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병꽃 피는 초여름

김창집 2012. 6. 20. 07:14

 

태풍이 영향으로 가뭄을 해소시킨 비가

지나고 나자 태양이 뜨겁게 타오른다.

6월 중순도 지나가고 드디어 하순으로 접어드는

초여름, 울긋불긋 병꽃에 물이 올랐다.

 

병꽃나무는 인동과의 낙엽성 활엽 관목으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며, 산기슭 양지에 자생한다.

잎은 마주나고 계란형 또는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양면에 털이 있다.

4~5월에 잎겨드랑이에 깔때기 모양의 꽃이 피는데

처음에는 황록색으로 피어 나중에 붉은색으로 변한다.

9월에 가늘고 길쭉한 열매가 두 개로 갈라지며 익는다.

꽃 모양이 병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병꽃나무 - 김승기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채우기만 했지

하늘까지 채우고도 늘 굶주린다 했지

하늘에 매달린 항아리

무거워서 거꾸러진 병 주둥이

무엇 할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그래 그렇지

세상은 채우는 것이 아니야

있는 대로 어우러지는 거지

 

허공을 풀어 놓는다

항아리를 비우는 작업을 한다   

 

 

♧ 심상찮은 초여름 - 권오범

 

초목들 건강을 위하여

태양이 제가 낳은 그림자를

최대한 끌어당기자

아가씨들 옷이 덩달아 짧아졌다

 

그냥이 아니고 더러 경쟁적으로

야들야들한 속

적나라하게 들어내고 싶어

철딱서니 없게 안달한다는 것

 

허술한 매무새 피할 수 없어 훔쳐본 날부터

눈치 빠른 하늘 벌써 죗값 결정했는지

비틀지도 않고 은근히 몸 쥐어 짜

갈수록 더 호졸근해지는 마음

 

예년에 비해 터무니없이 서두르는 것이

아마 부여받은 기간 내내

가마솥 여물처럼

속속들이 삶아대려고 작정했나보다

 

 

 

♧ 초여름 일기 - 이정원

 

  한낮은 뭉근하다. 푸른 잎사귀들이 더위에 제 몸을 내어 주고 달아오르는 동안 아이와 팔베개하고 드러누워 클클 대며 만화책을 읽었다. 사그락 사그락 마르는 빨래, 바람이 휘저으며 노는 소리, 쓰레기통은 한참 부화중일 테지. 살충제를 들고 일어나는 순간 아이의 잠이 툭 떨어진다. 어느새 아이는 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듬지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인가. 몸이 뿌리로 박혀 꽃으로 환생할 어디쯤 곤충의 애벌레같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이의 잠을 베게에 올린다. 아이는 놓쳐버린 꿈을 움켜쥐려 한번을 더 뒤척이고, 땅속의 모든 벌레들이 돌아눕는 소리, 땅의 껍질을 깨고 튀어 오른다. 쓰레기통은 닫혀 있다. 마른 잎이 물을 끌어당길 동안 빨래집게에 꽂힌 햇빛 한줌 마악 잎사귀에 내려앉을 판이다. 주룩주룩 설거지물 하수구에 쏟아져 내린다. 아이의 덜 닫힌 잠의 창으로 한 줄기 소낙비 시원스레 퍼붓는다. 뭉근해진 한낮이 조리개 속으로 풀어진다. 풋여름이다.   

   

 

 

♧ 초여름 - 반기룡

 

푸른 제복 입은

계엄군처럼 몰려오는 듯 하다

 

신록이 우거진 계곡마다

새소리 요란하고

전신주 피뢰침은

천둥번개 받아들일 준비로

여념이 없다

 

연둣빛 사연 우체통마다

그득하게 쌓이고

하늘은

먹장구름처럼 찌푸린 채

빗방울 후드득 떨어질 듯 분주하다

 

구슬땀이 또르르 구르고

아랫도리가 하마 흥건하다

 

 

 

♧ 푸른 초여름 - 김상옥

 

세상엔 말도 노래도 다 사라진다.

네가 옹아리를 시작하면―

 

물에 뜬 수련, 수련 속의 이슬도 구른다.

꿈꾸듯 네 긴 속눈썹 깜박이면―

 

강보에 싸인 채 요람이 흔들린다.

좜좜좜 네 작은 손등의 푸른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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