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탐문회 회원들을 모시고 내가 자란 마을인 곽금 올레 답사를 갔었다.
시원한 바닷가로부터 냇가, 외가 마을, 농로, 어렸을 적 소 물 먹이러 다니던
버들못, 오름,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유일한 소나무 밭 옆을 지나 문필봉까지
돌아보았다. 마침 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여서 참석을 못한 대신 막걸리와
맛있는 돼지고기를 얻어다 42명이서 즐겁게 마셨다.
자란(紫蘭)은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양지를 좋아한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5~6개가 기부에서 서로 감싸 나며, 길이가 20~30㎝에
이르고 세로 주름이 많다. 5~6월이 되면 잎 사이에서 꽃대가 나와 꽃줄기의
끝에 6~7개의 홍자색 꽃들이 총상으로 달리며, 요즘은 화단에서 자주 보인다.
한방에서는 덩이줄기를 백급이라고 하여 상처와 위궤양에 쓰인다.
♧ 자란행紫蘭行 - 홍해리(洪海里)
--애란愛蘭
한번 꽃을 피우고 나면
가을이 오고
한 해가 기우는데
거리마다 외투깃 슬몃 올리는
허허한 시간
가을걷이 끝내고
혼불만 붙어 있는 빈 몸
더 밝은 빛을 위하여
속울음을 잠재우나니
자란자란 차오르는 보랏빛 그리움
따스한 대지의 보드라운 살에
꼬옥 꼭 박아 놓고 있나니.
♧ 깨진 금이 자란다 - 주경림
식탁 유리에 금이 갔다. 냄비 바닥에서 열을 받았는지 독이 올라
시퍼렇게 질린 단면. 깨진 금은 독소의 힘을 못이겨 날마다 뻗어나
간다. 상처는 소리없이 잔가지를 친다. 잔가지 속으로 파고들어 나
뭇결을 만든다. 살아 꿈틀거리는 금은 모서리에 닿으면 그칠까. 상
처는 흐름을 되짚어 뿌리쪽으로 길을 이어나간다. 귀퉁이에서 시작
해 곧게 혹은 굽이치며 식탁을 횡단한다. 마침내 깨져 나간 조각조
각이 날을 세운다. 날 세운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베인다. 아픔은 몸
구석까지 파고들어 손가락 발가락이 저릿저릿하다. 내 키를 넘어서
는 금, 온몸을 휘감는다. 그물망으로 엉켜 이제 나를 단단히 받친다.
옮겨 심어지는 나무뿌리가 움켜 쥔 흙덩이.
♧ 톱날소리에 나무는 자란다 - 이시백
도토리거우벌레는 갈참나무 그늘에 숨어서 햇빛에 검게 그을린 목을 쭉 빼고 지친 걸음을 걸어 걸어서 나무줄기를 따라간다 커다란 잎에 쉬기도 하면서 튼튼한 도토리를 골라 알을 밀어넣는 동안에 나뭇잎은 모두 숨죽이고 있다 이놈은 얼마나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지 목이 앞으로 휘어 두 눈만이 위로 올라와 있다 그는 침묵으로 늘 일을 한다 나도 그를 따라 침묵으로 고개를 숙여본다 바람소리에 묻혀 그가 톱질하는 소리에 나무들은 자란다 그리고 자신의 알을 하나하나 낳는다 가슴속에서 별러온 톱을 꺼내 싱싱한 갈참나무 잔가지들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긴 날을 세워 톱날을 간다 내가 얻어야 할 열매를 위해 목을 쭉 빼고 걸으며 갈참나무 우듬지를 바라본다 나뭇잎에 가린 도토리거우벌레 그림자가 발에 밟힌다.
♧ 소리 없이 곰팡이가 자란다 - 박서영
검은 그림자를 펄럭이며 나는 간다
소리 없이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꼭꼭 닫으며
몸 안 어딘가에 곰팡이를 기르면서
그늘과 그늘로 이어진 길다란 길을 가는 것이다
몸속에선 소리 없이 곰팡이가 자란다
밥에 핀 푸르스름한 꽃, 시간은 번식한다
추억이라는 허름한 이름으로 그해 봄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다가왔다가 우루루 떠났다
나는 저 들판에 거꾸로 처박힌
빈 병에라도 꽂히길 원했었지만
아무도 나의 창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런 허망한 꿈이라도 꾸는 밤은 그래도 좋았다
이제 나는 썩어가는 심장을 들고
내 몸 속에서만 자란다
사람들은 뒤돌아서서 손가락질을 해대거나
욕을 하면서 이별을 감추리라
나는 가능한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썩어가고 싶지만
밥이 처음부터 곰팡내를 풍겼던 것처럼
모든 존재들은 그렇다
냄새를 풍기려고 태어나는 지도 모른다
♧ 시간은 사람을 먹고 자란다 - 정진혁
시간이 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오래 입어 해진 스웨터를 걸치고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6시 13분에 저녁을 달게 먹었다
어머니는 늘 시간을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이제 어머니는 시간의 먹잇감이 되었다
시간은 이미 귀를 먹어 치웠다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은
왼쪽 발목 관절을 먹는 시간의 입가에
어머니가 먹은 시간이 질질 흘러내렸다
시간은 사람을 먹어 작아지게 한다
기억을 먹어버리고
안경너머 짓무른 눈에는 끈끈한 침을 발라 놓았다
이 빠져 흉한 사기그릇처럼
군데군데 이빨마저 먹어치웠다
시간 앞에 먹이거리로 던져진 육신
어머니는 이제 손목에 시계를 차지 않았다
오늘도 어머니는 6시 13분에 저녁을 달게 먹었다
기다렸다는 듯
시간은 어머니 오른 쪽 무릎 관절에 입을 대었다
먹히던 시간이
무서운 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 사파이어 녹색부전나비 - 유자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저는 죽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빛으로 인하여 드러난 제 삶의 실체가 저를 슬프게 했으니까요 때로 저는 왜 이토록 징그러운 형상으로 태어났는지 신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죽고 싶다는 욕망 뒤에서 눈부시게 타오르는 것, 그것은 살아서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것, 사랑하므로 영원을 만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기어오를 수도 없는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을 뿐입니다 ,아,닿을 수 없습니다 만질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눈부신 존재였습니다 저는 당신의 일부분인 가지에 제 몸의 가슴과 배를 묶었습니다 어둠....침묵,,,,용서,,,,그리하여 눈부시고 눈부신 내 꿈들이 날개를 갖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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