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천남성은 저렇게 스러져

김창집 2011. 12. 27. 00:44

 

성탄절이 지나고 12월의 마지막 주말

기온은 뚝 떨어지고 날씨는 흐릿한데

숲속에서 스러져서도 마지막으로

빨갛게 빛을 발하던 천남성을 떠올린다.

그제 본 것인데, 지금쯤 눈 속에 묻혔을 텐데

내년에 오는 봄을 맞아 씩을 틔울 준비나 할까?

 

천남성(天南星)은 천남성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잎은 길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5~7월에 보라색,

녹색 꽃이 핀다. 열매는 옥수수처럼 달리며 붉게 익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산지의 습지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내 영혼에 쌓이는 12월 - (宵火)고은영

 

봉숭아 대궁에 몰래 심던

연녹색 사랑도 떠나가고

지금은 돌아와 내 앞에 선

황혼의 나루터

 

이별은 들숨으로 와

내 속 사람에

까무러치는 울혈로 부각되었다

 

황혼도 아름다운 해거름

고백하는 정적은 침묵으로 눈감고

자연은 사무친 눈 속에 날 오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난해야 하리니

철저하게 낮아져야 하리니

 

일제히 함성 하는 저

동짓달 긴 밤이 뱉는 절망 위에

꽁꽁 언 채 미끄러지는 의식 밑바닥

살아야 하는 절망을

나는 오히려 희망이라 말하리

 

툭툭,

노송에 앉은 눈 떨어지는 소리

영혼 갈피 갈피에

12월이 쌓이기 시작했다

 

  

 

♧ 12월의 마른 숲 - 장수남

 

12월의 마른 숲

너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녹슨 발자국들이 무거운 땅

내리 찍는다.

 

백지위에 까만 일기

남은 날짜 누가 지우는가.

 

양로원 할머니의 길고 긴

한 만은 사연

찌그러진 빈 라면상자

때 묻은 할아버지의 손끝에

남은세월 채우고 있다.

 

막 노동판 아저씨의

무거운 퇴근길

얄팍한 호주머니 포장마차

소주잔에 비워버리고.

 

오늘 쓰고 남은시간

내일새벽 너는 가다려 줄까.

가로등 하얀 입김 서리며

세월의 끝자락에 서서

마지막 가는 길목 누군가가

지켜주고 있다.

 

  

 

♧ 12월 끝자락에서 - 목필균

 

한줄기 바람으로 흐른다.

멈출 수없이 날아다닌 시공의

긴 터널 속에 박쥐처럼 드나들던

어둠과 빛이 뼈에 박히고

돌부리에 채여 멍든 엄지발톱이

이제쯤 깎여 나가 잊혀질만한 아픔도

연륜 속에 상처로 묻혀진다.

 

한 줄기 강으로 흐른다.

언제나 낯선 허공 속을 퍼덕거리며

미숙하게 날갯짓하는 작은 새가

내일이라는 반투명 공간을 향해

접었던 날개 다시 펼친다.

 

  

 

♧ 천남성 - 반기룡

 

그 이의 수줍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천남성

 

첫 남성을 볼 때 그 느낌처럼

가슴 뜨거워진다

푸른 줄기에 새겨졌을

그대의 뜨건 입김처럼

내 심장을 달구던

그 때 그 시절이여

 

 

잉걸불처럼 익은 열매는

그대와 나의

사랑의 씨앗이 아직도

풍성함을 넌지시 알려주는 증표이겠지

아흐,

천남성이

올곧게 고개 내미는

달착지근하고 푸른 날이여

 

오늘따라 첫 남성이 더욱 그립다

 

  

 

♧ 동백꽃이 떨어졌네 - 이생진

 

비탈길 내려오다 미끄러진 소 발자국

산비탈엔 층층이 다랑이논

산딸기 따먹고

할아버지 무덤 옆에서 낮잠 자다

산새 소리에 눈을 뜨면 붉은 천남성

색동저고리 입은 처녀귀신처럼

발자국 소리 죽이고 내 옆에 서 있네

동백꽃 삼천 궁녀 빨갛게 떨어지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배성의 늙은 호박  (0) 2012.01.03
새해에 열리는 새로운 길  (0) 2012.01.02
한경직 목사의 찬란한 빈손  (0) 2011.12.26
성탄절 아침에 부쳐  (0) 2011.12.25
성탄 전날이 왔는데  (0) 2011.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