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 만큼 비우고 - 엄혜숙
승용차 한 대 가누기 버거워
구불구불 접혔다 펴지는
백운사 가는 길
부처님 오신 날 奉祝봉축 드리려
풀잎들은 일제히 고개 숙이고 있다
바람 속에 드문드문 섞여
가늘게 늘어져 우는 목탁소리 밟으며
一切일체가 唯心造유심조라는 화두 속을 걸어간다
마흔이 넘도록 옷섶의 단추 제대로 채우지 못한
헐거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비움과 버림에 대하여 일어서지 말아야 할
마음은 환한 꽃잎 따라 몸 기대는데
발길은 오히려 늪속으로 길을 낸다
언덕 위 토담집이 길 위를 지날 때
올망졸망 장독대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비는 일정한 간격으로 마음 닿는 곳에 내리고
입 벌린 장독은 그릇만큼만 담아내고 있다
나의 밑동 새는 그릇은 어쩔 수 없이 넋놓고 앉아
고인 것 뱉아내야 하는 저 빈 물동 닮았을까
벼랑 끝에 부러지는 바람 담을 수 있는
속 깊은 그릇 빚어내고 싶다
지는 해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는
부처님 동공 속에 無形무형의
보이지 않는 넉넉한 그릇 보인다
♧ 물속에 석가모니 - 홍윤표
물속에 앉아 있는 석가모니는
여간해서 노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물위에 떠서 자연을 사랑하고
뭍에 사는 보살을 살피느라 불심을 태우며
홀로 걸어가는 거지와 나를
깨우치느라 진땀을 뺀다
한 때는 나서 늙고 병나고 죽음에 대해서
순리를 지키는 너와 나에게
아주 떠나지 않으려고 영원한
불타(佛陀) 앞에서 흙물을 마시며
그 속에 영원한 뿌리를 내리는
작은 동작들이 자랑스럽다
노스님과 함께 불도(佛道)를 걸으며
깊은 산행에 주인이 된 듯
능선에 떠오른 태양에게 갈 길을 묻는 아침
수많은 인연(因緣)들이 물 위에 떠
긴소매에 물을 적시는 연꽃
갠지스강에 켜진 기도였다.
♧ 화순 운주사 누운 부처님 - 이향아
-누운 부처님
다 잊고 누워 사는 부처님 있어
알 수 없는 일
참, 묘한 일
생땅 깔고 날흙을 베고
나도 곁에 누워 볼까 찾아갔었다
두 발로 서서 봐도 눈이 아픈 하늘
어지럽게 쏟아지는 청천하늘을
통째로 덮고 누운 부처님 있어
예삿일 아녀,
예삿일 아녀
전라남도 화순군
운주사 입구
시월 하순 목화들도 염불을 하나,
염불을 외다외 지쳐 누웠나
밭두덩에 늘피하니 엎드러져 있었다
나도 곁에 눕고 싶어 찾아 갔었다
생땅을 깔고 아린 하늘 덮고
배멀미 하듯 배멀미 하듯
앓아 누워 있고 싶어 찾아 갔었다
목화야 가을 한 철 부풀어 올라
훠이 훠이
팔을 젓고 누웠다지만
고려적 백제적 알 수 없은 옛일을
캐물으면서 곱씹으면서
뜬눈으로 날을 새는 부처님 있어
우리는 모를 일, 참 두려운 일
나도 곁에 앓고 싶어 찾아 갔었다
♧ 부처님의 웃음 - 박태강
오랜 수행으로 깨달은 부타
人生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부처님의 잔잔한 微笑미소
世上 악은 물러나고
오직 참만이 흐르나니
부처님의 미소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을 화평하게 한다.
세상사 모두가 마음속에
있어 참마음 찾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웃으신다.
나쁜 마음은 慾心욕심에서
나오나니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부처님의 웃음을 가진다.
부처님 웃음은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
虛荒허황에서 벗어나
마음을 참으로 하면
부처님의 웃음을 웃을 수 있나니
진실한 웃음은
眞正진정한 福복을 가져 주니
小慾소욕으로 부처님 웃음을 본받자.
♧ 부처님 전상서 - 한재만
백담사*에 도착한 시간은
녹슨 양철 굴뚝에서
붉은 비린내 울컥울컥 하늘을 가리는
木魚국 환장할 섣달 어스름 나절이었어요
꽃잎들은 검은 칼바람에 찢기고 쫓기어
안개 자욱한 계곡에서 방황하고요, 그때
중광 땡스님이 '님의 침묵'을 움켜잡고
화엄당을 도둑고양이처럼 빠져 나와
修心橋수심교 아래 解憂所해우소로 성급히 들어간
까닭을 저는 아직도 몰라요
四方은 어두워지고 보살님이 배가 고프데요
사천왕은 벌써 칠흑 같은 개흙에
빠졌군요, 부처님도
모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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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화엄당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님의 침묵’을 집필한 곳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고, 중광 스님이
말년에 불편한 몸을 의탁했었다.
♧ 구름 위 부처님을 찾아서 - 권오범
장맛비 깨지락거리는 중복허리
웃비걷는 틈타 발맘발맘 끌어당기는 돌계단
신발창이 깎아먹은 청석에 미끄러질라
다람쥐야 널랑은 나무로 올라가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중얼중얼
염불 흘리며 축지 걸음으로 멀어지는데
해를 감금한 먹구름 우렁우렁 겁박질러
금방이라도 무작스럽게 쏟을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세월이 얼마나 주리틀었는지
유통기간지난 단무지 같이 흐무러져
스테인리스 난간잡고 애걸복걸
마음만 데바빠 천근만근인 장딴지
당나귀기침소리 앞세워
천야만야 단애 위 별천지 밟고 보니
목탁소리 따라 촛불 휘돌다 운무에 섞이는 향연
우바이 우바새들 북새통에 옴나위없는 갓바위
♧ 비워 보고픈 하루였다 - 최다원
부처님 오신날 화엄경이란 특집 드라마는
평등이란 메시지를 들고 화면을 채웠다
바다는 높고 낮음을 다투지 않고
바다는 많고 적음을 다투지 않으며
바다는 있고 없음마저 다투지 않는다고
평등을 주장한다
인생이란 虛無함만 남는다고도 했으며
虛無만큼 큰 공간은 없다고 한다
虛無만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흐르지 않는 것은 따르지 말고
흐르는 것만 따르라고 당부한다
우주는 空이며
에너지도 空이며
모든 만물은 空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生과 死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며 無心
無慾을 건넨다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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