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날 아침, 해를 맞으러 함덕 서우봉에 다녀왔습니다.
하늘이 허용하는 선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눈에 안 보이는 해를 원망하지 않았고,
그 시간 분명히 약속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믿고는,
마음속에 각자가 바라는 소망을 담은 멋있는 해를 떠올려 품은 채,
나머지 오름을 답사한 후, 북촌에서 회국수와 문어를
포함한 안주에 한 잔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2012년 임진년도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 눈길에 만난 새날 첫 것들의 발자국 - (宵火)고은영
밤을 틈타 하얗게 서설이 내렸다
한파와 한파 사이 해 뜰 창에
가만히 세상의 첫날이 밝고
첫날 첫 것들의 발자국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눈부시다
그대와 나의 해후는 서러운 무일푼이 어도 좋다
환상은 현실을 깨우쳐주는 몽환의 무덤이어도
피부로 느끼는 서러움만큼 리얼한 일도 없다지만
온 산야는 카랑한 눈꽃들이 쨍쨍하게 만발하였다
잡풀의 대궁에도 눈꽃은 오히려 환하다
소복단장 한 겨울의 얼굴에
동면의 긴 잠에 빠진 봄의 내음을 그리며
내 영혼의 때를 말끔히 씻고 싶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향하여
첫 것들의 순결과 사명이 사랑임을 알기에
내게 남은 것들이 결코, 부끄럽지 않은
충분한 축복과 은혜를 감사하며
경건한 기도로 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찍고
세상으로 귀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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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참: 해가 돋을 무렵.
서설 : 상서로운 눈
카랑하다 :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높고 맑다. 빛이 제법 맑고 밝다
♧ 우리 한국의 새날 새아침의 詩 - 서지월
지금도 먼 시간의 새벽녘에는
흰눈 밟고 물 길어오는
코고무신 소리 들려오고 있으리.
눈 덮인 싸리재 너머
사푼사푼 걸어오시는 임의 치마자락 스치는 소리
靑솔가지 꺾어들고
벌써 대문간에 와 있으리.
하늘에서는 오천 년만에 처음 열리는 하늘에서는
무우청같이 싱싱한 닭울음소리
지네기와집 용마루를 넘어오고
새로 태어난 아기들
이 나라 이 땅의 새로 태어난 아기들
번져 나오는 웃음소리
아침상 은수저 위에 빛날 때
우리는 다시 길을 가야 하리
저마다 쇠방울을 단 牛車를 끌고
동무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푸른 보리밭길을 따라서, 따라서……
♧ 새날을 위한 노래 - 최진연
산골 밤은
산골짝보다 깊어가고
귀가 멍멍하게 온 골을 채우고
점점 산등 높이 오르는 물소리 물소리.
허공에 스멀거리는 태초의 어둠처럼
안개도 물소리 따라
골짝을 뒤덮고 산허리까지 다 잠그고
그 부드러운 혀로 산꼭대기를 널름거린다.
거대한 물소리와 안개의 창세기
이 골짝에서 새로 태어나는
주먹 같은 별들이 번쩍이는 하늘
기쁨의 동산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보고
참 좋구나! 감탄하던 창조주
그와 함께 지새는 밤의 깊음 위로
그 눈부신 형상처럼 태양이 솟아오르는
아침이 되면 그 사람은 깨어나리라.
골짝을 통째로 삼켜버린 혼돈의 밤
안개는 도망치듯 사라지고
물소리 낮게낮게 포복하는 새벽
새날에는 만물도 그와 함께 깨어나리라.
♧ 새해 아침에 - 홍수희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주고서 받을 셈은 잊게 하시고
더 주지 못한 아쉬움만
갖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받고 싶은 한 마디는 잊게 하시고
주어야 할 한 마디만 내내
기억하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창가에는 불빛 하나 걸어두게 하시고
문 두드리는 소리 행여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현란한 겉치레의 행적(行蹟)보다는
관심의 작은 몸짓 하나가
부디 기적의 시작임을 알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격식이나 체면에는 덤덤하게 하시고
진실로 서야 할 자리를 분별하는
견고한 지혜를 허락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일상(日常)의 소중함을 알게 하시고
오늘이 곧 영원으로 이어진 길 위에
놓여 있음을 알게 하소서
새해에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사랑만이 삶의 이유가 되게 하시고
오직 사랑만이 내게는 하루의
목적이 되게 하소서
♧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 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신년! 해피 뉴 이어!
♧ 새해의 소망이 열리는 아침 - 권영민
새해가 열린다
새날의 여명이 밝아온다
깊은 어둠을 헤치고
혼돈의 터널을 지나
새해가 밝아온다
누가 이 아침 雲舞(운무)를
침노할 수 있으랴
누가 이 아침 희망을
저버릴 수 있으랴
저 빛을 보라
찬란히 솟아오르는,
눈부신 저 빛살에 안겨 춤을 추자
힘찬 날개짓으로
푸른 하늘 위를 날아오르자
가없이 출렁이는 푸른 바다
산맥처럼 솟아오르는 희망봉으로
그 나라로, 힘차게 날아오르자
어제의 어둠을 뚫고
오늘은 빛이 열린다
새해가 열린다
새날의 여명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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