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모래지치 고향 바닷가에

김창집 2012. 5. 29. 00:28

 

지난 일요일, 고향 바닷가 올레길에서

피기 시작한 지 꽤 되는

이 모래지치를 만났다.

 

옛날에는 이름도 몰랐고

이렇게 아름다운 줄도 몰랐는데

볼수록 은은한 빛이 고운 꽃.

 

모래지치는 지칫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5~35cm 정도이며,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가지가 비스듬히 퍼지고

잎이 뻑뻑하게 난다.

8월에 흰 꽃이 취산 꽃차례로 달리며,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란다.

아시아와 유럽의 온대에서 난대에 걸쳐 분포한다.

 

 

♧ 모래가 바위에게 - 강은교

 

우리는 언제나 젖어 있다네.

어둠과 거품과 슬픔으로

하염없는 빛 하염없는 기쁨으로

모든 세포와 세포의 사잇길을 지나

폭풍의 날개 속으로 스며든다네.

한낮에도 가만가만 스며든다네.

 

길 막히면 길 만든다네.

바람 막히면 바람 부른다네.

세계의 수억 싸움 속에

세계의 수억 죽음 속에

낮은 지붕 위란 지붕 위

썩은 살이란 살 위

 

넘치고 넘쳐서

우리는 꿈을 꾼다네.

금빛 바위가 되는 꿈을 꾼다네.  

 

 

♧ 내 잠 속의 모래산 - 이장욱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들 내 잠 속에 쌓이고 있었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그때 그 오래된 불행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

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 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바람, 그대 허허로운 등 흘러

가네 눈 감으면 그때인 듯 메마른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

산, 모래산에 쌓이네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 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목마름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죽은 그대의 모래산   

 

 

♧ 모래 무더기 - 최진연

 

모래들이 쌓여 있다.

내일은 어떤 존재일지 모르는

고만고만한 알갱이들의 고향

햇살과 바람의 강물은 보이지 않고

그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공간

올라서거나 깔려 있는

고만고만한 존재들의 한 무더기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너는 뭐냐고 내게 묻고 있다.

 

그 무덤 속에 묻혀 있는

풀과 꽃들의 환상

한 알갱이씩 안겨오는 햇살의 포옹

이 찬란한 햇빛 속에서도

어둠으로 쌓여 있는 한 무더기

내일은 무엇이 될지 모르는

모래들이 쌓여 있다.   

 

 

♧ 모래 사면 - 김정란

 

내 가슴속엔

어떤 비규정성의

경사가 있어

 

그건 지독히 강력하게

자기 원칙을 주장하지

날이면 날마다 자기 논리 안에서 강화되기만 하는

 

어느 날 뒤돌아보니

이미 늦은 거야

돌아 갈 길이 지워졌어   

 

 

뿌윰한 천사들 하나, 둘, 셋.....

하냥 부드럽게 그 위태위태한

물질과 비물질

이것과 저것 사이의

흔들리는 경계

비스듬한 모래 언덕을 따라 미끌어져 내려와

 

매혹, 불안한..................

그 기대지지 않는 희박한 언덕을

나는 천 년 전부터인듯이 바라보지

 

우울................. 또는...............

기이하고 막막한 슬픔

 

그것들은 도착하지 않고

하염없이 오기만 오기만 해

 

나는 가만히 내 살을 들추어 봐

거기 차곡차곡 쟁여진 기다림,

자기 원칙 안에서 완결된, 그것으로 충분한,

기다림, 화안한.....................  

 

 

♧ 모래 언덕 - 김은숙

 

그리움을 잃은 지 오래 목소리도 묻히고

가슴에 쌓인 모래가 언덕을 이룬다

열 아흐레 달그림자

모래울음 거르며 뒤척이는 밤

여윈 발목 푹푹 빠지며 폐허에 이른다   

 

 

♧ 새들은 모래주머니를 품고 난다 - 손택수

 

난다는 것은 목구멍이 쓰라린 일이다.

쓰라림을 참고, 목구멍에 굳은살 박이는 일이다.

 

새들은 날기 위해, 날 수 있는

적정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제 이빨을 모두 뽑아버린 자들이 아닐까.

 

새들은 시합을 앞둔 복서처럼

모래주머니를 달고 다닌다.

이빨 대신 먹이를 잘게 부수면서

채워놓아야 하는 모래주머니를 아주

몸속에 집어넣고 다닌다.

 

아무도 떼갈 수 없게끔, 실은

고비고비마다 흔들리는 자신을 더 경계하며,

 

우리는 더러 모래 씹듯 밥을 삼키지만

새들은 매 끼니마다 모래를 삼키고 있는 것이다.   

 

 

♧ 모래바람 - 서연정

 

하루 걸려

고비사막을 헐어내는 바람이 불어온다

 

빨랫줄에 걸쳐놓은 내 생활

사정없이 패대기쳐진다

 

우뚝한 바위라고

그 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간단없이 패어 나갈 수도 있는

모래기둥이었음을

인정하는 일은

 

살아온 날들에게 손을 내밀어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

 

누구나 사막이 될 수 있으며

사막을 파대는 손톱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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