보면 그 여자 생각난다
해마다 연년생으로 쑤욱 쑥 뽑아내느라
뱃가죽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여자
햇덩이 같은 아이를, 보름달 뜰 때마다
달덩이 같은 아이를 쑤욱 쑥 잘도 낳던 여자
해산의 붉은 비명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왔다
자식들은 뿔뿔이 집을 떠나가고
평생의 노동 끝에 남은 거라곤 흐물흐물 해진
내장과 거죽만 남은
사내 몸뚱이 하나뿐인데
마지막 생산을 끝내고 누군가 그녀의
달디 단 속을 먹어 치워 줄 때까지
벌렁 누워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다
♧ 호박 - 고혜경
천년 신화의 웅크린 생명은
황금빛 아가로 태어나면서
우주를 품게 되었다.
어머니 자궁(子宮)속에서
빛은 한파 속에 견딜 이상(理想) 이룰
따스함 준비했다.
이상(理想)이 빛을 보던 날
황금밭 세상은 부드러움으로 시작하여 냉혹함으로
순응은 굴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단단해져 가는
육중한 세상 지켜갔다.
세상의 어머니가 되어 둔탁하게 비틀어진 몸
내어주며 살과 피로 돌려주던 날 침묵의 절규
어머니의 어머니는 어떤 국난(國難)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 대한(大韓)의 나라에 뿌리면서
씨앗을 지켰던 생명의 비밀을.
♧ 호박죽 - 강세화
푹푹하게 눈이 내리는 날
아내는 모처럼 호박죽을 끓인다
일없이 거드는 참견은 돌아도 안보고
품에 들만한 옹솥을 지키고 있다
누렁호박 한덩이 구슬려서
심각한 사정도 손싸게 따돌리며
옹솥에 엉기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촌수없이 텃밭을 에두른 호박덩굴이
한물간 내력을 들먹거리고 있다
일마다 죽쑤는 시절에
마무리 안되는 일상을 밀어두고
맘놓고 퍼지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톡톡한 입맛이 느릿느릿 달아오르며
가만있지 못하는 심성이 옹솥을 휘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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