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고향 바닷가 올레길에서
피기 시작한 지 꽤 되는
이 모래지치를 만났다.
옛날에는 이름도 몰랐고
이렇게 아름다운 줄도 몰랐는데
볼수록 은은한 빛이 고운 꽃.
모래지치는 지칫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5~35cm 정도이며,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가지가 비스듬히 퍼지고
잎이 뻑뻑하게 난다.
8월에 흰 꽃이 취산 꽃차례로 달리며,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란다.
아시아와 유럽의 온대에서 난대에 걸쳐 분포한다.
♧ 모래가 바위에게 - 강은교
우리는 언제나 젖어 있다네.
어둠과 거품과 슬픔으로
하염없는 빛 하염없는 기쁨으로
모든 세포와 세포의 사잇길을 지나
폭풍의 날개 속으로 스며든다네.
한낮에도 가만가만 스며든다네.
길 막히면 길 만든다네.
바람 막히면 바람 부른다네.
세계의 수억 싸움 속에
세계의 수억 죽음 속에
낮은 지붕 위란 지붕 위
썩은 살이란 살 위
넘치고 넘쳐서
우리는 꿈을 꾼다네.
금빛 바위가 되는 꿈을 꾼다네.
♧ 내 잠 속의 모래산 - 이장욱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들 내 잠 속에 쌓이고 있었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그때 그 오래된 불행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
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 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바람, 그대 허허로운 등 흘러
가네 눈 감으면 그때인 듯 메마른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
산, 모래산에 쌓이네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 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목마름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죽은 그대의 모래산
♧ 모래 무더기 - 최진연
모래들이 쌓여 있다.
내일은 어떤 존재일지 모르는
고만고만한 알갱이들의 고향
햇살과 바람의 강물은 보이지 않고
그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공간
올라서거나 깔려 있는
고만고만한 존재들의 한 무더기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너는 뭐냐고 내게 묻고 있다.
그 무덤 속에 묻혀 있는
풀과 꽃들의 환상
한 알갱이씩 안겨오는 햇살의 포옹
이 찬란한 햇빛 속에서도
어둠으로 쌓여 있는 한 무더기
내일은 무엇이 될지 모르는
모래들이 쌓여 있다.
♧ 모래 사면 - 김정란
내 가슴속엔
어떤 비규정성의
경사가 있어
그건 지독히 강력하게
자기 원칙을 주장하지
날이면 날마다 자기 논리 안에서 강화되기만 하는
어느 날 뒤돌아보니
이미 늦은 거야
돌아 갈 길이 지워졌어
뿌윰한 천사들 하나, 둘, 셋.....
하냥 부드럽게 그 위태위태한
물질과 비물질
이것과 저것 사이의
흔들리는 경계
비스듬한 모래 언덕을 따라 미끌어져 내려와
매혹, 불안한..................
그 기대지지 않는 희박한 언덕을
나는 천 년 전부터인듯이 바라보지
우울................. 또는...............
기이하고 막막한 슬픔
그것들은 도착하지 않고
하염없이 오기만 오기만 해
나는 가만히 내 살을 들추어 봐
거기 차곡차곡 쟁여진 기다림,
자기 원칙 안에서 완결된, 그것으로 충분한,
기다림, 화안한.....................
♧ 모래 언덕 - 김은숙
그리움을 잃은 지 오래 목소리도 묻히고
가슴에 쌓인 모래가 언덕을 이룬다
열 아흐레 달그림자
모래울음 거르며 뒤척이는 밤
여윈 발목 푹푹 빠지며 폐허에 이른다
♧ 새들은 모래주머니를 품고 난다 - 손택수
난다는 것은 목구멍이 쓰라린 일이다.
쓰라림을 참고, 목구멍에 굳은살 박이는 일이다.
새들은 날기 위해, 날 수 있는
적정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제 이빨을 모두 뽑아버린 자들이 아닐까.
새들은 시합을 앞둔 복서처럼
모래주머니를 달고 다닌다.
이빨 대신 먹이를 잘게 부수면서
채워놓아야 하는 모래주머니를 아주
몸속에 집어넣고 다닌다.
아무도 떼갈 수 없게끔, 실은
고비고비마다 흔들리는 자신을 더 경계하며,
우리는 더러 모래 씹듯 밥을 삼키지만
새들은 매 끼니마다 모래를 삼키고 있는 것이다.
♧ 모래바람 - 서연정
하루 걸려
고비사막을 헐어내는 바람이 불어온다
빨랫줄에 걸쳐놓은 내 생활
사정없이 패대기쳐진다
우뚝한 바위라고
그 동안 생각했던 것들이
간단없이 패어 나갈 수도 있는
모래기둥이었음을
인정하는 일은
살아온 날들에게 손을 내밀어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
누구나 사막이 될 수 있으며
사막을 파대는 손톱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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