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도 한 것이
한반도에는 애기똥풀이 없는 곳이 없는데
제주에는 없는 게 신통하다.
하다못해 저 압록강 건너
광개토대왕비 옆에도 피었다더라.
지금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꺾으면 노랑 액이 나오는 저게 유행인데….
애기똥풀은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로 높이는 30~8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무 잎과 비슷하며 아랫면은 분처럼 희다.
5~8월에 노란 꽃이 산형 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삭과이다. 마취와 진정 작용이 있어 약용한다.
들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데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 애기똥풀 - 김승기
에이 여보슈, 똥이라니요
내 몸에 흐르는 신성한 피
노란 색이 어때서, 구린내라도 난단 말인가요
당신네들 입 가볍게 놀리는 건 진즉이 알았지만
안하무인으로 아무 때고 남 깔보는 버릇은
너무 지나치다 생각되지 않나요
당신들이 푸른 하늘을 이고 살듯이
이 노란 피로 이 땅에 뿌리 내린
내 속에도 뜨거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당신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그저 시덥잖은 풀이었던가요
당신들의 그 잘난 입맛 돋구는
쑥갓 상추 씀바귀 만삼 더덕 고들빼기
이들의 乳液유액은 또 뭐라 부를 건가요
고약하게는 부르지 않겠지만 궁금하네요
당신네들 몸 속의 붉은 액체만
피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내 얼마나 당신들의 착한 자연이 되어
헐벗고 허물어진 땅 깁으며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꽃을 피우는데,
그게 사랑 아니었는가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 똥이라니요
♧ 다시 애기똥풀 - 김경희
햇살 좋은
겨울날
아기 안고
그림책 보누나
책속 수풀길을 가자
애기똥풀도 보자.
아기야
너희는 너희,
그냥 너이라서-
고움이로구나
'똥'이라고도 부르는구나.
누가
코를 쥐랴
기저귀를 펼치랴
저기
흰 노랑나비
하늘 하늘~ 춤추며 온다.
나도
몽클 너희 맑은 숨결에
뺨을 대누나
대어 주고 싶구나
앞산에
흰 눈 다시 내려도.
♧ 가벼운 것에 대한 명상 - 권옥희
물소리들이 둥근 자갈돌을 돌돌 굴리며
한 세기의 사상으로 흘러간다
산그늘이 여러 번 물속에 잠겼다 떴다
좋은 것은 가볍다는 걸
작은 풀꽃들이 일러 주었으나
몇 번이고 물을 건너 적벽을 오르는 바람은
제 살을 깎지 못했다
잠시, 애기똥풀처럼 세상이 노랗다
배꼽까지 가득 채운 똥
배출구를 찾지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끙끙대며 힘을 주는 동안
무의미한 세상은 한 번 더 물 구비를 돌았다
나비 한 마리도 팔랑이며 날아갔다
또 밥을 먹을 때까지 물 위를 찰박이며
물수제비 보다 앞서가는 욕망
똥이란 이렇게 발광하며 썩나보다
아랫배에 부글부글 분노를 끓여가며.
♧ 애기똥풀꽃의 웃음 - 권달웅
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에 뛰어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히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쉿! 조용해! 무슨 소리가 났지?)
이 삼라만상의 갖가지 일에 부딪치면서 살다보면
더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참으며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처럼
참으로 힘 드는 건 똥 참는 일이다.
참으로 시원한 건 똥 싸는 일이다.
숲 속의 애기똥풀꽃이 노랗게 웃었다.
♧ 난 네 이름이 알고 싶다 - 이정란
우람한 나무에서 잎새 몇 장 떨어진다
파란 잎너울에 열리는 투명한 공간
이파리가 땅에 떨어지자 그만 닫힌다
그 순간 난 네 이름이 알고 싶다
나무는 공간을 자아 나뭇잎을 얻었고
시간을 덖어 이름과 꽃을 얻었다
꽝꽝나무는 불에 타 죽을 때 비로소
제 이름을 발설하고
애기똥풀은 허리가 꺾여야
노란 똥물을 뱉는다
처음 만나 주고받은 우리 이름은
그러므로
아직 이르다, 이름이 아니다, 이르지 못함이다
죽기 직전 혹은 극한 슬픔 앞에서
한 번도 열지 않은 주머니가 밀어내는
이쁜 그 혀에
몸을 대보고 싶은 것이다
♧ 애기똥풀꽃 - 김내식
다랑이 논에 물을 대는
조선 천지 모내기철
산과들 가리지 않고
노랗게 피어난다
홀로 두고 온 우리아기
기저귀에 싼 노란 똥처럼
비릿하고 달콤하게
젖 내음 풍겨온다
모심기 하던 젊은 아낙은
통통 불은 젖 추슬러
허둥지둥 논둑에 눕혀 논
아기에게 달려간다
풀잎에 싸놓은 똥 때문에
부끄러운 이름의 꽃
줄기도 찌르르 젖이 돌아
뚝뚝 떨어뜨린다
♧ 치매 - 서영숙
검버섯이 아귀다툼을 하며
홀씨를 피웠다
이승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사랑을 받고 싶어
등뼈가 뒤틀리는 아픔 건네주고
만발한 검붉은 장미
틀니도 서랍 속에서 코를 골고
제 멋대로 길을 낸 주름과
니콜 안 되는 사지는 바람에도 재채기한다
반환점 없는 생, 주눅들은 기억들
이중으로 어둠의 창을 내리고
시린 겨울 강을 건너고 있다
척박한 터에 씨를 뿌려
망울진 꽃 피기 전에 떨어질까
땡볕에 타죽을까 애간장 녹이며
몇 천, 몇 날
바람과 비, 해와 달
버팀목이던 옹고집 세월,
한 생 지고 갈 욕심과 아집
이제는 홀가분하게 털어 버리고 싶은가 보다
걸어둔 빗장도 풀고
하늘에 길을 내는 것
배내똥을 토해도 더럽지 않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길
잊는다는 것,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종착역이라도
그 기차 다시 탈 이 있으리
그 역에서 애기똥풀 다시 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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