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애기똥풀 꽃에 대하여

김창집 2012. 5. 19. 00:06

 

참 이상도 한 것이

한반도에는 애기똥풀이 없는 곳이 없는데

제주에는 없는 게 신통하다.

하다못해 저 압록강 건너

광개토대왕비 옆에도 피었다더라.

지금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꺾으면 노랑 액이 나오는 저게 유행인데….

 

애기똥풀은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로 높이는 30~8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무 잎과 비슷하며 아랫면은 분처럼 희다.

5~8월에 노란 꽃이 산형 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삭과이다. 마취와 진정 작용이 있어 약용한다.

들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데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 애기똥풀 - 김승기

 

에이 여보슈, 똥이라니요

내 몸에 흐르는 신성한 피

노란 색이 어때서, 구린내라도 난단 말인가요

당신네들 입 가볍게 놀리는 건 진즉이 알았지만

안하무인으로 아무 때고 남 깔보는 버릇은

너무 지나치다 생각되지 않나요

당신들이 푸른 하늘을 이고 살듯이

이 노란 피로 이 땅에 뿌리 내린

내 속에도 뜨거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당신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그저 시덥잖은 풀이었던가요

당신들의 그 잘난 입맛 돋구는

쑥갓 상추 씀바귀 만삼 더덕 고들빼기

이들의 乳液유액은 또 뭐라 부를 건가요

고약하게는 부르지 않겠지만 궁금하네요

당신네들 몸 속의 붉은 액체만

피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내 얼마나 당신들의 착한 자연이 되어

헐벗고 허물어진 땅 깁으며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꽃을 피우는데,

그게 사랑 아니었는가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 똥이라니요    

 

 

♧ 다시 애기똥풀 - 김경희

 

햇살 좋은

겨울날

 

아기 안고

그림책 보누나

 

책속 수풀길을 가자

애기똥풀도 보자.

 

아기야

 

너희는 너희,

그냥 너이라서-

 

고움이로구나

'똥'이라고도 부르는구나.

 

누가

코를 쥐랴

기저귀를 펼치랴

 

저기

흰 노랑나비

하늘 하늘~ 춤추며 온다.

 

나도

몽클 너희 맑은 숨결에

 

뺨을 대누나

대어 주고 싶구나

 

앞산에

 

흰 눈 다시 내려도.   

 

 

♧ 가벼운 것에 대한 명상 - 권옥희

 

물소리들이 둥근 자갈돌을 돌돌 굴리며

한 세기의 사상으로 흘러간다

산그늘이 여러 번 물속에 잠겼다 떴다

좋은 것은 가볍다는 걸

작은 풀꽃들이 일러 주었으나

몇 번이고 물을 건너 적벽을 오르는 바람은

제 살을 깎지 못했다

 

잠시, 애기똥풀처럼 세상이 노랗다

배꼽까지 가득 채운 똥

배출구를 찾지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끙끙대며 힘을 주는 동안

무의미한 세상은 한 번 더 물 구비를 돌았다

나비 한 마리도 팔랑이며 날아갔다

 

또 밥을 먹을 때까지 물 위를 찰박이며

물수제비 보다 앞서가는 욕망

똥이란 이렇게 발광하며 썩나보다

아랫배에 부글부글 분노를 끓여가며.   

 

 

♧ 애기똥풀꽃의 웃음 - 권달웅

 

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에 뛰어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히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쉿! 조용해! 무슨 소리가 났지?)

 

이 삼라만상의 갖가지 일에 부딪치면서 살다보면

더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참으며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처럼

참으로 힘 드는 건 똥 참는 일이다.

참으로 시원한 건 똥 싸는 일이다.

 

숲 속의 애기똥풀꽃이 노랗게 웃었다.  

 

 

♧ 난 네 이름이 알고 싶다 - 이정란

 

우람한 나무에서 잎새 몇 장 떨어진다

파란 잎너울에 열리는 투명한 공간

이파리가 땅에 떨어지자 그만 닫힌다

 

그 순간 난 네 이름이 알고 싶다

 

나무는 공간을 자아 나뭇잎을 얻었고

시간을 덖어 이름과 꽃을 얻었다

꽝꽝나무는 불에 타 죽을 때 비로소

제 이름을 발설하고

애기똥풀은 허리가 꺾여야

노란 똥물을 뱉는다

 

처음 만나 주고받은 우리 이름은

그러므로

아직 이르다, 이름이 아니다, 이르지 못함이다

죽기 직전 혹은 극한 슬픔 앞에서

한 번도 열지 않은 주머니가 밀어내는

이쁜 그 혀에

몸을 대보고 싶은 것이다  

 

 

♧ 애기똥풀꽃 - 김내식

 

다랑이 논에 물을 대는

조선 천지 모내기철

산과들 가리지 않고

노랗게 피어난다

 

홀로 두고 온 우리아기

기저귀에 싼 노란 똥처럼

비릿하고 달콤하게

젖 내음 풍겨온다

 

모심기 하던 젊은 아낙은

통통 불은 젖 추슬러

허둥지둥 논둑에 눕혀 논

아기에게 달려간다

 

풀잎에 싸놓은 똥 때문에

부끄러운 이름의 꽃

줄기도 찌르르 젖이 돌아

뚝뚝 떨어뜨린다  

 

 

♧ 치매 - 서영숙

 

검버섯이 아귀다툼을 하며

홀씨를 피웠다

이승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사랑을 받고 싶어

등뼈가 뒤틀리는 아픔 건네주고

만발한 검붉은 장미

 

틀니도 서랍 속에서 코를 골고

제 멋대로 길을 낸 주름과

니콜 안 되는 사지는 바람에도 재채기한다

반환점 없는 생, 주눅들은 기억들

이중으로 어둠의 창을 내리고

시린 겨울 강을 건너고 있다

 

척박한 터에 씨를 뿌려

망울진 꽃 피기 전에 떨어질까

땡볕에 타죽을까 애간장 녹이며

몇 천, 몇 날

바람과 비, 해와 달

버팀목이던 옹고집 세월,

한 생 지고 갈 욕심과 아집

이제는 홀가분하게 털어 버리고 싶은가 보다

 

 

걸어둔 빗장도 풀고

하늘에 길을 내는 것

배내똥을 토해도 더럽지 않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길

 

잊는다는 것,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종착역이라도

그 기차 다시 탈 이 있으리

 

그 역에서 애기똥풀 다시 필 테니.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란이 피기까지는  (0) 2012.05.21
섬초롱꽃 세계인의 날에  (0) 2012.05.20
이팝나무의 꽃잔치  (0) 2012.05.18
금난초, 봄 숲을 장식하다  (0) 2012.05.15
참꽃 흐드러진 숲  (0) 201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