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지나고 12월의 마지막 주말
기온은 뚝 떨어지고 날씨는 흐릿한데
숲속에서 스러져서도 마지막으로
빨갛게 빛을 발하던 천남성을 떠올린다.
그제 본 것인데, 지금쯤 눈 속에 묻혔을 텐데
내년에 오는 봄을 맞아 씩을 틔울 준비나 할까?
천남성(天南星)은 천남성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잎은 길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5~7월에 보라색,
녹색 꽃이 핀다. 열매는 옥수수처럼 달리며 붉게 익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산지의 습지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내 영혼에 쌓이는 12월 - (宵火)고은영
봉숭아 대궁에 몰래 심던
연녹색 사랑도 떠나가고
지금은 돌아와 내 앞에 선
황혼의 나루터
이별은 들숨으로 와
내 속 사람에
까무러치는 울혈로 부각되었다
황혼도 아름다운 해거름
고백하는 정적은 침묵으로 눈감고
자연은 사무친 눈 속에 날 오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난해야 하리니
철저하게 낮아져야 하리니
일제히 함성 하는 저
동짓달 긴 밤이 뱉는 절망 위에
꽁꽁 언 채 미끄러지는 의식 밑바닥
살아야 하는 절망을
나는 오히려 희망이라 말하리
툭툭,
노송에 앉은 눈 떨어지는 소리
영혼 갈피 갈피에
12월이 쌓이기 시작했다
♧ 12월의 마른 숲 - 장수남
12월의 마른 숲
너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녹슨 발자국들이 무거운 땅
내리 찍는다.
백지위에 까만 일기
남은 날짜 누가 지우는가.
양로원 할머니의 길고 긴
한 만은 사연
찌그러진 빈 라면상자
때 묻은 할아버지의 손끝에
남은세월 채우고 있다.
막 노동판 아저씨의
무거운 퇴근길
얄팍한 호주머니 포장마차
소주잔에 비워버리고.
오늘 쓰고 남은시간
내일새벽 너는 가다려 줄까.
가로등 하얀 입김 서리며
세월의 끝자락에 서서
마지막 가는 길목 누군가가
지켜주고 있다.
♧ 12월 끝자락에서 - 목필균
한줄기 바람으로 흐른다.
멈출 수없이 날아다닌 시공의
긴 터널 속에 박쥐처럼 드나들던
어둠과 빛이 뼈에 박히고
돌부리에 채여 멍든 엄지발톱이
이제쯤 깎여 나가 잊혀질만한 아픔도
연륜 속에 상처로 묻혀진다.
한 줄기 강으로 흐른다.
언제나 낯선 허공 속을 퍼덕거리며
미숙하게 날갯짓하는 작은 새가
내일이라는 반투명 공간을 향해
접었던 날개 다시 펼친다.
♧ 천남성 - 반기룡
그 이의 수줍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천남성
첫 남성을 볼 때 그 느낌처럼
가슴 뜨거워진다
푸른 줄기에 새겨졌을
그대의 뜨건 입김처럼
내 심장을 달구던
그 때 그 시절이여
잉걸불처럼 익은 열매는
그대와 나의
사랑의 씨앗이 아직도
풍성함을 넌지시 알려주는 증표이겠지
아흐,
천남성이
올곧게 고개 내미는
달착지근하고 푸른 날이여
오늘따라 첫 남성이 더욱 그립다
♧ 동백꽃이 떨어졌네 - 이생진
비탈길 내려오다 미끄러진 소 발자국
산비탈엔 층층이 다랑이논
산딸기 따먹고
할아버지 무덤 옆에서 낮잠 자다
산새 소리에 눈을 뜨면 붉은 천남성
색동저고리 입은 처녀귀신처럼
발자국 소리 죽이고 내 옆에 서 있네
동백꽃 삼천 궁녀 빨갛게 떨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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