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자목련은 수줍게 핀다

김창집 2012. 4. 20. 00:16

 

자목련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꽃도 크고 속이 흰빛을 띠는 것과

이것처럼 꽃도 작고 속이 덜 흰 것.

그리고 환한 대낮인데도 활짝피지 못하고 수줍다.

 

자목련(紫木蓮)은 목련과에 속한 낙엽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13m 정도이고, 잎은 마주나며 도란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4~5월에 진한 자줏빛의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열매는 난상 타원형으로 갈색이며,

익으면 빨간 종자가 실에 매달린다.

중국 원산이며 난꽃과 비슷하다.  

 

 

♧ 자목련 - 도종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목련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 자목련 - 박정순

 

겨우내 기다림을 가져왔던

몸짓이었다

뜰 앞에서

자주빛 꽃 잎 붉게 타는

자목련

긴 겨울

강철같은 추위로 꽁꽁 묶인

몸을 풀고

온 가슴 흥근히 문질러

그리하여 그 상처 배어나는 여린 얼굴로

잎사귀 돋아

꽃 피는 것이 아닌

그 고통 온 몸으로 나타내고야 마는 것을 모른척 하랴

끝끝내 온가슴 문대질 때까지

버티는 것을

꽃 피고 잎사귀 여는 자목련의 상흔

이 봄은 더욱 붉어진다   

 

 

♧ 자목련(紫木蓮) - 박경현

 

이글거리는 보랏빛 정욕 내뿜다

오르가슴 한번 제대로 못 느낀

처연한 곤충이어라.

 

눈보라 차디찬 바람 용히도 이겨내고

한 뼘 봄기운 조급히 즐기려는

조바심의 멍울이어라.

 

그 뉘를 향한 우직한 수줍음인가?

그 뉘를 찾는 기름진 용솟음인가?

그 뉘를 달랠 처절한 몸부림인가?

 

 

♧ 자목련꽃 필 무렵 - 손병흥

 

나뭇잎 나오기도 전 이른 봄

흰 목련의 순백함에 놀라

화들짝 자주빛으로 물들어 버린 얼굴

그 밝은 빛깔 오랜 기다림

봄내음 맡고서야 피어나는 꽃

꽃 먼저 피는 백목련 꽃망울

잎과 함께 피어나는 기다림

자목련(紫木蓮) 고운 자태

나무에 피는 연꽃 신이화(辛夷花)

그 옥(玉) 같은 꽃

난초 같은 맑은 향기

목련 꽃잎 한 조각 꽃봉오리

봄 끝에 터뜨리는 망춘화(忘春花)

그윽하고 은은한 여섯장 꽃잎

겉 짙은 자주색 화사한 빛깔

안쪽 연한 자주색 띠는 고상함

충분한 햇빛 받았을 때 맞춰

꽃샘추위 견디며 인내하는 지혜로움

관상용 정원수로 가꾸고 식재하는

고상한 화목류 낙엽소교목

보랏빛 꿈 봄꽃의 화신.

    

 

♧ 자목련 비애 - 김숙경

 

입술로 말하지 말아요

여민 가슴의 띠를 열어 봐요

작은 샘가 늘어진 소나무는

깊은 그늘이나 드리우지

그렇게 비교해 말하지 말아요

이끼의 침묵이 있음 붉음도 생각해 보자구요

상념도 열 길 스무길 봄이라 외치는 이참에

자목련 기어이 뜨거운 화덕을 품었으니

윤회의 절절한 사연 사연들

어지간한 고통쯤은 마르고 말겠지요

 

 

꺼덕꺼덕 걷다가 다리품 쉬는

인생도 읽어낼 법한 연자줏빛 그 몽우리

입술은 치장한 쪽문에 불과하여

말하지 말아요 홍조 띤 두근거림만 올려놔요

한 사람 두 사람 바라보다가

천사람 사연을 아는 척해도

열 오른 가슴은 새가 되어 허공을 맴맴

듣는 이 저만치 등을 보일 때쯤에

백목련만 목련이냐

벙어리 울음 꺼이꺼이 토하려 합니다   

 

 

♧ 자목련 - 목필균

 

겨우내

소리 없이 올린 기도

 

기다림이 여물어

하늘 끝에 섰다

 

봄 속에 봄

가지 끝마다 서 있는

붉은 입술들

 

바라보는 눈이

파닥거린다

       

 

♧ 자목련의 첫사랑 - 현상길

 

울타리 바깥에서

기웃거리는 눈짓에

두 볼 벌써 달아올라

 

떨리는 손길 닿기도 전

붉은 입술 오므리고

혀끝을 적시다가

 

훈풍의 속삭임만 스쳐도

목이 타는

여린 순정의 꿈

 

봄밤의 초례 부끄러워

인연의 비 소리없이

흠뻑 젖은 몸 보듬고 가면

 

투명한 눈물 틈으로

무수히 터지는

연록의 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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